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26일, 영하의 추운 날씨를 무릅쓰고 서울 여의도에는 언론인들이 모였다. 기자들은 펜과 마이크, 카메라를 손에서 놓은 다음, PD들은 프로그램 제작을 멈춘 채, 아나운서들은 프로그램을 더는 진행하지 않고 그곳으로 모였다. 이는 이들 ‘스스로’ 선택한 것으로, 정부는 이들의 펜과 마이크, 카메라를 빼앗지는 않았다. 다만 이들은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을 잃고 있다고 여기는 듯했다.

9년 만에 파업에 들어가기로 한 MBC는 비장했다. 언론노조MBC본부 박성제 본부장은 “투쟁 최전선에 MBC가 서겠다”고 밝혔다. 투쟁의 최전선에 서려는 MBC노조는 26일 오전부터 총파업 준비로 분주했다. 노조 사무실은 여러 매체의 기자들뿐만 아니라, 수시로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들르는 노조원들로 북적였고, 끊임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MBC총파업 출정식에는 익숙한 얼굴이 여럿 보였다. <뉴스데스크>에서 여러번 보아왔던 기자들을 비롯해 취재 현장에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던 사람들의 얼굴도 보였다. 아나운서들의 얼굴도 보였다. 취재를 당하는 것이 부담스러운지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하도록 목도리와 모자로 중무장을 한 그들이었지만, 총파업 현장에서 그들은 화면 속보다 배로 빛났다. 한동안 투쟁 노래를 부를 일이 없던 MBC노조원들이지만 한 쪽 손을 불끈 쥔 채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박성제)가 26일 오전 10시 여의도 MBC본사에서 ‘7대 언론악법 저지 조중동 재벌방송 저지’를 위한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 ⓒ미디어스
오후 2시 국회 앞에서 열린 ‘언론장악 7대 악법 저지 총파업 출정대회’에는 약 3천명의 언론인들이 모였다. 전경버스가 가로막아 국회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했지만, 이들 역시 펜과 마이크, 카메라를 들고 있어야 할 취재 현장을 버린 채, 얼음장 같은 길바닥에 앉아 “언론장악 획책하는 한나라당은 해체하라”고 수십 번 외쳤다.

사회를 맡은 MBC 박경추 아나운서는 ‘언론장악 5적’으로 뽑힌 김형오 국회의장,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고흥길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나경원·정병국 한나라당 의원의 휴대폰 번호를 공개하며, 이들에게 문자메시지 또는 음성메시지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을 건네라고 말했다. 여기저기에서 들리기 시작한 웃는 소리는 한 MBC 노조원이 홍준표 대표의 전화번호를 “그렇게 하면 안 되지요? 그렇지 않아요?”라고 큰 소리로 음성메시지를 남기자 폭소로 번졌다.

오후 5시가 넘어 출정식을 마친 이들은 한나라당 관계자와 면담을 요청할 목적으로 한나라당사 앞으로 이동했으나 여의도 곳곳에 배치된 경찰 병력에 막혔다.(이렇게 ‘불통 정부’의 모습은 곳곳에서 비교적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언론노조 노조원들이 한나라당사 근처에 도착하자 경찰은 미리 배치해 둔 살수차를 앞 쪽으로 배치하며 “여러분들은 집회 끝난 후 신고되지 않은 미신고 집회를 하고 있다. 자진 해산할 것을 요청한다”고 경고 방송을 했고, 노조원들은 더욱 더 큰 목소리로 “한나라당 해체하라” “언론악법 저지하자”고 외쳤다.

노조원들의 구호가 계속되자 영등포경찰서장은 “여러분의 행동은 명백한 불법이다. 지금 해산하라”며 재차 해산 명령을 내렸고,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은 직접 차 위에 올라가 “항의 방문을 하겠다는 것인데 노조원들을 막는 게 오히려 불법으로, 언론이 무너지면 무고한 시민들과 소수의 목소리가 전달되지 못한다”고 반박했다.

▲ 26일 전국언론노동조합이 국회 앞에서 '언론장악 7대악법 저지'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 ⓒ미디어스
26일 여의도는 매서웠다. 영하까지 떨어진 기온과 칼 바람에 매서웠지만, 그보다 더 매서웠던 것은 언론인들의 외침이었다. 그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현장’을 떠났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들에게 이른바 한나라당의 미디어 관련 7개 법안이 어떠한 의미인지 충분히 드러났다.

정부는 늘 그랬듯이 언론노조 총파업을 향해서도 ‘불법’을 운운하고 있다고 한다. 소통하지 않고 이해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추진하려는 정부와 한나라당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 한, 언론인들과 정부의 마찰은 이명박 정권 임기 내내 이어질 듯하다. 언론인들은 그토록 귀히 여기는 펜과 마이크와 카메라보다 훨씬 더 소중한 ‘언론자유’가 박탈될 위기에 처했다는 걸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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