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어제 오후 4시부터 80시간 연속 단식, 1인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80시간은 매우 짧은 시간이죠. 국회 회기 끝나가기 며칠 안 남았기 때문에 해 봐야 얼마나 할 수 있고, 저 사람들(국회의원들)이 얼마나 많은 얘기를 듣겠습니까. 그런데 왜 단식하고 1인 시위하고 삭발까지 하느냐. 이렇게 하면 저 사람들이 들어줄 것 같아서? 이렇게 하면 특검을 의결해 줄 것 같아서? 특별법을 개정해 줄 것 같아서? 아닙니다. 저희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관심 좀 가져달라고요’. 관심 좀 가져달라고요. 머리라도 한 번 밀어야 사진 한 장이라도 더 나갈 것 아닙니까”

세월호 참사 692일째였던 지난 7일 오후, 세월호 유가족들이 다시 거리로 나왔다. 참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사회 건설을 목표로 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던 2014년처럼,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 앞으로. 박근혜 대통령도 직접 언급했고 여야가 합의했던 ‘세월호 특검’을, 국회가 이제 와 모르쇠하고 있는 까닭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7일 오후 4시부터, 19대 국회 회기가 종료되는 오는 10일 밤 12시까지 곡기를 끊은 채 80시간 연속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8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19대 국회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 특검 처리 촉구 기자회견 : 정부, 국회는 약속을 이행하여 조사, 수사를 보장하라!>를 열었다. ⓒ미디어스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8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19대 국회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 특검 처리 촉구 기자회견 : 정부, 국회는 약속을 이행하여 조사, 수사를 보장하라!>를 열었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416연대의 비판 대부분은 ‘일 못하는’ 국회와 정부에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직무유기’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질타의 대상이 된 곳은 또 있었다. 바로, 언론이다.

“약속 안 지킨 정치인에 지적 한 마디 못하는 언론”

416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기자회견 발언에 앞서, 416가족협의회 정성욱 인양분과장과 함께 ‘삭발’을 진행했다. 정부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조사활동을 벌이는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시행령을 밀어붙였던 지난해 4월, 이미 유가족들은 단체 삭발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의 안은 결국 폐기되지 않았다. 1년이 조금 안 된 시점, 유가족들은 또 ‘삭발’을 감행했다. 여야가 자신들이 약속해 두고도 ‘세월호 특검’을 유야무야넘기려고 하기 때문이었다. 면도기가 수차례 지나가자, 금세 민머리만이 남았다.

어느 자리에서나 자신을 예은아빠로 소개하는 유경근 위원장은 “매 순간 한으로 남아 있는 것은 예은이 머리카락 하나라도 남겨놓을걸, 예은이 손톱이라도 잘라서 고 한 조각이라도 갖고 있을걸 하는 것이다. 이렇게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있으면 보고 싶을 때 이거라도 만져보는데. 그게 지금 저한테 가장 큰 한”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관심 좀 가져 달라고요”라고 두 번이나 힘주어 말한 그는 “불쌍한 유가족 지켜보는 관심”이 아니라, 현재 세월호를 둘러싼 상황이 얼마나 답답하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관심 갖고 보아 달라고 호소했다. 국민 650만 명의 서명을 받은 세월호 특별법을 무색하게 만든 시행령을 피하지 못해, 지난 2월 다시 서명을 받아 특별법 개정안을 제출했을 때 만든 ‘책’ 이야기를 꺼냈다.

