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위원회에서 재발방지를 위한 합의 서명을 위해 3주체가 다 모였다. 삼성 측과 가족대책위 그리고 우리 반올림. 삼성에서 언론플레이를 많이 했기 때문에 이번 재해예방대책에 합의한 것을 두고 ‘최종합의’라고 써먹을 것이 예측 됐었다. 그리고 보수언론과 경제지에서 대대적인 선전을 할 것이라고 생각해 삼성에서 나온 협상단 대표와 악수를 하지 않았다. 악수를 하는 장면이 사진으로 찍히면 그만큼 써먹을 좋은 그림이 어디 있겠나. 좋은 그림을 만들어줄 수 없어 악수를 거부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농성장에 돌아와서 보니 삼성에서는 보상과 사과는 아직 합의되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합의라고 기사가 뜨기 시작했다. 귀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상황이었다”_고 황유미 아버지 황상기 씨

고 황유미 아버지 황상기 씨가 지난달 12일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이하 조정위원회)’를 통해 재해예방대책에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 측과 악수를 거부한 까닭은 이랬다. 그동안 삼성과 언론보도로부터 얼마나 데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게 반올림은 오늘(6일)도 강남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122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미디어스는 지난 1일 설을 앞두고 반올림 사무실을 찾았다. 대다수 언론매체에들은 ‘최종타결’이라고 하는데 반올림을 왜 농성을 계속하고 있는 것인지 아주 단순한 질문으로부터 좌담을 시작했다. 고 황유미 아버지 황상기 씨와 반올림 임자운 변호사, 언론개혁시민연대 김동찬 사무처장이 참여했다.

▲ 미디어스는 지난 1일 설을 앞두고 반올림 사무실을 찾았다ⓒ미디어스

삼성 백혈병 사태 ‘최종타결’?…반올림은 왜 농성을 풀지 않나

미디어스 : 반올림은 13일 ‘최종타결’ 기사들이 쏟아진 다음날 ‘사과’와 ‘보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 이야기부터 해보자.

반올림 임자운 변호사(이하 임자운) : 삼성 측과 협상을 시작한 지 3년이다. 삼성에서 먼저 제기해 시작된 교섭은 ‘재해예방대책’과 ‘보상’, ‘사과’ 의제를 가지고 진행됐고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반올림 내 가족대책위라는 분들이 분열돼 나갔다. 삼성 측은 조정위 설치를 통합 교섭을 강하게 주장했고 가대위가 들어가면서 저희는 어쩔 수 없이 조정절차에 들어가게 된 상황이 됐다. 조정위는 3주체의 의견을 들어 지난해 7월 14일 조정권고안을 냈는데, 우리는 큰 틀에서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세부적인 수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삼성과 가대위 측에서 조정보류를 요청했고 협상은 중단됐었다. 그 사이 삼성은 자체적인 보상을 강행했고 그 분들에게 개별적인 사과와 보상을 진행했다. 그를 비판하면서 조정절차를 이행하라며 지난해 10월 7일부터 시작된 농성이 오늘로 118일째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던 중 조정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은 ‘사과’와 ‘보상’을 뒤로 미뤄놓고 ‘예방재해대책’부터 논의를 진행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요청했다. 그것을 3주체가 수용하면서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말까지 집중적으로 논의가 됐고 그것이 지난달 12일 발표가 된 것이다. 재해예방대책의 주요 내용은 알려진 대로 옴부즈맨 등 합의였다. 그런데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삼성은 직업병 관련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 농성 100일이 되는 날에는 가대위 분들을 회사에 불러 개별적으로 사과문을 주면서 기자들에게 삼성 직업병 문제가 3가지 모두 다 해결됐다고 종료선언을 해버렸다. 악랄하다고 생각한다.

