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헬로비전 인수합병을 추진 중인 SK가 8일 “정부 승인이 나면 합병법인은 1년차에 3200억원(=SK‧CJ 1500억원 출자+펀드 모집 1700억원), 4년 간 총 5천억원을 콘텐츠에 투자하겠다”는 콘텐츠펀드 조성 및 운영 계획을 발표했으나 SK가 협력 파트너로 지목한 지상파방송사는 물론 언론운동단체와 노동조합의 반발은 오히려 거세지고 있다. KBS MBC SBS는 앞서 8일 메인뉴스를 통해 각각 SK그룹, 인수합병, 콘텐츠펀드 계획에 비판적인 리포트를 내보냈다.

10일 방송통신실천행동은 서울 프레스센터 18층 전국언론노동조합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송의 공적 책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SK는 인수합병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SK가 플랫폼사업자가 아닌 콘텐츠투자자의 입장에 서서 콘텐츠펀드를 기획했고 △사업파트너로 종합편성채널 등을 직접 거론한 것은 ‘종편 지원 사격’이며 △정작 논란이 돼 왔던 케이블 지역채널과 현장노동자에 대한 대책은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었다. “지역, 노동, 가입자가 사라진 자신만을 위한 사업계획”이라는 이 단체 주장이다. 방송통신실천행동은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국언론노동조합, 참여연대, 희망연대노동조합 등 14개 언론‧노동‧시민‧지역운동단체들이 SK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 추진에 대응해 구성한 연대체다.

▲10일 열린 방송통신실천행동 기자회견 모습.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국장은 “콘텐츠펀드로 콘텐츠를 만들어 SK브로드밴드에 독점 공개하고 종합편성채널의 드라마, 다큐멘터리 편성비율을 높여주는 식의 종편 지원사격을 콘텐츠 활성화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라고 지적했다. (사진=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우선 여론은 SK에 불리하다. SK는 3200억, 5000억원이라는 ‘돈’을 쥐고 이해관계자들을 포섭하려고 했다. 그러나 재전송료 협상, VOD 가격 협상, 수신료 배분 등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방송사업자들은 SK가 펀드의 규모와 세부적인 협력 모델 등을 제시하지 않아 ‘못 믿겠다’는 분위기다. 과거 IPTV 출범 때 약속한 콘텐츠 투자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승인심사를 위한 면피성 약속’이라는 게 지상파방송사들의 주장이다. 한 지상파 기자는 “SK는 기자간담회에서 ‘구체적인 협력모델은 아직 없다’고 했지만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에 가서는 ‘지상파와의 협력모델을 검토 중이다’라고 한다. 지상파의 입장은 ‘인수합병 반대’다”라고 말했다.

인수합병 반대 여론이 더욱 거세지는 이유는 SK가 그간 시민사회에서 지적하고 요구한 ‘방송의 공공성’과 관련해 어떤 답도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실천행동은 “이번 SK의 콘텐츠 생태계 활성화 계획에는 유료방송사업자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콘텐츠, 지역, 시청자와 노동에 대한 어떤 전망도 없다. 이 정도면 유료방송플랫폼사업자로서의 기본적인 자격 요건도 결여돼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시민사회에서는 SK가 △새로 갖게 될 지역채널을 ‘지역미디어’로 독립시키고 지원하며 △지역시청자위원회를 강화해 시청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고객센터와 설치‧수리 기사들의 고용을 보장하면서 직접고용 계획을 세우는 것 등을 인수합병의 ‘공익적 조건’으로 제시해왔다.

SK가 시민사회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는 이유는 ‘규모의 경제를 통한 수익 창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라는 게 시민단체 주장이다. 참여연대 심현덕 간사는 기자회견에서 “SK는 가입자를 24개월, 36개월의 퐁당퐁당 약정으로 묶고 ‘깰 수 없는 결합상품’에 가두려 한다”며 “방송통신 시장을 쥐락펴락하겠다는 것이 SK의 속내라는 것을 모두 안다”고 말했다.

▲전체 유료방송시장에서 이동전화 결합상품 점유율. 2015년 6월 기준. 2015년도 방송시장 경쟁상황 평가 중. (자료=SK텔레콤.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실제 정부가 내놓은 ‘2015년 방송시장 경쟁상황 평가’ 결과(2015년 6월 기준)를 보면, 유료방송 가입자 2835만 중 이동전화를 방송 또는 인터넷과 결합한 가입자는 496만명으로 17.5% 정도밖에 안 된다. SK텔레콤의 이동전화와 방송 또는 인터넷을 결합한 가입자는 전체 7.8%뿐이다. SK 입장에서는 최소 82.5%의 ‘내수시장’이 눈앞에 있는 셈이다. SK가 스스로 밝혔듯 인수합병 목적 중 하나는 ‘케이블 가입자에게 이동전화 결합상품을 영업하기 위해서’다.

방송통신실천행동은 SK의 CJ헬로비전 관련한 보고서를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그리고 방통위와 미래부에 지속적으로 반대 의견을 전달할 계획이다. 앞서 이 단체는 대국민 여론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는데, 조사결과 응답자의 60.6%가 인수합병에 부정적인 의견으로 나타났다. 유료방송업계와 학계가 SK와 반SK 진영으로 나눠져 있고 각 진영에서 여론전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SK와 정부에 ‘공공성 강화’를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얼마큼 반영이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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