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성향 사이트 일간베스트와 자신의 SNS에 여성 혐오, 전라도 및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글을 써 논란이 된 A기자가, 지난 2일 인사로 KBS 보도본부 보도국 뉴스제작2부에 배치됐다. 취재부서는 아니지만 일베의 ‘헤비 유저’였던 기자가 ‘보도국’에 갔다는 것 자체를 두고, 내부에서는 “‘일베가 만든 KBS뉴스’라는 국민들의 시선이 가장 우려스럽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일베 기자가 보도국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도 KBS뉴스는 여러 지점에서 문제점을 노출해 왔다. 26개 단체가 모여 언론 보도를 모니터링하는 총선보도감시연대가 꼽은 ‘나쁜 방송보도’에 가장 자주 이름을 올리는 곳이 KBS다. 세월호 참사, 민중총궐기, 역사교과서 국정화, 노동개혁, 민중총궐기 등 주요 사안에서 정부여당의 입장을 그대로 옮겨온 보도를 지속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선거 앞두고 더 거세지는 ‘북풍’ 보도

다양한 사안 중 KBS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북한 보도다. 20대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북풍’ 보도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달 7일 북한이 발사체를 쏘았을 때 로이터통신, 뉴욕타임스 등 외신들이 ‘장거리 로켓’(Long range rocket)이라고 보도한 것과 달리 KBS를 비롯한 지상파 3사와 JTBC를 제외한 종편 3사, YTN까지 모두 ‘장거리 미사일’이라고 표현했다.

2월 14일 KBS <뉴스9> 보도

1주일 후에는 여론조사 결과를 입맛대로 보도했다. 14일 <뉴스9>는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북한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라는 질문에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인 것은 ‘대화를 통한 해결’(40.1%)이었으나 ‘경제 제재 강화’(30.9%), ‘북한 핵 시설 제거를 위한 군사적 수단까지 검토’(18%) 두 응답률을 묶어 “강경 대응 입장이 48.9%”였다고 전했다. 개성공단 자금 70%가 북한 당 서기실 등에 상납돼 핵 개발에 사용된 것으로 파악된다는 홍용표 장관의 ‘폭탄발언’ 발원지도 KBS였다.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뉴스진단>은 홍용표 장관의 주장을 가감 없이 보도했다. (▷ 관련기사 : “우리도 핵 무장하자는 응답 50% 넘어”… 위기감 조성하는 KBS)

최근에도 KBS는 북한 관련 보도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3일 <뉴스9>는 <北, 단거리 발사체 6발 동해로 발사…대북 제재 반발 ‘무력시위’>, <박 대통령 “북 폭정 중단해야”…인권 탄압도 공격>, <[이슈&뉴스] 김정은의 운명과 선택은?>, 등 북한 관련 소식만 10꼭지를 전했다. 이날 보도는 일베에서도 화제가 됐다. “요즘 kbs 9시뉴스 연일 북괴 소식으로 폭주모드 ㄷㄷㄷ 뉴스가 진짜 완전히 달라졌다 ㅋㅋ”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고, 이 글은 일베 내에서 ‘추천’의 의미로 쓰이는 ‘일베로’가 700을 돌파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지난 7일에도 <뉴스9>는 하루에만 총 9건의 북한 보도를 쏟아냈다. 총선보도감시연대는 이날 KBS <뉴스9>를 ‘나쁜 방송보도’로 꼽으며 “강경 일변도의 대북정책을 옹호하고 대결국면을 조장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 관련기사 : "일베가 만드는 뉴스" KBS 인사 비판 / 선거 코앞, 불붙은 KBS의 ‘북풍 몰이’)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는 정면 공격