미디어스 : 재해예방대책 협상이 타결된 12일 전후로 ‘최종협상’이라는 언론보도가 끊이지 않았다. 협상 당일의 분위기는 어땠나. 조정대상자 반올림 대표로 참석했던 황상기 아버님이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고 황유미 아버지 황상기 씨(이하 황상기) : 삼성에서 언론플레이를 많이 하기 때문에 ‘재해예방대책’ 합의를 두고 모든 협상이 다 끝난 것처럼 써먹을 것이라 예측됐다. 그리고 보수언론과 경제지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선전을 할 것이라 예상해 서명 이후 조정위원장과 악수하고, 삼성에서 온 협상단 대표와는 악수를 거부했다. 삼성 측과 언론매체들이 써먹을 좋은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반올림 입장에서 삼성과는 재해예방대책에는 보상에 합의한 적 없고 사과를 받은 적도 없다. 아니나 다를까, 당일 농성장에 돌아오니 그 같은 ‘완전한 합의’ 기사들이 뜨기 시작하더라. 귀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상황이었다.

미디어스 : 농성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데, 현재 상황은 어떤가?

▲ 고 황유미 씨 아버지 황상기 씨ⓒ미디어스

황상기 : 삼성 본관에서 118일차다. 건물에 가려져 그늘이 지고 하루 종일 햇볕이 들어오지 않아 영하 10도까지 오르내리는데도 반올림 활동가와 사회시민단체, 피해자분들이 농성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삼성은 그걸 알면서도 3가지 의제에 대해 다 해결됐다고 어처구니없는 얘기를 하고 있다. 보수언론과 경제지는 광고를 받기 때문이라고 해도 언론이 해야 할 근본적인 목적을 벗어난 행위일 수밖에 없다. 언론이 해야 할 일은 잘못된 삼성의 문제를 국민들에게 알려서 그 토대로 바꿀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언론이 사회에 왜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법원 판결로 본다면 유미를 비롯한 피해자들은 삼성의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등 이런 지도부에 의해 살해된 것이 되는 게 아니냐. 돈벌이를 위해 사람이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그들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 그리고 형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

임자운 : 12일 조정위가 보도자료를 냈다. “재해예방대책에 대해서는 3주체가 모두 동의하는 조정합의가 원만하게 이뤄졌으나, 나머지 조정 의제인 ‘보상’과 ‘사과’에 관해서는 조정 3주체의 입장 차가 워낙 커서 추가 조정 논의가 보류돼 있다”, “하지만 조정위는 나머지 조정 의제에 대해서도 조정 3주체와 사이에 협의를 계속해 나갈 의향이 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를 밝힌 것이다. 이건 반올림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라, 조정위에서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런데, 그 같은 보도자료 내용은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오히려 삼성이 낸 보도자료에 의해 정리가 돼 가고 있다. 현재 반올림은 조정위에 조속히 ‘보상’과 ‘사과’에 대한 조정에 나서라고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황상기 : 삼성 측에서 반올림과의 ‘보상’과 ‘사과’를 매듭지을 때까지 얼마가 걸리든 농성을 계속할 계획이다.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잘못된 삼성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대로 된 보상과 사과를 받아야 한다.

미디어스 : 최근 고 이은주 님에 대한 법원 판결이 있기도 했다. 난소암으로 재해판정을 받은 게 처음이라고 하던데, 삼성이 제시하고 있는 보상 대상에 포함돼 있나?

임자운 : 조정권고안이 거기까지 포괄하라고 했던 것이다. 포괄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치료비 정도만 보존되는 보상으로 한정돼 있다. 산재 인정되는 질환을 1군과 2군, 3군으로 나뉘고 있는데 난소암은 3군질환에 해당된다. 그래서 치료비 정도만 보존되는 수준이다. 하지만 병원비도 필요하지만 그로 인한 생계가 중요한 게 아니냐. 일을 할 수 없는 분들이 많은데 말이다. 모든 피해자들에게 최소한의 생계비 정도라도 보장해주라는 게 그래서 반올림의 수정 의견이었다. 그 바탕으로 추후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거였다. 그런데, 삼성 측이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 임의로 수정해 난소암 피해자는 3군 질환이 됐다. 그 같은 기준에 합당한 설명도 없다. 그리고 이의를 받아들이거나 하는 게 전혀 없기도 하다. 그리고는 그냥 합의서를 쓰게 만든다. 매우 부당한 처사다. 이 같은 삼성의 기준은 전면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황상기 : 십몇 년씩 암투병을 하는데 삼성에서 3천만 합의서는 내미는 경우가 있다. 치료비만 해도 1억 원이 훨씬 더 들어갈 텐데…. 삼성이 돈의 권력을 가지고 몹쓸 짓을 하고 있다.

