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정치권이 언론을 관리해야 할 시기다. 언론도 정부와 정치권을 구슬려 제몫을 챙길 수 있는 '대목'을 맞았다. KBS의 숙원사업인 수신료 인상과 중간광고 허용 이야기가 또 다시 흘러나오고 있다. KBS는 3일 방송통신위원회 최성준 위원장을 불러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과 중간광고 허용 등에 대한 입장을 캐물었고, 원하는 답변을 끌어냈다. 하지만 역으로 보면 KBS가 또 다시 자신의 발목을 잡은 것과 같다.

최성준 위원장은 3일 KBS1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에 출연해 “공영방송이 상업방송과 시청률 경쟁을 하기보다 차별화된 고품격 콘텐츠를 만들어 공적 책임을 수행해야 하고, UHD방송에 대한 투자가 원활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요구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결국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수신료가 현실화돼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 위원장은 수신료 인상을 위해 ‘수신료 산정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사진=미디어스)

방통위는 지난 2014년 이경재 위원장 시절 공영방송 수신료를 2500원에서 4000원으로 인상하면서 KBS 2TV의 방송광고를 2019년까지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그러나 KBS 보도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고, 언론운동단체와 야당의 반대하는 까닭에 수신료 인상안은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이때와 비교해 상황은 달라진 게 없으나, KBS는 선거를 앞두고 또 다시 수신료 인상을 부채질하고 방통위에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사회자인 홍지명 KBS 기자는 한술 더 떠 공영방송 수신료가 연간 27만원(한국은 3만원) 정도인 독일의 사례를 거론했다. 그는 최성준 위원장에게 “독일의 사례를 우리나라에도 비슷하게 적용 가능하다고 보느냐”고도 물었다. 이에 최 위원장은 독일의 경우 16개 주정부가 연합해 방송사재정수요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수신료를 객관적이고 전문적으로 산정, 결정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방송통신위원회도 올해는 공영방송재정연구위원회를 구성해서 독일이나 영국 등의 사례를 연구하고 과연 수신료가 객관적으로 산정될 수 있고 합리적으로 정해질 수 있도록 산정기구 도입을 하는 방안까지 포함해서 다양한 개선방안을 연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방송광고 규제 이야기도 나왔다. 사회자는 종합편성채널 등 새로운 방송채널사용사업자(Program Provider)의 등장으로 광고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한 과정에서 방통위가 광고총량제를 도입하는 등 규제완화를 추진한 점을 거론했고 최성준 위원장은 “경쟁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는 전체적으로 광고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규제가 완화돼야 한다는 기본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화답했다. 최 위원장은 지난해 광고총량제 도입 이후 가상·간접광고와 협찬고지 규제를 완화한 점을 들며 “올해에도 당연히 이런 기본적인 정책방향은 유지를 해나가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사회자는 KBS의 숙원사업인 중간광고에 대해서도 물었다. 이는 KBS가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면서 내세운 ‘방송광고 단계적 축소 및 완전 폐지’ 입장과 충돌한다. 그러나 최성준 위원장은 이를 반박하지 않고 “지상파 중간광고에 대한 논의는 미디어시장 전반, 그리고 지금 나온 다양한 매체들의 균형발전 등을 두루 살펴서 고려해야 될 상황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미 추진한 규제완화의 정책효과를 분석하면서 업계의 의견을 듣겠다고만 말했다.

이용자들이 IPTV나 OTT 등 유료방송에 가입하고, 다양한 방송콘텐츠가 쏟아지면서 지상파의 방송정책도 변하고 있다. 특히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한 BBC 3채널에 대한 TV방송을 완전히 끝내고 채널을 온라인화했다. 경쟁할 PP와 플랫폼이 많아진 상황에서 내린 결단이다. 그러나 한국은 영국같이 지상파 다채널서비스 등 무료보편서비스가 없고, 지상파방송사가 유료방송플랫폼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정부에 추가적인 규제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KBS가 정부와 국회에 끌려다니지 않으려면 수신료 인상과 중간광고 허용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발목을 잡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김환균)이 최근 발표한 <미디어공공성 강화와 언론개혁을 위한 10대 과제>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 기업에 눈치 보지 않고 보도할 수 있는 내외부 장치를 만드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것이 해결되면 재원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 유료방송사업자에게 더 많은 공적 재원을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다. 지상파는 가입자당 280원을 포기하는 대신 의무전송채널에 합류해 공적 재원을 함께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된다.

그러면서 지상파는 무료보편 방송플랫폼을 새롭게 구축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정부에 ‘EBS 외 다른 지상파에도 다채널서비스(MMS)를 도입하자’고 제안해야 한다. 종합편성채널 등 다른 방송사업자들이 강하게 반대하겠지만 VOD(Video On Demand) 서비스 가격을 대폭 낮추고, 이동멀티미디어방송(DMB) 화질을 끌어올리거나 모바일 UHD방송을 실시하는 등 무료보편 방송플랫폼사업자로서의 역할을 강화한다면 MMS를 반대할 명분은 없다. 지상파방송사들이 직접 IP망을 활용해 ‘가장 값싼 유료방송’을 하는 것도 대안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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