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신문이 종종 노사 화합의 상징, 아니 반민주노총의 상징으로 조명하는 사업장이 있다. 경주에 있는 발레오전장이다. 이곳의 노동자 대다수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이었는데, 2010년 기업별 노조가 만들어지며 복수노조 사업장이 된 곳이다. 생산직 노동자 500여명 중 410여명은 기업별 노조, 70여명은 금속노조 소속으로 알려져 있다.

동아일보는 7일자 신문 10면에 발레오전장 강기봉 사장과 정홍섭 노조위원장(기업별노조) 인터뷰를 한면 가득 실었다. 제목은 <“무쟁의 선언후 회사 되살아나… 금속노조원 지금도 투쟁 선동”>이다. 요컨대 이 기사가 독자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강성노조 때문에 망할 뻔한 회사에 기업별 노조가 생기고 노사가 화합하니 죽어가던 회사가 살아났다’는 것이다.

△동아일보 2016년 3월7일자 10면

그러나 발레오전장에 대한 평가는 시각에 따라 다르다. 동아일보와 두 사람의 증언에 따라 기사를 다시 써보자. 2009년 이 회사는 경비직과 환경미화원도 정규직으로 채용했고, 7200만~7600만원의 연봉을 지급하던 회사였다. 직원이 사고로 일을 못하면 배우자나 자녀가 고용을 승계했고, 중학교 학자금도 지급했다. “창립 이래 단 한 해도 파업을 빼먹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회사는 2008년과 2009년 18억원, 35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고 2010년 강기봉 사장은 일부 업무를 외주화하는 등 비용절감 정책을 강행했다. 발레오전장은 2010년 직장폐쇄를 단행했는데, 당시 극한의 노사분규를 일부 생산직 노동자와 사무직 노동자를 활용해 공장을 굴리면서 극복했다. 기업별노조가 생긴 것도 바로 이때다. 기업별노조는 조합원의 대다수를 조직해냈다.

기업별노조는 창립 한 달 만에 회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항구적 무쟁의’를 선언했다.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권도 회사에 일임했고, 임금피크제도 도입했다. 당기순이익의 25%를 차등 성과급으로 배분한다는 내용을 단체협약에 명분화하기까지 했다. 2014년에도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갔다(최근 통상임금에 대한 법원의 판단과 정반대로 단협을 체결한 것이다). 노동조합은 노동3권을 포기했고, 회사가 원하는 최고의 노동조합으로 거듭났다.

민주노총에 대한 기회비용은 막대한 성과급이었다. 직원 1인당 성과급은 2010년 1060만원에서 2014년 1532만원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기능직 노동자의 평균 연봉은 6129만원에서 8212만원으로 올랐다. 회사가 잘 나가 성과급이 손에 쥐는 돈이 많아지는 것을 거부하는 직원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발레오전장에는 여전히 하루에 다섯 번 확성기에서 민중가요가 흘러나온다. 여전히 노사분규 중이다. 발레오전장에는 아직도 29명의 해고자가 있다. 생산직 노동자 70명은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떠나지 않았다. 노사가 입을 모아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보수신문이 발레오전장에 주목하는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최근 ‘산별노조 하부조직이 독자적인 규약과 집행기관을 갖고 독립적인 활동을 하는 경우 기업별 노조로 전환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경주는 완성차공장의 협력사들이 많다. 최근 몇 년 동안 민주노조 설립 바람이 불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일가가 소유한 다스에도 민주노조가 생겼다. 복수노조법을 활용해 민주노조를 만들고, 이주노동자들이 노조 설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곳도 있다.

자본의 입장에서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장에 민주노총(또는 한국노총) 같은 상급단체에 소속된 노동조합이 있다면 저성과자 해고, 임금피크제, 외주화 및 파견 확대 같은 것을 추진하는 데 애를 먹는다. 발레오전장 같은 모범사례를 선전해 민주노총 산하 조직들을 더 많은 기업별노조를 전환하거나, 복수노조법을 활용해 기업별노조를 만들고 이 노조를 다수노조를 만드는 일이 지금 자본의 숙원사업 중 하나다.

강기봉 발레오전장 사장은 “시골의 조그만 회사가 목숨을 내놓고 이뤄낸 개혁을 국내 제조업이 벤치마킹해 노동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시골의 조그만 회사에서 일어난 ‘민주노조 깨기’가 노사화합의 성공사례로 둔갑하는 지금, 박근혜 정부가 노동개악을 밀어붙이는 바로 지금이 자본에게는 골든타임이다. 반대로 해석하면 바로 지금이 시골의 작은 사업장에서부터 민주노조와 노동권을 지켜야 할 시기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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