임자운 : 삼성이 홈페이지를 통해 공시를 해놨다. 피해자는 그 절차에 따라 부당성을 떠나 적어도 그 정도는 받을 거라 신뢰하고 (보상금을)신청을 할 것이다. 3군질환이라고 하더라도 치료비 정도는 보상받겠지라고 생각을 한단 말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는 경우들이 발생하고 있다. 어떤 피해자의 경우, 삼성 측에 따지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삼성 측의 대응은 ‘소송걸어라’이다.

미디어스 : 삼성-반올림의 협상과정을 지켜보면서 든 것은 모든 ‘룰’을 삼성이 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

황상기 : 맞는 말이다. 삼성은 백혈병 등 직업병 피해와 관련해 가해자다. 그런 가해자가 룰을 정하고 안따라오면 안된다고 돈을 가지고 협박하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어떤 식으로 해도 말이 안 되는 논리이다. 그런데, 삼성이라고 하면 대통령도 꼼짝을 못하니…. 그러니깐 삼성이 국민들에게도 함부로 하는 것 아니겠나.

“삼성 백혈병 협상 보도?…‘나쁜 보도’의 모든 것을 보여줬다”

미디어스 : 삼성 백혈병 관련 ‘언론보도’의 문제로 넘어가보자. 일단 김동찬 사무처장이 12일 협상 그리고 그 동안의 삼성 백혈병 문제에 대해 보도가 어떻게 나가고 있는지 이야기해주면 좋겠다.

▲ 언론개혁시민연대 김동찬 사무처장ⓒ미디어스

김동찬 : 삼성 백혈병 관련 언론보도가 우리가 흔히 ‘나쁜 보도’라고 이야기하는 전형적인 모습을 다 보이고 있다고 보면 된다. 황상기 어르신도 어떤 보도가 나올지 예상하고 악수를 거부했다고도 하지 않았나. 가해자가 사건 해결을 주도해선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삼성은 예외다. 백번 양보해도 임자운 변호사가 이야기했듯 협상과정에서 조정위라는 공식 창구가 있었다. 그곳에서 사과와 보상은 합의된 게 없다고 사전 보도자료까지 뿌렸는데, 보도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공식 보도자료는 그날 언론보도에서 싹 날아가고 삼성 측에서 각색한 보도자료를 중심으로 기사들이 쏟아졌다. 그렇다면 그 다음날 반올림 기자회견이 보도가 됐어야 균형이라도 맞을 텐데, 그것도 제대로 안 다뤄졌다. 오히려 거꾸로 ‘이미 합의가 됐는데 반올림이 잉크도 마르기 전에 말을 바꿨다’는 기사가 등장했다. 기본도 안 되는 기사들이다.

황상기 어르신 말대로 12일 협상에서 ‘좋은 날인데’라며 손을 포개어 얹거나 악수를 했더라도 그것은 엄청난 선전이 됐을 것이다. 언론보도는 그야말로 사실관계도 엉망이고 저질 단계라고 보면 된다. 그래도 약간의 차이는 있다. 큰 언론사의 보수성향 매체들의 기본적인 스탠스는 ‘무관심’ 또는 ‘침묵’이다. 큼지막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관련 기사를 내보낸다. 문제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지들이다. 그리고 최근 눈에 띈 게 지상파 중 SBS였다. 그동안의 스탠스로 보면 보도를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운데 갑자기 보도를 이상하게 했다.

황상기 : SBS는 삼성 백혈병 문제와 관련해 제대로 다룬 적이 없다. 이번에 문제가 된 SBS 뉴스를 봤는데 말도 안 되는 논리였다.

