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나아지나 했지만 <태양의 후예>는 태양처럼 주변에 접근하는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뜨겁게 상승하고 있다. <돌아와요 아저씨>는 대단히 억울하게도 하필이면 <태양의 후예>와 맞붙는 불운으로 본래 누려야 할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나름 이 드라마를 애청하는 이들에게 주는 불안은 제작진이나 배우들이 혹시라도 낙담해서 최선을 다하지 못할까 하는 점이다.

프로들이니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또한 그러지 말라고 응원이라도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이 드라마의 온전한 완성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돌아와요 아저씨>에는 참 많은 요소들이 섞여 있다. 그래서 산만해 보일 수 있다는 위험요소도 없지 않다. 물론 어느 정도 지나면 조금은 간결해질 것이다. 그때까지 이 드라마를 굳건히 지켜줄 시청률이 다만 문제일 뿐이다.

▲ SBS 수목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

그처럼 이 드라마에 대한 애착이 생기는 것은 바로 을의 정서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거의 오연서의 왈패 연기가 재미를 끌어가고 있지만 곧 무게 중심은 정지훈에게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 전조는 4회에 보였다.

김인권이 임시로 빌려 쓰고 있는 정지훈의 몸은 하필이면 김인권이 죽을 때까지 주 72시간씩 일하던 백화점의 점장이었다. 비록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회장님의 사생아인 흠이 있지만 외모도, 점장이라는 지위도 생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대역전이다. 그렇지만 항상 눈에 밟히는 아내와 딸 그리고 점점 기억이 희미해져가는 아버지를 잊을 수는 없다.

▲ SBS 수목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

몸만 정지훈이고 알맹이는 김인권인 선진백화점의 새 점장 이해준은 첫 중역회의에서 사망한 김영수 과장의 자살 여부를 다룬다. 참 감동스러운 장면이기는 하지만 속과 겉이 다른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15년간 뼈 빠지게 충성한 직원의 죽음에 애도보다는 주판알만 튕기는 사람들뿐인 삭막한 속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정치훈의 열변은 가슴을 파고드는 힘이 느껴졌다.

그 열변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은 익히 들어서 아는 한국 40대 남자들의 실제 사정과 너무 같았다. “실적에 쫓겨 햄버거, 라면, 삼각김밥으로 때우고 수분은 탄산음료로 섭취합니다. 운동할 시간이 없어서 6개월 동안 겨우 두 번 나갔고, 살 빼라는 상사의 구박에 지방분해제를 먹습니다. 그리고 접대 때문에 매일 술을 마십니다. 이것은 자살입니까? 아닙니까?”

드라마 속 김영수 과장만의 일상은 아닐 것이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어도 이런 전쟁을 매일 매일 겪으면서도 꾹 참아야 하는 사람들은 너무도 많을 것이다. 그나마 그 전쟁터를 나가면 그곳은 지옥이니까 말이다. 문득 <미생>이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과장이어도 아직 미생인 사람이 바로 죽어서도 그 삶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김영수였다.

▲ SBS 수목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

그 뼛속까지 아픈 대사를 하는 사람이 하필 정지훈 아니 가수 비라는 사실이 지워지지 않는 것이 아쉬운 점일 뿐 <돌아와요 아저씨>는 모든 을을 위한 반란을 준비하고 있음에 주목하게 된다. 비록 남의 몸을 빈 대리반란일 수는 있지만, 그러면 또 어떻겠는가. 세상에는 수많은 김영수가 존재한다. 그들이 가슴 속에 깊이 박혀서 빼지 못하는 그 억울함을 달래줄 수만 있다면 남의 몸이 아니라 무엇인들 대수겠는가 말이다.

이를 테면 <돌아와요 아저씨>는 이제는 고전급에 속하는 영화 <사랑과 영혼>의 현대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반드시 뜨거운 눈물을 동반할 수밖에는 없다. 그렇지만 아직은 정지훈과 오연서이면서 동시에 김인권과 김수로의 복잡한 로맨스와 브로맨스의 이중 케미로 시도 없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나중에 꺼이꺼이 우는 한이 있더라도 당장은 정지훈과 오연서의 끝도 없는 코믹연기에 맘껏 웃고 볼 일이다.

▲ SBS 수목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

그리고 놀랄 일은 더 있다. 다음 주 예고에 살짝 비친 장면 하나가 파란을 짐작케 했는데, 그것은 오연서와 이하늬가 키스를 하는 듯한 장면이었다. 이미 김인권과 김수로가 입을 맞추는 장면도 있어 동성키스가 새삼스럽지도 않을 수 있고 또한 코믹한 설정이었지만, 이 예고의 분위기는 상당히 진지해서 어떤 반응이 일지 궁금하다. 어쨌든 작가의 용기에 놀라게 된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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