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 이어서)

- 과거에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 출마했을 때 ‘파괴와 창조’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민주노총이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으로 규정되고 있고 정의당 역시 진보정치에서 유사한 하나의 쌍으로 보이는 지점도 있다. 그때의 메시지가 필요한 것 아닌가?

“2007년에 민주노총 위원장이 못 된 것은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우리 운동의 방식에 대해서 리모델링 정도가 아니라 근본적 파괴가 필요하다, 그래야 새로운 창조가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노동운동이 어떻게 사회 전체와 연대해서 움직일 수 있는가, 그런 고민이었는데 그런 말을 한 것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때 말했던 노선은, 예를 들면 희망연대노조가 생래적으로 지역으로 조직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이런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자기 사업장 내의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자는 게 아니라 공장 담을 넘어 편의점 알바 노동자를 어떻게 조직할 것이냐의 문제다. 이런 담론들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비정규직운동의 문제를 지역을 넘어서는 폭넓은 운동으로 보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등장할 수밖에 없는 게 청년문제다. 단순히 젊은 청년들을 입당시키는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 최대 화두가 되고 있는 청년문제를 진보정당의 현재전략으로 만들어야 한다. 당을 키우기 위해 젊은 세대를 미래를 보고 키워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지금 정의당 자체가 청년들의 현재기반이자 현재전략이어야 한다.”

- 박근혜 정권이 노동에 대해 강공을 취하고 있는데, 정의당이 분명하게 대응하지 못할 거라는 의구심이 한쪽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의구심 중 하나는 참여정부 당시의 노동정책과 분명하게 단절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주장으로도 비춰진다. 그런 우려에 대해 어떻게 답할 생각인가?

“박근혜 정권의 노동개악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강력히 저지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정의당은 분명한 원칙을 갖고 있고 당론으로써 현재 나와있는 5대 악법에 대해 한치도 동의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다만 그렇다고 협상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예를 들면 산재보상보험법 같은 경우 일부 조항에 대해서는 조정이 가능한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여하튼 과거의 이러저러한 정권에 참여했던 이러저러한 사람들 때문에 당이 노동문제에 대해서 분명하고도 단호한 원칙을 갖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의당 노동선대본 총선승리결의대회에 참석한 양경규 후보 (양경규 후보 블로그)

- 보수언론이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의 격차를 얘기하면서 공무원연금의 축소를 강하게 주장한 적이 있다. 진보정치의 흐름 속에서도 그런 비판을 일정하게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런 주장들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웃으며) 오늘 질문의 폭이 너무 넓어서, 내가 대통령 선거에 나온 건가 싶다. 심지어 사전질문지에 없는 돌발질문이다. 오늘 돌발질문이 너무 많다.”

- 아무래도 공공연맹위원장도 하시고 사회공공성강화를 위해 노력해오셨으니 만큼….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은 설계와 배경이 많이 다르다. 이 문제는 국민연금의 보상률과 지급률 문제로부터 파생되었다. 이것 때문에 공무원연금의 조건을 낮춰야 한다고 접근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같은 조건으로 따지면 군인연금이 더 심각할 수도 있다. 물론 군인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국민연금 등의 제도에 대해 기본적인 검토를 한 번 해봐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예를 들면 국민연금 하나로라는 입장도 있고 각각의 특수성을 얘기하는 입장도 있다. 한국의 연금문제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는 계속 논의와 정리가 필요하다.”

- 진보정치의 가장 어려운 점은 대중의 광범위한 냉소인데, 현재 현장에서도 부딪치는 문제다. 양경규 후보는 당비를 내는 것 이상의 정치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현실에서는 진보정치에 당비만 내줘도 고맙다는 반응이다. 이런 냉소를 극복할 방법은 무엇인가?

“냉소의 1차적 원인은 진보정당운동이 분열한 데에서 찾아야 한다. 처음에 노동자들이 진보정치에 결합할 때 기대도 있었고, 그간 한국사회가 전면적으로 변혁해가는 과정에서 진보정당이 필요하다는 걸 입증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의 성장이 가능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분열과 갈등, 패권의 문제에 대한 대중의 실망이 있었고 이것 때문에 악순환이 발생한 부분도 있다. 진보정당의 역량과 힘이 떨어지면서 조직화된 노동자들의 기대도 함께 사그라 들었다. 노동운동 자체의 문제도 있다. 한국 노동운동이 1600만 노동자 중에 먹고 살만한 노동자들로 구성됐다고 하는 것은 치명적 한계다. 이 구조 때문에 공장 안이 안전하다면서 굳이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노동자 의식이 생겨났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의식이 진보정치의 쇠락과 맥을 같이 한다. 과거에는 현장 노동자들 사이에서 진보정치와 사회의식을 끊임없이 확장시킬 수 있는 구조가 존재했다. 하지만 당이 분열된 구조 속에서는 정치 얘기를 현장에서 꺼낼 수 없는 분위기가 됐다. 진보정치의 쇠락이 현장의 계급의식을 희석시키고, 노동운동의 개량화를 부추겼다. 또 노동운동의 개량화가 진보정당의 자신감을 상실하게 하고, 성장과 정체성에 대한 자신감을 잃은 진보정치를 오른쪽으로 가게 했다. 두 흐름이 교호하면서 나쁜 영향을 주고받았다. 이제 민주노총이 결정하는 동일한 정치방침을 통한 진보정당 운동은 할 수가 없다. 과거처럼 민주노동당이 있고 민주노총이 있는 구도는 앞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스스로 정치운동하는 노동자들을 묶어세우는 흐름을 만들어야 하고 이제는 당의 노동위원회가 이런 역할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 과거와 비교하면 노동운동은 제1야당이나 자유주의 세력으로 많이 쏠린 게 사실이다. 조합원들도 정치후원금 낼 때 진보정당을 지지해서 무슨 실익이 있는지를 따진다. 차라리 제1야당에 내면 을지로위원회의 효과라도 기대할 수 있다. 과거 노동운동 지도자들 일부는 실제로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 쪽으로도 갔는데….