김동찬 : 그래서 SBS에서 이 문제를 언제 다뤘나 찾아봤다. 그랬더니 삼성 측에서 1000억 원을 내기로 했다는 게 마지막이었다.…(중략)…SBS뉴스에서 황상기 어르신의 “사과와 보상 문제는 삼성에서 거부하는 바람에 아직 어떤 말도 못 꺼내봤거든요”라는 영상을 땄다. 거두절미하고 그 내용만 들어가니 반올림이 추가 요구하는 것처럼 맥락을 꼬아 놓은 거다. 왜곡이고 거짓이다. 마치 돈을 더 달라는 것처럼 말이다.

황상기 : 악랄한 보도다.

김동찬 : 그래서 궁금하다. 어떤 기자들이 반올림 기사를 쓰고 있는지. 삼성 출입기자들이 쓰는 것일 텐데, 그 삼성에 출입하는 기자들의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드러내면 좋을 텐데….

임자운 : 오랜 시간 삼성 백혈병 사건을 다뤄왔던 기자들 중에는 아직도 열심히 써주시는 분들도 많다. 그런 분들이 큰 도움을 준 것도 사실이고. 그런데, 삼성과의 교섭이 열리면서 크게 달라졌다. 반올림에 한 번도 전화한 적이 없는 삼성 출입기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기시를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삼성이 부린 보도자료가 토대가 될 수밖에 없다. 삼성 보도자료를 놓고 사건을 파악해 기사를 쓰는 것이 취재활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아주 가끔 그 중 열심히 하시는 분들 중에 전화를 주는 기자도 있다. 그런데, 저희도 황당한 게 ‘황상기 님이 누구시냐, 활동가시냐’라고 물어본다. 답답하다.

김동찬 : 올바른 건 아닌데 방송뉴스는 다양한 사안에서 기계적 균형을 맞춰 보도를 해오고 있다. 이견이 충돌할 때에는 1대 1의 균형을 맞춘다는 거다. 그런데 삼성 백혈병 문제에 있어서는 기계적 균형조차 없다. 반올림도 3주체 중 하나인데, 그 주체를 빼버리고 보도를 한다. 황상기 어르신이 누군지 모를 정도면 취재를 해서 기사를 써야지(깊은 한숨). 진짜 대단들 하다. 이해하기 어려운 게, 일반 뉴스를 쓸 때 자기 이름이 적힌 채 나갈 텐데 최소한의 팩트체크를 해야하는 거 아니냐. 특히, 이 문제는 사람들의 목숨과 건강이 달린 건데 무지한 상태에서 쓸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언론사 편집국)시스템을 논하기 전에 기자 개인의 인간적 양심을 지적해야 하는 이유이다.

미디어스 : 반올림에서는 언론보도에 대한 대응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 반올림 임자운 변호사ⓒ미디어스

임자운 : 그런 건 워낙 못한다. 기사 편향 이런 건 너무 많다보니…. 다만, 명확하게 사실관계가 틀릴 때 전화를 한다. 한 매체에서 삼성의 보상절차가 조정권고안보다 상향(더 높은 수준)된 부분이 있다고 보도했다. 그래서 직접 전화를 했었다. 어떤 근거를 가지고 그렇게 쓴 것인지 물었더니, 그 기자가 하는 말이 ‘그렇게도 볼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하더라.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면서 그것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 일도 있었다. 기자회견에 눈이 실명되신 장애 피해자 분이 오셔서 삼성의 보상절차가 말이 안 된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어떤 매체가 ‘당사자는 보상에 환영하고 있는데 제3자, 구경꾼이 반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올림은 둘째 치고 피해자의 명예 문제니까 너무 화가나서 전화를 걸었다. 그래서 ‘그 말은 피해자가 한 말이다’라고 수정을 요청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말은 ‘활동가들도 뒤에 서 있지 않았느냐’, ‘그 비슷한 말을 활동가도 하지 않았느냐’, ‘활동가들이 들고 있는 피켓에 그런 말도 있지 않았느냐’라고 하더라.

“언론대응?…최소한 지켜야할 선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소송준비 중”

미디어스 : 그렇다면 앞으로도 언론보도에 대한 대응 계획은 없나?

