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태어나고 사는 한 우리는 대한민국에 대해, 같은 한국인에 대해서 긍지와 자부를 갖고 사는 편이 좋다. 그렇지만 때때로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워진다. 한국인에게 너무도 질긴 오명을 씌우고 있는 필리핀 코피노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SBS 스페셜>에서 그 코피노 문제를 다시 조명했다.

제작진이 먼저 찾은 사람은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이었다. 한국인이면서 코피노 찾기에 나서고 있는 구본창 씨. 그가 블로그에 코피노 아빠들의 얼굴과 인적사항을 그대로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분명 효과는 있었다. 그가 올려놓은 아빠들 47명 중 직간접적으로 연락이 닿아 29명의 사진과 이름이 삭제되었다.

426회, 아빠 찾는 게 죄인가요? - 코피노의 마지막 선택

그동안 심심찮게 코피노 문제가 방송을 탔어도 이렇다 할 효과가 없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29명이라는 숫자를 결코 적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부작용도 뒤따랐다. 코피노 아빠가 초상권침해 명목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물론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법적 판결을 받고 취한 행위가 아니기에 코피노 아빠로서는 초상권침해를 당했다고 주장할 근거는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에 대해 구본창 씨는 “아이를 버리고 도망간 아빠의 초상권하고 그 아빠를 찾아야 하는 아이의 생존권”의 선택을 말한다. 법에 기대지 않고도 이 문장의 무게가 어디에 실리는지는 금세 알 수 있다. 개인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아이의 생존권에 우선할 수는 없음은 분명하다.

426회, 아빠 찾는 게 죄인가요? - 코피노의 마지막 선택

또 일각에서는 코피노 소송을 한국인들이 사업으로 삼는다는 문제도 제기된 바 있었다. 그때도 참 부끄러웠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코피노 문제의 심각성을 찾을 수 있다. 한국인 아빠에 의해서 버려진 아이가 얼마나 많으면 소송을 사업화할 궁리를 할 정도였냐는 것이다. 물론 코피노를 이용해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참 부끄럽고도 무서운 현상이다.

그렇게 초상권 침해나 사업성을 띈 소송 남발이라는 부작용이 있더라 하더라도 코피노 문제의 중심은 여전히 아이들의 생존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필리핀은 잘 알다시피 빈국이다. 당연히 일자리도 구하기 쉽지 않다. 간난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그 가능성은 더욱 줄어든다.

그 아이들의 얼굴은 굳이 찾아보려 애쓰지 않아도 영락없는 한국의 평범한 아이들 얼굴과 너무도 닮았다. 우리 얼굴을 한 아이들이 필리핀의 달동네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교육받지 못하면서 비참하게 자라는 것은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모습이 될 수 없다.

426회, 아빠 찾는 게 죄인가요? - 코피노의 마지막 선택

물론 모든 코피노 아빠가 무책임하게 도망친 것만은 아닐 것이다. <SBS 스페셜> 말미에는 코피노 문제의 가장 완벽한 해결도 보였다. 광주에 사는 젊은 코피노 아빠가 필리핀을 찾은 것이다. 분명 요즘 코피노 엄마들에게 아빠들을 상대로 한 소송은 이 문제의 마지막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소송보다 더 좋은 것은 그 아빠처럼 다시 필리핀을 찾아 단숨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관심과 지원을 약속하는 것만으로도 코피노 문제는 비약적인 진전을 보게 될 것이다.

현재 코피노 아빠찾기 블로그의 명단은 많이 지워졌지만 아직도 많은 아이들이 아빠를 기다리고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또한 법원이 구본창 씨가 당한 초상권침해 소송에서 어떤 판결을 내릴지도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