북한 보도에 열과 성을 다했던 KBS는 지난달 23일부터 지난 2일까지 192시간 넘게 지속됐던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관련 보도에는 소극적이면서도 공격적이었다. 테러방지법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던 지난 2일, <뉴스9>는 “테러방지법은 테러단체에 자금을 지원하거나, 김 모군처럼 IS에 가입할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면서 ‘도입 필요성’을 더 강조했다. 간첩 조작, 정치개입 논란 등으로 늘 개혁 목소리가 나왔던 국정원에, 조사권과 추적권까지 부여하는 테러방지법의 위험성을 짚어내는 보도는 찾기 힘들었다. 2일 <[이슈&뉴스] ‘무제한 토론’ 무얼 남겼나?> 리포트에서는 필리버스터 때문에 △다른 민생 법안은 폐기 위기에 처했고 △현행 국회법 법안 처리가 왜곡됐다며 △새로운 국회 의사결정제도를 모색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새누리당의 주장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 관련기사 : “KBS, 테러방지법 선전, 국회선진화법 난타)

필리버스터 이틀째였던 지난달 24일에는 SNS에 올라온 KBS뉴스 트윗이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KBS <강민수·김나나 앵커의 손바닥 뉴스>(링크)는 “국가 안보 국민안전에 한목소리 내도 부족할 때 우린 뭐하고 있는 걸까요? 이러다 주변국들이 우리 운명까지 결정하게 됩니다”라는 트윗을 올렸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SNS 이용자들은 “성역 없는 보도와 공정한 방송을 하겠다던 저 소개글이 민망하지도 않냐?!”, “권력의 나팔수로 사니 좋니?”, “스스로 종편수준과 차별화를 하시기를”, “적어도 사영방송이 아니라면 최소한의 중립을 지키려는 노력을 해라” 등 질타를 쏟아냈다.

2월 24일 KBS뉴스 트위터

정부의 말은 대부분 ‘옳은’, KBS의 일관된 시각

정부여당, 청와대발 소식을 철저한 검증과 분석을 생략한 채 ‘관점’을 그대로 옮겨오다시피 한 보도 역시 KBS뉴스의 특징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현행 교과서에 문제가 많아 시행하는 것이고, 노동개혁을 하면 고용 안정성이 좋아지고 일자리도 늘어나는 장밋빛 미래가 오며, 오랜 숙제였던 한일 위안부 협상이 박근혜 정부 때 이루어진 것은 작지 않은 성과이고, ‘대부분 정치적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집회 시위는 그 폭력성 때문에 경찰이 어쩔 수 없이 진압한 것에 불과하다” 이는 정부의 주장이면서, KBS 보도가 보여주는 ‘시각’이기도 하다.

타인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 그로 인해 비판받을 것을 감수하고도 ‘거리’로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도심 집회로 얼마만큼의 혼잡이 발생했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집회 시위’가 이루어진 원인이다. 세월호 특별법을 무력화시키는 정부의 세월호 시행령(안) 폐기와 조속한 선체 인양을 요구하는 참사 1주기 집회 당시(지난해 4월), KBS는 서울 한복판을 장시간 마비시켰던 경찰버스 행렬·폭력 집회’ 엄단 계획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시민들이 경찰과 왜 충돌했는지 그 원인이나 피해 상황은 설명하지 않으면서, ‘충돌 이후’의 방침만 소개한 셈이다. (▷ 관련기사 : 경찰처럼 세상 보는 KBS·MBC 뉴스, 세월호 '차벽' 철저히 외면)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 때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경찰버스와 차벽이 동원됐고, 물에 타는 최루액, 캡사이신, 유색물감, 물이 시민들에게 쉴 새 없이 뿌려졌으나 KBS <뉴스9>에서는 ‘과잉진압’이라는 표현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 민중총궐기 당일 논술시험을 치른 익명의 학생 사례 하나만을 가지고 ‘도심 집회 피해’를 부각한 리포트는 KBS 안팎에서 ‘사례도 부족하고 설득력도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다. (▷ 관련기사 : ‘한 발 더 나간’ 경찰의 시위 진압, 제자리걸음인 방송뉴스)