임자운 : 소송을 준비 중이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 지 난감하다. 그걸 정리하는 것이 제 몫이기도 하고, 여력이 안 돼 진행을 못하고 있었는데 그냥 넘어가진 않을 거다. 이번 소송을 통해 기자들에게 ‘최소한 당신이 지켜야할 선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그 선을 넘었을 대에는 어떤 대가가 따른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김동찬 : 10년 전만 해도 언론이 조금씩 나아지는 추세였다. 언론의 자유와 공론장 역할이 확대되는 시기가 있었는데, 정권 이야기는 좀 그렇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오면서 그런 역할을 했던 공영방송, 지상파 방송들이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데 그게 무너지고 나서 완전히 난장판이 됐다. 그래서 어디서부터 손대야할지 모르겠다. 이런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최근 방송뉴스들이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피해자와 가해자를 뒤바꾸는 보도를 하고 있는데 삼성 백혈병 문제와 유사해 보인다. ‘이제는 할머니들이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것 아니냐. 사과 또한 아베와 삼성이 비슷하지 않나.

황상기 : 언론을 통해 ‘삼성 문제 완전 합의’라는 제목이 나왔다. 삼성의 보상과 사과는 논의도 못해봤는데 말이다. 그 같은 보도가 나올 때마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주변에서도 ‘삼성과 합의 다 끝났지?’라고 묻는 분들이 계시다. 그래서 아직 아니라고 하면 나보고 거짓말 한다고 하더라. 언론에서 그렇게 보도를 했다는 거다. 이런 보도는 지양해줬으면 좋겠다. 삼성을 건강하게 만들자고 하는 합의인데 진보와 보수, 삼성과 반삼성 편으로 나뉘어 보도하는 건 말이 안 된다.

▲ 1월 12일 SBS '8뉴스'

미디어스 : SBS보도 등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안건을 넣어보는 건 어떤가?

김동찬: : 삼성 백혈병 문제를 놓고 공정하게 보도했느냐 아니냐를 국가기간에 심판해달라는 건 의미가 있지 않아 보인다. 장난질을 친 교묘한 보도다. 황상기 어르신의 멘트를 포함했기 때문에 SBS는 반론권을 줬다고 주장할 거다. 그걸 다 계산하고 보도한 것이기 때문에 심의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SBS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게 맞다. 통상적으로 특정 언론사 보도를 가지고 별도로 논평을 하거나 하진 않는다. 그런데, 이상했다. SBS는 원래 민감한 사안에 대해 특정한 입장을 주창하는 언론사가 아니다. 기계적 중립을 지키려고 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그래서 보는 사람들이 ‘대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이런 보도를 했을까’라고 더욱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작년 메르스 관련 삼성과 관련한 소동이 있었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모든 환자에 대한 치료를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밝혔었다. 그런데, 그 후 메르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못 버티고 다른 병원에 환자들을 이송했다. SBS가 이를 비판하면서 ‘말을 바꿨다’고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이재용 회장의 사과 장면 등이 포함됐었다. 그런데 그 부분이 뉴스에서 삭제됐다. 내부에서 앵커를 다시 불러 재촬영을 한 것이다. 당시 기자의 동의도 받지 않은 상태였다. 그 사건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밖에 없지 않겠나. 당시 SBS 간부의 해명이 ‘SBS에서 갑자기 이재용을 비판하는 보도가 나가면 주변에서 의심을 한다’는 거였다. 그런 억측을 방지하기 위해 새롭게 녹화했다는 해명이었다. 그러다보니 이번에 삼성 백혈병 보도의 경우, 거꾸로 의심받을 상황이 아닌가.