“왜 특별법이 개정돼야 하는지, 어떻게 개정돼야 하는지, 그 안에 재작년 여름 국회에서 특별법 만들기 위해 국회의원들과 씨름하면서 오고갔던 이야기들, 과정들, 특히 여당과 합의하고 싸인했던 것들을 다 책으로 정리해서 나눠 드렸습니다. 그런데 왜, 심지어는 자기 이름 쓰고 싸인까지 한 합의내용조차 (정치인들이) 지키지 않는데 왜 아무도 얘기를 안 합니까.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라고 하는 사람들, 여당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국민, 참사 피해자들 앞에서 자기 손으로 이름 적고 싸인하고 합의문 공동으로 발표하고, ‘걱정하지 말라. 우리도 사람인데 어떻게 그렇게 가족들이 우려하는 그런 짓들을 하느냐’고, ‘염려 붙들어 매시라’고 약속했던 사람들이… 불과 2년도 지나지 않아서, 당연히 특조위가 특검 요청하면 본회의에서 당연히 의결해야 한다고 하더니, 지금 의결하자고 하니까 ‘왜 이런 시기에 정치공세 펴느냐’고 개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데 왜 아무도 지적 안 합니까. 무릇 정치인이라면 다른 것 다 못해도, 최소한 아무리 능력이 없고 못나도, 국민과 직접 한 약속은 지켜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것 하나 못 지키는 정치인들, 지적 한 마디 못하는 언론들… 그러면서 세월호 참사가 해결되길 바란다고요? 그 말하고 싶어서 머리 밀었습니다. 이 말 하고 싶어서… 나흘도 안 되는 단식하겠다고 어깃장 놓고 있는 겁니다. 제발, 제발… 이 개 같이 흘러가는 이 상황에 관심 좀 가져 달라고요”

유경근 위원장은 “간곡히 부탁드립니다만 여러분들, 저희들이 믿을 것은 언론밖에 없다. 언론에서 세월호를 다루어주셔야 하고 잘못된 것을 비판하고 지적해 주셔야 한다. 그래야 바뀐다. 그래야 안전한 나라가 된다. 그래야 세월호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이 그나마 편히 눈 감을 수 있다”며 “19대 국회 끝나기 전에 반드시 특별법 개정안 받아들여지고 특검을 의결해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첫 출발을 하는 데 힘 모아주시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유경근 위원장의 말처럼 언론은 세월호 참사 이후의 ‘상황’에 큰 관심이 없다. 이른바 ‘주류 매체’라고 불리는 언론일수록 ‘진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전하지 않는다. KBS-MBC-SBS 메인뉴스가 최근 한 달 간 세월호 이슈를 어떻게 전하고 있는시 살펴 봤더니, 이날 기자회견에서 나온 내용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KBS는 <“단원고 교실 돌려달라”…학부모-당국 '갈등'>(2월 16일), <교실 부족 단원고, 컨테이너로 교장실 이전>(2월 23일), <1800억 원대 ‘세월호 구상금’ 소송 첫 재판>(3월 7일) 등을 보도했고, MBC는 <세월호가족협 유경근 집행위원장에 '명예훼손' 유죄>(2월 12일), SBS는 <김현 의원, 대리기사 폭행 혐의 1심서 무죄>(2월 15일)를 보도하는 데 그쳤다.

3월 2일 MBN 메인뉴스 <뉴스8> 리포트

종편 MBN은 한 술 더 떴다. MBN <뉴스8>은 2일 <필리버스터에 이어 세월호에 발목 잡힌 선거구 획정> 리포트에서 “우리는 모두 필리버스터가 끝나면 곧바로 공직선거법이 통과되는 줄 알고 있는데, 글쎄요. 또 다른 게 가로막고 있다고 하는데”(앵커 멘트), “필리버스터 고비만 넘기면 처리될 것 같았던 선거구 획정안이 예기치 않은 세월호 장벽 앞에 또 발이 묶이는 모양새”(기자 멘트) 등 세월호 특검법이 선거구 획정을 막고 있다고 단정했다.

