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창조과학부(장관 최양희)가 SK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 관련 심사위원회 구성을 조만간 완료할 것으로 보인다. 14일 미래부 뉴미디어정책과 손지윤 과장은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학계 등에 지난주까지 심사위원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며 “결과를 봐야겠지만 수가 부족하면 조금 더 추천을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미래부는 앞선 공청회에서 ‘중장기적인 방송정책 기조에 따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정부가 내놓은 통합방송법안과 유료방송 관련 정책의 기조는 ‘방송통신 융합’과 ‘규모의 경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책 기조만 보면 SK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은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번 거래는 유료방송뿐 아니라 미디어생태계에 큰 충격을 줄 것이기 때문에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심사기준을 함께 정해야 한다’는 것이 시민사회단체들과 경쟁사업자들 주장이다. 이동통신 1위이자 IPTV‧알뜰폰 2위 사업자인 SK와 케이블‧알뜰폰 1위 사업자인 CJ헬로비전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미래부가 ‘깜깜이’ 심사를 진행하고 ‘SK텔레콤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래부는 심사기준을 포함한 기본계획을 사전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미래부는 “최대주주 변경(CJ오쇼핑→SK텔레콤)과 인수합병(SK브로드밴드+CJ헬로비전)에 대해서는 기본계획을 ‘안내’한 사례가 없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번 심사를 계기로 방송의 공공성과 지역성에 대한 제도를 개선할 수 있도록 ‘공론화’ 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방송통신 공공성 강화와 이용자 권리보장을 위한 시민실천행동’(공동대표 김환균 전규찬 이해관, 이하 방송통신실천행동)은 14일 미래부가 있는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래부에 인수합병 심사기준과 심사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방송통신실천행동은 노동, 지역, 이용자의 요구를 심사기준으로 반영해야 할 미래부가 심사기준 등을 공개하고 있지 않고 ‘깜깜이’로 심사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심사기준을 ‘비공개’하면 이번 인수합병은 사실상 미래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좌지우지 할 수 있게 된다. 방송통신실천행동은 이에 대해 “미래부가 SK텔레콤의 방패막이를 자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14일 과천정부청사 앞에서 열린 방송통신실천행동 기자회견 (사진=미디어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미래부가 이번 심사를 ‘깜깜이’로 진행하는 정황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방송통신실천행동 참여 단체는 지난 2월 미래부에 △SK의 사업계획 △정부의 심사항목 △시청자 의견 수렴 결과 △11개 지방자치단체장의 의견서 등을 공개하라며 정보공개청구를 진행했다. 그러나 미래부는 방송법 등 관련법령 정도만을 나열한 답변서만을 회신했다. 시청자 및 지자체장 의견 수렴 결과는 공개하지 않았다.

방송통신실천연대는 “우리가 관련법도 안 보고 정보공개를 요청했는 줄 아는가. 아니면 미래부 담당 공무원이 아는 심사항목의 수준이 거기까지인가. 차라리 우리가 인수합병 심사기준을 만들어주겠다. 뿐만 아니다. 미래부는 이번 인수합병 건에 대해 11곳의 지자체장에게 의견을 물었어야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밝힐 수 없다고 한다. 내가 사는 지역의 시장이 보낸 의견을 왜 내가 몰라야 하는가”라고 꼬집었다. 또 이들은 “부실한 응답에 대해 미래부는 당장 사과하고 방송통신실천단의 대표단과 면담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김동원 정책국장은 “지상파, 종합편성채널를 재허가, 승인하는 모든 심사에서는 심사기준과 기본계획을 공개했다. 미래부는 이렇게 정상적으로 거쳤던 기준들을 공개하지 못하겠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하면서 “(이번 인수합병과 관련된) 사람들은 돈만 내는 소비자가 아니다. 요금과 채널이 달라질 시청자이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다. 미래부가 어떻게 심사하는지 우리가 심사해야 할 판이다”라고 말했다.

정보통신노동조합 정춘홍 위원장은 “미래부는 수많은 이해관계자들, 그리고 노동조합, 시민단체의 의견을 듣고 공론화해 합당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밀실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대문가재울라듸오의 황호완 대표는 “마을미디어, 공동체라디오도 심사기준이 공개되는데 이번에는 아무런 말이 없다. SK가 지역주민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지역채널을 제작하고 콘텐츠를 유통하는데 이것과 관련해서 어떤 심사기준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김동찬 사무처장은 “시청자들과 지자체들이 제출한 의견서조차 공개하지 않겠다는 것은 미래부가 SK에 불리한 여론을 막으려는 방패막이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언론노조 KT스카이라이프지부 장지호 지부장은 “SK와 CJ는 자사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번 인수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방송통신 융합의 대가가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 미래부가 방송과 플랫폼의 공공성을 이야기한다면 이 문제를 분명히 따지고 명확한 입장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14일 과천정부청사 앞에서 열린 방송통신실천행동 기자회견 (사진=미디어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SK는 이번 인수합병으로 4만여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정작 지역에서 가입자를 만나고 방송과 인터넷을 설치·수리하는 노동자들의 고용 문제에 대해서는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오히려 SK는 기자설명회 등을 통해 지역센터 외주화 정책을 유지하고, SK-CJ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실적 경쟁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민주노총 희망연대노동조합 케이블방송비정규직 티브로드지부의 최성근 수석부지부장은 “(다단계하도급을 규제하지 않으면) 협력업체 사장 한명 갈아치우면 30~40명이 길거리에 나앉는 게 현실이고, 이번 심사과정에서 이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양희 장관은 장관후보자 청문회에서 다단계 하도급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미래부는 ‘관행’에 따라 사전에 심사기준 등 기본계획을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래부 뉴미디어정책과 손지윤 과장은 “승인, 재허가와 달리 최대주주 변경과 합병에 관한 심사를 하면서는 심사기준과 기본계획을 공개한 적이 없다. 그것이 관례”라며 “다만 (업계와 언론이 관심이 큰 만큼) 어느 정도까지 공개할지 논의 중이다”라고 말했다. 손지윤 과장은 “심사기준과 관련해서는 이해관계자들에게 심사의 주안점이 되어야 할 것에 대해 의견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방송통신실천행동에는 전국언론노동조합, 참여연대, KT새노조, 노동자연대, 마포서대문지역대책위원회, 미디액트, 서대문가재울라듸오, 서대문 민주광장, 약탈경제반대행동, 언론개혁시민연대, 정보통신노동조합, 진짜사장나와라운동본부, 통신공공성시민포럼, 희망연대노동조합 등 14개 언론‧시민‧지역‧노동운동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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