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방송과 인터넷을 설치하고 수리하는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던 당시, 업계 2위 티브로드는 전격적으로 ‘상생협약’을 맺었다. 지역센터 협력업체를 변경하더라도 고용 및 임‧단협을 승계하도록 한다는 내용이었다. 지역에서 가입자를 직접 대면하고, 설치‧수리‧철거 같은 상시적인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정치권과 노동계, 그리고 협력업체들도 박수를 보냈던 일이다. 해마다 계약이 해지되거나 임금이 삭감되는 일이 있었지만 협력업체 그리고 노동조합과 대화로 문제를 풀었던 것도 원청 티브로드였다. 케이블은 이동통신사의 결합상품에 밀리는 중이지만 티브로드가 매년 천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안정적으로 기록하는 배경에는 ‘상생협약 효과’가 있다.

그런 티브로드가 갑자기 ‘강경모드’로 변했다. “협력사 노사 문제라 개입할 수 없다”는 공식 입장을 내더라도 물밑에서는 협력업체 문제를 조정하고 중재하던 과거와 달리, 한빛북부기술센터와 전주기술센터에서 일어난 대규모 해고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 한빛센터 노동자 전원(노동조합 소속 28명)은 지난 2월1일자로 해고됐다. 원청 티브로드가 새로운 업체를 선정하지 않아 노동자들이 공중에 뜬 경우다. 전주센터는 새로 센터를 맡은 업체가 노조에 가입한 직원 24명을 고용승계하지 않았다. 이들은 3월1일자로 해고자 신세가 됐다. 이들은 서울과 전주의 티브로드 사무실 앞 거리에서 노숙농성 중이다.

티브로드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 “협력사 노사를 중재하고 있으나 협력업체 경영권과 노사 문제이기 때문에 개입할 수 없다”는 공식입장대로 꿈쩍을 않는다. 서울남대문경찰서의 한 정보관은 8일 미디어스와 만난 자리에서 “2월 중 티브로드와 면담했고 ‘빠르게 업체를 선정해 문제를 해결하라’고 권고했다. 티브로드의 답은 ‘(지역센터를 운영하는) 협력업체 노사문제에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지난 3일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위원장 우원식 의원) 소속의 우원식 은수미 장하나 의원 또한 티브로드 사업본부장을 만나 “고용승계를 할 업체를 빠르게 선정하라”며 사태해결을 촉구했으나 티브로드는 이에 대해 역시 공식입장만을 재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고된 노동자들이 속한 ‘민주노총 서울본부 더불어 사는 희망연대노동조합 케이블방송비정규직 티브로드지부(지부장 이영진)’는 원청 티브로드와 협력업체들이 노조 가입률이 높은 곳만 골라 문제를 유발했다고 본다. “회사의 의도는 ‘강성노조’ 조직률을 낮추고,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에 돌입하기 전 노조의 요구를 ‘복직’으로 낮추려 하는 것”이라는 게 해고자들과 노조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 움직임에 맞춰 재벌 대기업이 협력업체와 간접고용 비정규직부터 옥죄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원청인 티브로드가 외주화 정책을 고집하는 탓에 케이블 기사들은 1~2년마다 고용불안에 시달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강도가 다르다. 한빛북부의 경우, 티브로드는 6개 업체가 참여한 재입찰에서도 신규 업체를 선정하지 않았고, ‘업체를 변경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면 해고자들에게 일감을 달라’는 노조 요청도 거부했다. 희망연대노동조합 윤진영 공동위원장은 8일 미디어스와 만나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해도 티브로드는 답이 없다. 석 달째 답이 없다. 개입을 하지 않음으로써 의도적으로 문제를 키우고 있다. 노동조합으로서는 시민들에게 더 알리고 투쟁수위를 높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해고자들은 이날 서울 한복판인 광화문에서 명동까지 삼보일배를 했다. 선두에 선 김진태 한빛북부기술지회장은 “돌아갈 수만 있다면, 가족의 생계를 이어갈 수만 있다면 삼보일배라고 매일 못하겠나. 오체투지를 해서라도 돌아갈 수 있다면 하겠다”고 말했다. 행진하는 동안 마이크를 쥔 노조 관계자는 지나가는 시민들을 향해 “10년, 20년 티브로드를 일했는데 아무런 이유 없이 해고가 됐다. 우리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말했다. 노동조합은 재차 티브로드에 대화를 하자고 요청할 계획이다.

▲태광그룹 계열 종합유선방송사업자인 티브로드(대표이사 김재필)의 케이블 방송과 인터넷을 설치, 수리하다가 원청 티브로드의 협력업체 변경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은 기사들은 8일 오후 서울 광화문 흥국생명빌딩 앞에서 청계천을 거쳐 명동 티브로드 사무실 근처까지 삼보일배를 진행했다. (사진=미디어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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