“(참을 수가 없다는 듯) 참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다.”

- 양경규 후보가 구상하는 정의당의 노동위원회는 이를테면 을지로위원회처럼 의원과 주요 인사들이 현장에 압박을 가하는 조직인가 아니면 일상에서 노동자들을 접촉하고 조직하는 조직인가?

“을지로위원회 모델은 공장 안의 문제를 의회정치가 풀어주는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진보정치나 노동정치의 확장으로 볼 수는 없다. 노동위원회라고 하는 것은 대중조직 내에서 노동자들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키고 어떻게 현장분회를 만들어 낼 것인지, 현장분회가 어떻게 공장을 벗어나서 지역으로 결합하게 할 것인지, 노동자들의 정치 참여를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지에 방점이 찍혀 있다. 노동자 기반이 확장되면 현장분회 운동을 좀 더 확대해갈 것이다. 이를 실현하려면 중앙당이 지역시도당과 지역위원회들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지, 당 중심성과 주요한 역량을 어떻게 투입할 것인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 거의 혁명을 하자는 얘기 아닌가?

“누구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운동을 우리가 해봐야 한다. 그렇게 안할 것 같으면 다시 진보정치를 하겠다고, 진보정당의 통합을 위해 노력하고, 다시 한 번 해보겠다, 이렇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

- 시간이 다 됐는데, 두 가지만 간단한 질문 하겠다.

“(항의조로) 결국 애초에 써준 질문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 아니, 질문과 답변 속에 다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당, 녹색당 등등의 정당도 있는데 총선 이후에라도 어떤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 거냐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진보정당들이 서로를 인정해야 한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정당들을 다 불러 모으고 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판 ‘시리자’가 나올 수도 있는 구조이지만 무리하게 하나의 당으로 통합해야 한다거나 지난번의 민주노총 정치방침처럼 하는 건 미숙한 행태다. 진보정당끼리의 연대와 네트워크 형성 등에 대해 전혀 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총선이 끝나면 이 문제를 서로 소통하고 고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해 말 전체 진보정당을 포괄하는 선거연합정당의 구성과 이것이 어려울 경우 사실상의 새로운 선거연합정당의 창당을 통한 선거연대 등의 방침을 검토한 바 있다)

- 마지막으로, 비례대표 후보 출마한 다른 후보 중에 같이 국회에 가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는 후보가 있는지?

“(매우 당황한 표정)….”

- 그러면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들까지 다 포괄하는 걸로 질문을 바꾸겠다. 어떤가?

“(굉장히 망설이다가) 누군가 한 당원이 진보정당의 당원인 게 자랑스럽다는 표현을 했다. 비례대표 선거에 출마한 11명의 후보들이 나름 전략과 관점에서 차이를 갖고 있다는 점이 명확히 확인됐지만, 또 이들이 자기 분야에서 축적된 역량과 단련된 경험을 갖고 있고 소중한 우리들의 자산이라는 것도 확인됐다. 제가 봐도 참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누가 됐으면 좋겠다, 이런 것은 딱히 밝힐 수가 없다. 과도한 질문이다. 다만 지역구까지 확장해서 얘기한다면 노동자 정치기반의 핵심 축이 될 창원 성산에서 노회찬 후보의 승리가 꼭 필요하다. 당의 이후 성장전략이나 정체성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다른 사람은 또 아니라는 말은 아니지만… 참… 당의 현재 조건이라는 게… 그런 역할을 함께 수행했으면 좋겠다.”

경남 창원성산 지역구에 출마한 노회찬 후보를 지원하는 양경규 후보 (양경규 후보 블로그)

쉽다면 쉬운 질문이었는데, 마지막 대목에서 양경규 후보는 망설이고,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이 망설임은 현재 정의당의 상황과 조건을 반영한 것일 수도 있고, ‘양경규’라는 개인 캐릭터의 색채가 드러난 것일 수도 있다. 판단은 독자 여러분께 맡긴다.

어찌됐건 당의 얼굴인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출마를 결의한 사람 중에 ‘노동’을 대표하겠다는 후보가 사실상 한 명이라는 것, 그리고 그게 양경규 후보라는 것이 정의당의 현재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양경규 후보가 항변하듯 대부분의 질문은 사전 질문지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았다. 평소에 무엇을 고민하고 생각하고 있는지 날 것 그대로의 답변을 이끌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1시간 남짓의 인터뷰를 통해 최소한 그의 노동운동 30년이 어떤 고민 속에서 마무리 됐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이 대표적 진보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써 국회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인지, 그건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자격이 있는 사람의 하나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가 주장하는 ‘새로운 노동정치’가 어디까지 확장될 것인지 앞으로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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