총선보도감시연대는 “지난 2월 26일, 여당이 5일의 숙려기간이 지나지 않은 북한인권법을 법사위에서 처리하는 예외를 두자고 하자, 야당 역시 숙려기간이 채워지지 않은 세월호 특검 요청안도 함께 처리할 것을 요구한 것”이라며 “기본적인 사실관계도 무시한 왜곡”이라고 혹평했다. 이어, “MBN의 이 보도가 나간 후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선거법은 본회의에서 처리됐고 세월호 특검법은 법사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자동폐기 수순을 밟았다. MBN 보도와 정반대로 세월호 특검법이 선거법의 발목을 잡기는커녕 여당에 의해 좌초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가가 보호해야 할 사람들과의 약속엔 인색”

416연대 이태호 상임운영위원은 “국회는 국민을 대변하고 국민이 고통 받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운 기관이다. 요 앞에서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가 이어졌다. 그런데 어찌된 노릇인지 (국회는) 국민이 원치 않는 국민사찰법 만드는 데는 전광석화 같고, 국가가 보호하지 못해 고통 받는 사람들과의 약속, 새로 던져진 주제가 아니고 여야가 함께 손 맞잡고 했던 약속을 지키는 데는 너무나 인색하다”고 꼬집었다.

이태호 위원은 “국민 650만명의 서명과 유가족들의 비원이 담긴 특별법이 만들어졌으나, 특별법에 따라 활동하기로 했던 특조위는 지난해 9월에야 예산이 주어지고 조직이 구성됐다. 조사대상인 해수부는 마치 특조위의 상급기관인 것처럼 예산을 자르고 시행령을 마음대로 만들어서 조사행위를 방해하고 문건까지 만들어 특조위 활동 독립성을 침해해 왔다”며 “조사대상이자 감사대상인 해수부가 이렇게 적반하장처럼 나올 때는 (법을 통과시킨) 여야가 마땅히 교통정리를 하고 특조위가 활동할 수 있도록 예산과 충분한 조사기간을 보장해야 한다. 그런데 여야는 약속을 저버리고 2월 국회를 마무리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들은 다 떠난 텅 빈 국회에, 국회의 주인인 국민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고통 받는 세월호 가족들이 곡기를 끊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기자 여러분, 이 문제에 대해 보도해 주십시오. 왜 우리가 우리 심부름꾼들이 다 떠난 텅 빈 국회 앞에서 밤새워서 1인 시위를 하는지… 약속을 저버린 국회의원들은 그렇게 뽑혀서 과연 누구를 대표하겠다는 것인지 비판하고 주목해 주시기 바란다”고 전했다.

416가족협의회 정성욱 인양분과장(동수아빠)과 유경근 집행위원장(예은아빠)가 삭발을 하고 있는 모습 ⓒ미디어스

유경근 위원장과 함께 머리를 민 416가족협의회 정성욱 인양분과장은 체계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정부의 인양 작업에 쓴소리를 했다. 정성욱 인양분과장은 “3월 1일부터 중국에서 와서 유실방지 작업하고 있는데 또 절단을 해야겠다고 한다. 미리 계획을 세웠으면 거기에 맞춰 진행하면 되는데 하다 바꾸고 하다 바꾸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세월호가 (뭍 위로) 올라올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이런 식으로 해서 과연 온전하게 인양될 수 있을지 정말 알 수가 없다. 저희는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온전한 선체 인양’을. 그래야만 진실이 규명되고 밝혀지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저희는 (작업 내용을) 알 수가 없지만 기자 여러분들은 해수부, 국회를 출입할 수 있다. 부디 온전히 세월호 인양할 수 있도록 많은 기사 부탁드리겠다”고 당부했다.

앞서, 세월호 특조위는 지난달 19일 ‘특별검사 임명을 위한 국회 의결 요청안’을 제출했다. 특조위는 8일 기자 브리핑에서 “대통령께서는 2014년 5월 16일 유가족을 만난 자리에서 ‘필요하다면 특검도 해야 된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 새누리당도 특별법을 제정하면서 기소권과 수사권을 제외하는 대신 특검을 도입하고 특별검사를 선정할 때 유가족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약속을 했다”며 “아직 임시국회 회기가 종료되지 않았으니 세월호 특검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즉시 의결해 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또한 특조위는 오는 28~29일 양일 간 열리는 2차 청문회를 국회에서 진행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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