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을래 나랑 뽀뽀할래. 밥 먹을래 나랑 같이 잘래. 밥 먹을래 나랑 같이 살래. 밥 먹을래 나랑 같이 죽을래” 멜로 대사의 레전드라고 할 수 있는 <미안하다 사랑한다> 소지섭의 대사였다. 점강법의 아주 좋은 예인 이 대사는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드라마가 끝나고, 그 애틋함도 잊혀지겠지만 이런 명대사는 무척이나 긴 생명력을 지니게 되는 법이다.

그렇지만 히트한 멜로드라마는 많아도 이처럼 레전드라고 꼽을 만한 명대사를 남기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드라마를 히트치는 일보다 명대사 한 줄 만들기가 더 힘들고, 드문 일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과에 빗댄 비겁한 말일지는 몰라도 이번 김은숙 작가의 <태양의 후예>에서는 왠지 역대급 멜로 대사가 나올 것만 같았다.

▲ KBS 2TV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

송중기와 송혜교가 주고받는 대사가 오글거리면서도 감각적으로 워낙 튀었기 때문이다. 지난 4회까지도 몇몇 대사들은 여타 멜로드라마의 대표 대사가 될 정도로 달콤했다. 예컨대, “강선생은 지금부터 나만 걱정합니다” 이 정도면 썸은 넘어선 수준이다. 그렇지만 농담스럽게 한 말이기에 설렘은 있었어도 고백으로 간주하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게다가 그런 수위의 대사는 너무도 많았다.

그러다 진도 빼기에 조금도 주저함이 없는 송송커플은 4회에 전격 키스신을 선보였다. 그렇지만 그것이 곧바로 연애시작 그들의 1일이 되지는 못했다. 여전히 강모연의 마음은 복잡하기 때문이다. 분명 유시진에게 강하게 끌리는 자신을 보고 있지만, 마음을 무작정 따르기에는 유시진이라는 남자의 일이 너무도 위험하고, 비밀스러운 것이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그 점은 흔히 멜로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사랑밖에 난 몰라의 태도를 취하는 것과 상당한 거리를 두며 강모연의 캐릭터를 좀 더 현실적이면서도 어려운 존재로 만드는 두 가지 효과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둘 사이는 어색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시내에 함께 나갔다가 뭔가 위험한 상황이 만들어지고, 총소리까지 들으며 강모연의 마음은 조금 더 숨으려 든다.

▲ KBS 2TV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

그렇지만 시내에서 돌아오는 길에 강모연은 사고로 위기에 빠지게 되고, 슈퍼맨처럼 강모연을 구하러 달려온 것은 역시나 유시진. 아무리 멜로를 언급하는 글이라도 이 장면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다. 요즘 드라마들이 영화를 넘보는 장면과 연출을 서슴지 않는데 이 장면이 바로 그랬다.

낭떠러지에 걸친 차에 올라 탄 유시진은 기상천외한 방법을 썼다. 이런 장면은 너무도 흔한 클리셰라 잠깐 지루해질 뻔 했던 마음을 순식간에 감탄으로 바꿔 놓았다. 유시진은 이미 무게가 넘어갔다고 판단하고 바다로 떨어지는 것을 결정한 것이다. 당연히 여자인 강모연은 해본 적 없는 모험에 동의할 리가 없다. 여기서 실랑이가 길어지면 여주인공 민폐 논란이 생길 법도 한 순간이었으나, 유시진은 아랑곳 않고 핸들을 강하게 쳐 에어백을 터뜨리고는 곧장 절벽 아래로 힘을 주었다.

▲ KBS 2TV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

분명 시간과 공을 많이 들인 장면이라 좀 길게 우려먹어도 좋았을 것이지만 연출은 쿨하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 버린다. 특수부대 군인이 아니라면 생각지도 못할 구출방법이었다. 진짜사나이가 차마 하지 못할 군인의 멋을 멜로드라마에서 연출해냈다는 생각이 들어 픽 하고 웃게도 한다. 어쨌든 도망가려던 강모연의 마음은 다시 생명의 은인이라는 빚을 져 무거워졌다.

그런데 또 유시진에게는 전출명령이 떨어진다. 지금까지 늘 그랬던 것처럼. 떠나기 전날 유시진과 강모연은 만났다. 유시진은 뭐라도 해야 했다. 만났지만 또 헤어져야 하는 상황 강모연 역시 마음이 불편하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반쯤인데 이 남자가 먼저 떠나버린다니 적극적으로 잡을 수도 없고 그냥 언짢을 수밖에는 없다.

▲ KBS 2TV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

유시진은 지난밤 키스 이야기를 꺼냈다. 강모연은 그 대화를 금하자고 했다. 당연히 발끈하려는데 유시진의 진격본능은 굴하지 않고 깜짝 놀랄 말을 한다. “뭘 할까요 내가. 사과할까요. 고백할까요” 아주 복잡한 상황과 그 심정을 설명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함축적이고 또한 시적인 고백이다. 멜로드라마의 역사를 바꿔놓을 명대사였다. 이 드라마, 정말 심상치 않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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