“일부의 극렬한 반대 속에서도 노사정이 대타협을 이끌어 낸 데에는 청년 고용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노동 개악’이라고 입 모았던 정부의 노동개혁을, KBS <뉴스9>는 이처럼 표현했다. <뉴스9>는 지난해 9월 노동개혁 관련 보도를 하면서, 정부 말처럼 정말 노동 ‘개혁’인지, 문제점은 없는지, 지나치게 희망적인 전망만 가득하지는 않은지 따져보지 않았다. ‘저성과’를 이유로 일반해고가 가능해져 해고요건이 완화된 것을 두고도 “정부가 결코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의 ‘선의’를 강조했다. (▷ 관련기사 : "쉬운 해고는 노동개악" 반발, KBS는 외면)

2015년 10월 12일 <뉴스9> 보도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도 정부의 시각을 이식한 듯한 보도가 나갔다. KBS는 △획일화된 역사관 주입 △친일과 독재 미화 △헌법정신과 국제인권규약 조항 및 UN의 역사교육 권고 위배 등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있는 그대로 전하기보다, 정부 스스로 국정교과서에 붙인 ‘올바른 역사교과서’라는 단어로 리포트 제목을 뽑았다. 정부 발표 내용 요약에 가장 큰 비중을 할애하고 이후에 여야 공방을 얹는 ‘전형적인’ 보도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속내를 짚었던 <뉴스타파>의 81초 동영상보다도 못했다. (▷ 관련기사 : 방송 3사보다 나았던 뉴스타파의 ‘81초’ 국정교과서 보도)

KBS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세월호 참사를 외면하는 데에도 애쓰고 있다. <뉴스9>는 지난해 12월 14일부터 16일까지 진행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를 두 줄짜리 단신을 매일 내보내는 것으로 갈음했다. 당연히 청문회 중계도 없었다. 청와대 주재 회의는 머뭇거림 없이 생중계하고,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경기조차 장장 4시간 넘게 생중계한 것과는 딴판이다. 세월호 특검 도입 난항의 배경, 유가족들의 세월호 특별법 개정 촉구 등 여전히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수많은 ‘사실들’이 새롭게 탄생하는데, 보도되는 것은 별로 없다. 참사 초기 보도를 자성하는 리포트를 참사 한 달 후 메인뉴스에 담았고, 참사 100일에는 오보와 왜곡으로 얼룩졌던 보도행태를 다룬 <고개 숙인 언론>을 방송한 곳이 맞는지 반문하고 싶을 지경이다. (▷ 관련기사 : 세월호 청문회 3일 동안 지상파는 무얼 했나)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혐오를 일삼는 커뮤니티의 헤비 유저가 민주적 공론장을 만들고 공적책임을 실현해야 할 KBS 보도국에 입성한 것은 분명 논란거리다. 사측이 사내 반발을 막기 위해 내놓은 ‘보도국 밖 근무’라는 약속을 스스로 깬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일베 기자’가 들어오기 전에도 이렇게 구석구석 망가져 있는데, KBS 보도국에서 문제적 인물 하나를 뺀다고 보도가 나아질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더 우려해야 할 것은 어느 곳보다 ‘언로’가 열려 있어야 할 언론사 KBS에서 ‘침묵’이 짙어지는 현실이 아닐까. 자사 보도에 의견을 내고 문제점을 지적하는 행위 자체를 ‘월권’이라 판단해 “편집권 침해”로 몰거나 ‘징계’로 보복하는 경영진의 태도는 어두운 앞날을 전망하게 한다. 한 술 더 떠, 최근 자사 드라마 PD들의 종편 이적사태에 대해 보도국 TF를 구성해 대응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보도됐다. 보도의 사유화를 점칠 수 있는 문제이니만큼 내부에서조차 창피하니 당장 TF를 해체하라는 목소리가 나왔으나, 경영진은 아랑곳하지 않았고 시원하게 해명하지도 않았다. 이웃 MBC의 길을 밟듯, 자꾸만 구성원들이 입을 ‘닫게’ 만드는 곳에서 질 높은 보도가 나오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쩐지 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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