삼성 측 교섭을 이끈 백수현 전무는 SBS간부출신이다. 그런 것들도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현재 청와대 홍보수석이 SBS보도국장 출신 김성우 씨다. 그가 청와대로 가고 나서 SBS 뉴스가 한쪽으로 기울었다는 평가들이 많다. 그런 점에서 삼성 백혈병 관련 SBS 보도에 백수현 전무의 영향이 있었을 거라는 의심이 되는 것이다. 특히, SBS 자체적으로도 오너 체제의 상업방송이라는 점에서 이번 뉴스가 재벌 눈치보기 편향이라는 점에서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미디어스 : 언론매체들이 삼성 백혈병 관련해서 이 같은 보도를 하고 있는 게 광고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임자운 : 삼성의 광고 때문에 이익에 충실한 기자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더 많은 기자들은 그냥 자기가 출입하는 곳에서 나온 보도자료를 쓰는 행위라고만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 같은 자료가 왜 나왔고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상대방에 대한 인권침해를 가할 수 있는 건 아닌가라는 고민보다는 ‘보도자료가 나왔네, 써야지’가 되는 것이다. 한 기자가 써야할 여러 개 중 하나일 뿐이다. 궁금점이 생기지도 않고 이게 거짓말인지 따지고 싶지도 않고 말이다. 그래도 몇 명은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러면 그걸 삼성에 물어보는 거다. ‘반올림은 대체 왜 그러는 거에요?’라고 말이다. 그렇게 반올림의 입장은 삼성의 입을 통해 나오게 된다. 그러고 기자는 속으로 ‘난 취재까지 해서 썼다’고 생각할 것 아닌가.

“반올림의 입장이 삼성의 입을 통해 나온다…기자는 ‘취재해서 썼다’고 생각하겠죠?”

김동찬 : 개인에 초점을 맞추고 보면 임자운 변호사의 분석이 맞을 것이다. 악의적 소수 기자들을 제외하고는 출입처에 대한 편향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것을 넘어서 한 단계 위에서 보면 달라진다. 기자는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면 데스크가 게이트키핑한다. 만일, 그 같은 기사들이 걸러지지 않는다면 데스크의 편향 때문인 것이다. 제대로 된 데스크라면 ‘삼성 측 얘기만 있으면 안 되지’라고 추가 취재를 요청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왜곡된 보도들은 의도됐다고 보는 편이 옳다. 이런 문제도 제기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대기업을 이른바 조지는 기사를 쓸 대에는 확실한 팩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속에서 기자들의 자기검열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대기업을 홍보하는 기사는 그렇지 않아도 된다.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재벌 대기업 편향이다.

임자운 : 재밌는 경우도 있었다. 최근 한 매체 젊은 기자와 교섭장에서 명함을 주고받은 뒤, 해당 기자가 메시지를 통해 이것저것 물어보더라. ‘자기가 생각해도 이상하다’는 이야기를 하기에 ‘관심을 갖고 있구나’해서 잘 이야기를 해줬다. 속으로 ‘이 언론사가 우리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심 가지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방재해대책 교섭 이후, 해당 기자가 어떤 기사들을 썼는지 찾아봤다. 그런데 ‘반올림의 무리수’라고 시작을 하더라. 그 분에게 그렇게 열심히 답변해줬는데…. 그래서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나’, ‘기사 쓴 내용 중 이건 사실과 다르다’라고 했더니 그 후 연락이 끊겼다. 그런데, 놀랐던 것은 그 비슷한 질문들이 비슷한 시기에 여러 활동가들에게 동시에 갔다는 점이었다. ‘가대위와의 관계 회복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등의 물음이었는데, 생각해보니 가대위에 대한 비난을 끌어내려고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유도심문을 한 게 아닌가 싶다. 불쾌해지더라. 참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고.

김동찬 : 언론대응을 이런 걸 해야 한다. 저도 궁금하다 동시에 다른 기자들이 여러 활동가들에게 비슷한 질문을 했다면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새로운 사실을 들춰내야 하는데 못하고 있다. 최근 MBC사측과 보수 매체의 더러운 커넥션이 드러났다. 기업 재벌 대기업과 작은 매체들 사이에는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조사해봐야 한다. 언론의 본질로서 하는 게 아니라 거래의 대상으로 보는 게 비일비재한 것 같다. 실제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말이다.

