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 티브로드의 케이블방송과 초고속인터넷을 설치, 수리하는 노동자들이 또 거리에 내몰렸다. 원청 티브로드가 하청업체와의 도급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새로운 업체도 선정하지 않은 탓이다. 노동조합은 티브로드가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을 앞두고 노조의 협상력을 낮추기 위해 조합원이 많은 지역을 표적으로 삼아 ‘고용승계’ 논란을 유도하고, 원‧하청 양측에서 노조가 티브로드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취하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앞서 지난 1월 티브로드는 한빛북부기술센터를 운영하던 업체와 도급계약을 갱신하지 않았고 업체는 그달 말로 폐업했다. 1월 초 근로계약 종료 통보를 받은 노동자 40여명은 2월1일자로 일자리를 잃었다. 이들은 지난 23일부터 서울 명동 티브로드 입주 건물 앞에서 농성 중이다. 1996년 유선방송 시절부터 케이블 설치‧수리 일을 해왔다는 한 노동자는 “사장이 돌고 돌아도 직원은 늘 그대로였는데 이렇게 해고된 적은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농성 중인 노동자들이 소속된 민주노총 서울본부 더불어사는 희망연대노동조합에 따르면 올해 업체 재계약이 불발돼 고용불안 문제가 생긴 광명‧시흥, 인천, 전주 등은 모두 노동조합 가입률이 높다. 한빛북부기술센터의 한 노동자는 “얼마 전 입찰에 개인 및 법인 6곳이 응찰했고, 이중에는 고용‧근속‧단체협약 모두 승계하겠다는 업체도 있었지만 선정하지 않았다. ‘노조 깨기’가 아니라면 뭐겠나”라고 말했다. 티브로드가 새로운 업체에 맡긴 인천지역 센터는 1~2개월 단기근로계약 이후 고용승계 여부를 최종결정하겠다는 입장으로 알려졌고, 전주센터는 선별면접을 통한 선별 고용승계 입장으로 알려졌다.

▲ 서울 명동 티브로드 입주 건물 앞에 있는 해고자들의 농성장 (사진=미디어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노동조합 가입률이 높은 지역센터에서 발생한 고용불안 문제는 티브로드와 하청업체 사측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노동조합은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 전 쟁점을 고용승계로 몰아가 노동조합의 협상력을 낮추려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희망연대노조 윤진영 공동위원장은 25일 미디어스와 만난 자리에서 “지난해 임금교섭을 앞두고 연장근로를 축소했던 것과 비슷한 모습”이라며 “업체들은 ‘현재 임금수준도 부담스럽다’는 말을 흘리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티브로드 원‧하청은 노동조합이 원청을 상대로 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취하하라고 종용하는 분위기다. 윤진영 위원장은 “이번 문제로 원‧하청과 대화하고 있지만 원청은 ‘근로자지위확인소송 때문에 개입할 수 없다’고 하고, 협력사들은 ‘소송 문제가 해결되면 전향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한다”며 “결국 이들이 말하려는 것은 ‘소송을 취하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가 소송을 포기하면 원‧하청은 ‘불법파견’에 대한 법적 책임을 피하고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다.

티브로드 원·하청이 소송 취하에 목을 메는 이유는 소송 결과가 방송통신 업계에 만연한 다단계하도급 구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으로 보인다. 티브로드, CJ헬로비전 등 종합유선방송사업자는 물론 SK브로드밴드, KT, LG유플러스 등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IPTV)사업자 등 모든 방송통신 기업들은 상담·설치·수리 업무를 외주화하고 노동자들을 간접고용 한다.

▲(사진=미디어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방송통신 기업들이 노동조합과 함께 상시필수업무 노동자에 대한 직접고용 계획을 마련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나 기업들은 모두 부정적이다. 티브로드 관계자는 25일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인천지역은 정상근무 중이고, 전주센터도 노조-신규업체 만남을 주선하는 등 적극적으로 중재하고 있다. 한빛북부기술센터의 경우 협력사 직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협력사 문제라 개입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적극적으로 중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하청에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이 있고, 소송까지 진행 중인 티브로드의 행보는 업계의 가이드라인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티브로드는 22개 권역에서 323만8204명의 가입자(2015년 12월, 단자수 기준)를 보유한 케이블 업계 2위 사업자이기도 하다. 티브로드가 ‘중재’에만 나서는 것은 단순히 티브로드가 속한 태광그룹이 ‘반노조’ 성향의 기업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편 티브로드는 인근지역 하청업체를 활용해 업무공백을 메우고 있다.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비정규직 티브로드지부 관계자는 “해당 지역에 곧장 대체인력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센터에서 직원을 파견 보내고 그래서 생긴 과부하를 1~2개월짜리 단기 아르바이트로 해결하는 방식이다. 특정 센터가 지역을 넘나드는 것은 원청 티브로드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티브로드 관계자는 ‘업무 공백을 메우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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