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9일 금년도 사법시험 2차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금년에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1000여명이 합격의 기쁨을 누렸다. 이들의 기쁨 뒤에는 온갖 배려를 아끼지 않은 가족 등의 수고가 있었을 것이며, 또 이들 못지않게 애를 썼으나 합격하지 못한 수천, 수만의 응시생들의 회한과 아쉬움이 함께 있을 것이다.

금년 사법시험 2차 합격자에 들지 못한 사람 중에 최민석(24세)씨가 있다. 그는 현재 법대 재학생이며 지난 4월 1급 시각 장애인으로는 최초로 사법시험 1차를 통과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인물이다. 그는 초등학생 때 녹내장으로 시력을 완전히 잃었으며 2004년 1급 시각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법대에 진학하였고 입학 당시 ‘장애인들의 권익을 지키는 변호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었다.

그는 어떻게 사법시험을 치를 수 있었을까?

▲ 세계일보 2007년 4월6일자 8면.
그는 다른 수험생들보다 절반 더 긴 시간을 쓸 수 있었고 별도의 시험실에서 점자 문제지를 제공받았으며 음성지원 프로그램을 탑재한 컴퓨터를 쓸 수 있도록 법무부가 배려하였기 때문에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이렇게 평면적으로 설명하다보니 아 그 정도로 배려하면 시각장애인도 사법시험을 치를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안이한 생각에 빠질 수도 있겠다. 그래서 얘기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이 법과대학에서 가르치는 교수 한분으로부터 최민석씨의 학교 입학과 공부 과정에 대해 들은 바 있다. 시력을 완전히 상실한 사람이 대학 공부를 할 수 있을까? 공부를 할 수 있게 하는 필요충분조건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해보자.

당연히 이 학생의 입학을 둘러싼 논란이 크게 벌어졌다. 이 한명의 시각장애인 학생을 위해 시설 등을 감당하기 위해 학교의 재정 부담이 얼마나 더 되어야 하며 향후 일상적으로 일어날 부담들에 대해 누가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는가하는 것이었다. 결론이 쉽지 않은 논란과정에서 일부 ‘어리석은’ 교수들이 책임지겠다고 하여 입학이 결정되었다고 한다.

정작 더 큰 일은 입학 후에 일어났다. 시각장애인 학생을 위한 별도의 공간, 컴퓨터 등 시설과 기자재들은 돈이 많이 들지만 예산만 마련된다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을 것이다. 더 큰 숙제는 이 학생이 배우게 될 모든 교재가 시각장애인이 볼 수 있는 점자교재로 준비되어야 했고, 이를 위해 학기 내내 한글 파일 작업에 20여명의 학생들이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수 학생 할 것 없이 시각장애 학생을 위한 ‘어리석은’ 전쟁을 치룬 셈이다.

단 한명의 시각장애인 학생이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대학은 매우 큰 재정 부담을 해야 했고, 교수와 학생 모두 갖은 수고를 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학생이 이 대학 공동체 안에 존재함으로 해서 장애를 갖지 않은 교수 학생들이 경험하고 배운 가치는 돈으로 셈할 수 없이 귀한 것이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대통령 선거가 두 달도 남지 않았다. 소위 유력한 후보일수록 경제를 얘기하고, 경쟁력 있는 나라, 능력 있는 사람, 능력 있는 기업이 더 성장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며 여러 가지 정책을 내어놓고 있다. 이제는 공교육에까지 경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대안인 양 주장되고 있다. 능력 있는 인재가 더 큰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그런 사회를 만들겠노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틈바구니에서, 한사람이 1백보를 가는 것보다 모든 사람이 한걸음을 더 가는 사회는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하며 부족한 사람, 어려운 처지에 있는 단 한사람을 배려하는 ‘어리석은’ 정책, ‘어리석은 용기’를 가진 이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대선의 계절이다.

이런 어리석은 듯 보이는 투자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고 성숙하게 만든다.

대학 때 총기독학생회장을 지냈다. 졸업 후 서울YMCA 청년회원 활동을 시작해 87년 간사를 거쳐 올해 7월 시민운동에서만 20년이 지났다. 소비자보호, 법률구조, 사법개혁, 방송개혁, 공정거래 등 시민생활의 크고 작은 일에 함께했다. 시민의 것을 빌려 쓰면서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이들로 인해 피해당하는 시민 삶의 현장을 살피겠다. 강물처럼 흐르는 시민, 소비자의 마음과 생각을 드러내 알려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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