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은 일찌감치 “테러방지법에 협상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총선 일정과 국회로 건너온 선거구 획정안을 고려하면 야당이 필리버스터를 이어나갈지 의문이다. 결국 테러방지법안은 일부 수정되거나 원안 그대로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 평소대로라면 인권 침해 논란으로 법안에 대한 비판여론이 더욱 강할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북풍’으로 집권여당은 야당과 타협 없이 그리고 강도 높게 테러방지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법안대로라면, 국가정보원은 ‘수사나 국가안전보장을 위한 경우’뿐만 아니라 테러위험인물의 사상, 신념, 노동조합, 정당의 가입탈퇴, 정치적 견해, 건강, 성생활, DNA정보 등에 관한 개인정보를 개인정보처리자에게 요청할 수 있게 된다. 국정원은 위치정보, 금융정보도 손쉽게 얻게 되고 감청도 쉽게 할 수 있다. 그것도 ‘영장 없이’ 말이다. 이미 사업자들에게도 개인정보 선 활용, 후 동의의 ‘규제완화’를 열어준 정부다. 사업자들이 수집하고 집적한 개인정보들과 권력이 만나는 곳이 바로 ‘파괴적 감시사회’라는 점은 불을 보듯 빤하다.

물론 냉정하게 보자면 이번 법안은 대다수 시민들과는 관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북풍을 타고 ‘내부단속’하려는 게 정부여당의 목적임은 분명해 보인다. 테러를 방지할 수 있는 법률과 제도는 충분하다는 점에서 이번 테러방지법안이 우리 사회 내부를 향하고 있다. 그들은 ‘내부의 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의 테러방지법안은 테러위험인물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홍종학 의원이 2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 저지 무제한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여당과 극우세력이 보기에 평화를 위해 대화와 일방적 군비 축소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시민들은 북한과 테러 세력에 동조하는 빨갱이다. 그들이 보기에 거리에 나와 노동과 복지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국가경제를 흔드는 행위이고, 한일 양국 정상의 일본인 성노예 관련 합의를 규탄하는 것은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보수단체에서 활동하는 시민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광우병을 선동한 사람들이 국가에 테러를 했다” “지금 테러방지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테러분자다”라고 말이다. “우리가 이 나라를 어떻게 일으켜 세운 줄 모르고 사상과 이념이 불온한 철없는 녀석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으니” 말이다. 테러위험인물 만들기는 이렇게 쉽다. 이것이 45% 콘크리트 지지율의 밑바닥에 있는 정서다.

과거 국가정보원이 고문으로 간첩과 테러분자를 만들어냈다면, 이제는 여론과 개인정보로 테러리스트를 만들어내려는 게 보수정권의 전략이다. 여론으로 ‘테러란 무엇인지’ 기준을 만들고, 사업자들로부터 엄청난 개인정보들을 가져와 ‘당신은 국가 안보와 경제를 위협하는 테러리스트로 의심된다’는 증거를 짜맞추면 된다. 권리는 이 같은 방식으로 억압될 것이고, 사회운동과 진보정당들이 설 곳은 더욱 좁아질 것이다.

우리 모두 손에 손 잡고 애국가를 부르며 눈물을 흘려야 하나. 집집마다 태극기를 걸고 국기에 대한 충성이라도 해야 하나. 그래야만 ‘국가를 테러하지 않는 국민’이 될 수 있나. 만약 그렇지 않고, 거리에 나와 더 많은 민주주의와 권리를 요구하면서 경찰차를 밧줄로 끌면 ‘잠재적 테러리스트’가 되는 것인가. 온종일 국가와 민족만을 생각하며 밤잠을 설친다는 대통령이 있는 나라에 정작 ‘시민권’은 사라지고 있다. 다스릴 국민만을 규율하고 시민을 없애고 있다. 이게 지금 그들이 감행하는 진짜 테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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