참 길고도 길었다. 50부작 드라마라는 것은 만드는 이들에게 참 지난한 작업이겠지만 이를 빠뜨리지 않고 보는 시청자에게도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육룡이 나르샤>가 과연 어디까지 달리나 했더니 왕자의 난, 거기까지였다. 물론 앞으로 2회가 더 남았지만 실질적으로 1차 왕자의 난 그리고 정도전의 죽음을 담아낸 47,48화차로 끝났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육룡이 나르샤>는 단 하나를 위한 비상이었다. 그것이 드라마 전개로는 이방원이겠지만 시청자에게 진심의 응원을 받아온 그 하나는 또 정반대인 이상한 현상도 있었다. <육룡이 나르샤>는 단 하나의 용 이방원을 위한 것이었지만, 시청자들은 오히려 그 옆에 축소된 정도전을 더 흠모하게 됐다고 할 수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아무리 그렇다 할지라도 스승과 동생을 죽인 왕자의 난은 승리란 결과로 결코 덮을 수 없는 짐승의 시간일 수밖에는 없다. 그 짐승의 시간이 지배하는 동안 사람들이 죽었다. 역사를 떠나 드라마 속에서만 그 사람을 찾는다면 단연 정도전이었고 또 연희였다. 개인적으로는 연희의 죽음이 너무 아팠다.
역사에는 없는 인물인 연희와 분이. 백성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라는 정도전의 말을 따라 작든 크든 조선건국에 이바지했다. 분이는 이방원과 엮이며 결국에는 정도전을 배신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연희는 비로소 마음을 연 그 시점에서 자신 때문에 발이 묶인 이방지를 움직이게 하기 위해 스스로 칼에 목을 베어 죽음을 선택했다.
아름다웠다. 사람의 죽음에 아름답다는 말을 써서는 안 되는데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만큼 슬프고 아픈 죽음이었다. 그 죽음을 자기 눈으로 봐야만 했던 이방지에게 더 이상 잔인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지주에게 땅과 곡식을 빼앗기고 몸까지 빼앗겨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야 했던 수탈의 상징 연희는, 그렇게 사람의 나라를 보지 못하고 떠나야 했다. 꽃잎처럼 툭 떨어진 죽음이었다.
연희의 죽음은 또 다른 의미로는 이 드라마를 시작할 때에 작가들이 품었던 어떤 희망의 죽음이었다. 작가들은 연희와 분이를 통해서 조선 건국에 기록되지 않은 민초들의 이름을 되살리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이방원이라는 이름 앞에 차츰 시들었다. 때때로 작위를 통해서라도 그들을 살리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굳이 왕자의 난에 연희의 죽음을 정말 중요한 정도전에 앞서 넣은 것은 그런 작가들 스스로 초심을 달래기 위한 배려였을지 모른다.
그런 연희의 죽음 뒤 정도전도 참으로 엄숙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 죽인 사람보다 죽는 사람이 더 멋진 죽음이었다. 그것은 단지 한 생명의 마감이 아니라 역사의 갈림길이었다. 과연 정도전의 삶이 더 오래 갔으면 조선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됐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역사의 죽음이었다.
그렇게 스승과 동생을 도륙하고 앞에 선 자식을 보는 이성계는 제정신일 수가 없었다. 왕이 아들을 죽이는 일이 드물지 않았던 조선의 역사가 이제 막 시작일 뿐이어서 이성계는 아들 이방원을 칼로 베지 못하고 왕답지 않은 민망한 웃음으로 그 심정을 드러냈다. 그렇게 웃을 수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왕답지 않게 낄낄 웃어대는 이성계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 짐승의 시간을 지배한 이방원. <육룡의 나르샤>의 유일한 주인공 이방원은 역사의 승리자답게 참회와 번뇌가 가득한 인간으로 돌아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적어도 그 순간만은 이방원이 아닌 유아인이라는 배우에 대한 감탄으로 가득 찼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칭찬하기에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시간이 너무도 가혹했다. 이렇게 된 이상 <육룡이 나르샤>는 새드엔딩 확정이다. 적어도 내게는.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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