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인 비율을 말해 달라.” SBS 김윤수 기자는 8일 SK브로드밴드(대표이사 이인찬)의 ‘콘텐츠펀드 조성 및 운영 관련 기자설명회’에 참석해 이렇게 물었다. SBS는 유료방송플랫폼사업자와 실시간방송 재전송료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이인찬 대표는 인수합병이 이루어지면 1년차에 3200억원(=SK 및 CJ 출자 1500억원+펀드 모집 1700억원)을 투자하겠다면서 “펀드 초기, 제작역량이 있는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과 같이 하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인찬 대표이사는 “지상파와 어떤 방식으로 협력이 가능한지, 또 콘텐츠 제값받기 차원에서 지상파와 플랫폼 간 CPS(가입자당 대가)와 VOD(Video On Demand) 분쟁이 있는데 해결방안이 있나”라는 질문에 “시청가치에 기반한 제값에 대한 수준과 관련해 실무접촉이 한창 이루어지고 있고 곧 합리적인 수준으로 타결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대답했다.

이동통신업계 1위, IPTV 2위, 알뜰폰 2위 사업자인 SK는 지난해 11월 케이블 1위, 알뜰폰 1위인 CJ헬로비전을 인수합병하겠다고 밝혔고 정부의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경쟁사인 KT와 LG유플러스는 ‘반대’ 입장을 정부와 언론에 지속적으로 밝히고 있다. 언론운동단체와 노동조합들은 방송통신업계의 독과점이 심해지는 반면 방송의 공공성과 지역성 그리고 노동자들의 권리는 약화될 것이라면서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SK 입장에서는 ‘아군’이 필요한 상황이다. SK는 지난해 천억원 규모의 콘텐츠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밝혔으나, 8일에는 금액을 증액(4년간 5천억)하고 파트너이자 수혜자(지상파와 종편)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결국 보도권력을 갖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콘텐츠사업자들에게 ‘도와 달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그리고 지상파는 충분히 의미 있는 답변을 이끌어냈다.

흥미로운 점은 지상파가 8일 메인뉴스에도 지금까지와 같이 SK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을 비판하는 리포트를 내보냈다는 점이다. KBS는 심지어 SK의 콘텐츠펀드 관련 리포트는 내보내지 않고 국세청이 SK 계열사의 ‘탈세’ 혐의 조사에 착수했고, SK가 조세회피처 케이맨제도에 32개의 법인을 세운 사실을 보도했다. KBS와 MBC는 콘텐츠펀드에 대한 리포트를 내보내기는 했지만 비판적인 내용이 주였다. MBC 박민주 기자는 SK가 CJ와 공동으로 펀드를 조성하고, CJ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점을 거론하며 “합병이 완료되면 16개 채널을 가진 CJ의 콘텐츠와 무선가입자 2600만명, 유선 가입자 700만명을 확보한 SK의 네트워크가 전략적으로 결합하는 셈”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자본력을 앞세운 CJ의 방송 콘텐츠가, SK의 막강한 플랫폼을 통해 집중 공급되면 방송의 제작과 유통을 독점하고 지역 여론까지 장악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맨위부터) KBS MBC SBS가 8일 메인뉴스에 내보낸 SK 관련 리포트들. 이미지를 누르면 각 방송사의 리포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SK의 제안에 답한 것은 SBS다. 김윤수 기자는 3200억원 중 외부에서 투자를 유치하겠다고 한 1700억원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의문을 제기하고, SK가 IPTV 출범 당시 5년간 5000억원 이상을 콘텐츠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SK브로드밴드는 지상파와 제작사 등에 고루 투자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투자 비율은 제시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합병 법인에만 독점 공급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데 투자가 집중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도했다. SBS가 내놓은 답은 ‘돈 흔들며 줄서기 시키지 말고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중소PP(방송채널사용사업자)에 각각 얼마를 지원할 것인지 공개적으로 밝히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지상파는 SK에 ‘확답’을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업계는 SK와 반SK 진영으로 나눠졌다. SK의 1차 제안은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변수는 있다. 콘텐츠 제값 받기에 나선 지상파의 요구를 SK가 받아들일지 관건이다. 지상파는 현재 유료방송사업자들에게 실시간방송 재전송료를 가입자당 280원에서 430원으로 인상하고, VOD 공급대가를 올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만에 하나 지상파의 입장이 변화한다면 그 시기는 자신이 원하는 대가를 받은 이후일 것이다. 그러나 SK가 지상파의 요구를 수용해 SK와 지상파-종편이 전략적 관계를 맺는다면 사상 최대 규모의 콘텐츠-플랫폼 동맹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한다. SK가 지상파-종편 포섭에 성공하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를 만든다는 말이다. 지상파가 돈벌이에 집착하는 한 가능성은 충분하다.

결국, SK는 자신에게도 미디어생태계에도 악수를 둔 셈이다. SK가 방송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SK는 사업자들 사이에 들어가 현금을 흔들며 줄세우기를 할 것이 아니라 △3200억원을 드라마·예능·다큐멘터리·애니메이션 제작사에 지원해 오리지널 VOD 타이틀을 늘리고 △방송통신 융합을 선도하는 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지역센터 외주화 정책을 철회하고 △케이블 지역채널이 지금보다 지역에 기여하고 공익적인 역할을 하도록 지역뉴스펀딩 같은 제도를 만들겠다는 등 누구도 반대하지 못할 만한 계획을 제시해야 했다. SK가 사업자들의 이해관계를 벗어날 수 있을까. 지금도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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