임자운 : 어떤 분이 반올림에 인터뷰를 하러 왔다. 여기까지 오신 거니까 최대한 친절하게 응대를 해서 보냈다. 그런데, 한 활동가가 ‘저런 분은 기사를 가지고 광고 거래를 한다’라고 이야기를 하더라. 그걸로 인해 삼성의 눈에 띠이고 그 후, 삼성 편향 기사를 쓴다는 거다. 아니나 다를까, 그 잡지는 정말 기업을 홍보하는 잡지였다.

김동찬 : 전에는 작은 매체들만 그랬는데 이제는 KBS와 MBC, SBS 등도 자사 이해가 걸리기 시작하면 상대방을 공격하는 게 만연해졌다. 어디서부터 고쳐 나가야할지 모르겠다. 반면, 언론사들이 수익이 줄어들고 있는 건 사실이다. 매체가 많아지니까. 기존 큰 방송사라고 했던 지상파 3사도 광고가 줄어들고 수익이 감소했다. 기업눈치를 더 볼 수밖에 없는 환경인 것이다. 언론악법 개악으로 종편 4개를 시장에 던져 언론사들이 자연스럽게 기업과 권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도록 한 것이다. 한쪽에서는 시장에서 재벌 대기업 위주로 바꾸면서 말이다. 점점 미디어를 언론으로서 기능하게 하기보다는 이윤추구를 위한 대상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스 : 그렇다면 JTBC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황상기 아버님의 경우, JTBC에 많이 출연을 하고 있고 다른 방송뉴스보다도 그나마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 않나.

김동찬 : 중앙의 경우, 한쪽으로 중앙일보를 다른 한쪽에는 JTBC라는 걸 가지고 있는 기업이다. 양 쪽의 소비자를 함께 가져가는 게 삼성의 전략 아니겠나. JTBC의 경우, 자기 통제 안에 있다는 점에서 외부의 통제 안 되는 언론과는 다른 차원에서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에서의 사과와 보상, 해외에도 영향…교섭에 묶여 일 못하고 있다”

미디어스 : 삼성과 언론을 주제로 이야기를 하다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싶기도 한데….

▲ 조정위의 조정의제 중 '재해예방대책'에 관한 조정합의 성립 보도자료

김동찬 : 우선 반성부터 하고. 삼성전자에서 일어나는 건 건강권 문제이다 이 사안으로도 중요한 일이지만 삼성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거듭나게 하는 게 우리 사회가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삼성이 그렇게 되도록 못하는 게 언론이다. 책임이 가장 크다. 삼성과 언론이 관계를 상징하는 사건이라고 본다. 삼성과 언론의 문제로 자본과 관련해서는 최우선으로 잡아야하지 않을까 싶다.

임자운 : 사안을 단순하게 보면 2007년 유미 씨가 돌아가셨을 때부터 2014년 5월 삼성이 공개사과를 했던 때까지는 삼성의 입으로 직업병 피해자를 거론하기 전까지 언론의 역할을 침묵이었다. 그 같은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 것. 삼성의 태도와 같다. 그런데 반올림이 아니라고 하니까, 반올림을 까기 시작한 것이다. 반올림을 까는 논리도 단순하다. 하지 않은 말을 얹는 것도 있다. 그런데, 가장 주된 논리는 우리의 요구와 주장을 과장하는 데 있다. 우리도 기준이라는 걸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 내용을 가지고 협상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피해자와 모든 배상 액수까지 과장에서 이야기를 하고 사과도 모든 걸 요구하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를 하니까 답답하다. 우린 그게 아니다. 협상이라는 것은 대화가 이뤄지는 과정이다. 저쪽 말이 현실성이 있다면 수용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과정을 놓고 반올림을 ‘고집만 하는 단체’라고 하니까 안타깝고 억울하기도 하다.

황상기 : 노동자들이 죽음에 내몰린 사건이다. 그들은 삼성에 의해 살해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등 경영진들이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하고 일선에서 물러나야할 일이다. 산업 안전과 보건 문제를 소홀히 해서 수백 명이 병에 걸리게 됐다.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한다. 이를 그대로 묵인한다는 것은 대기업답지 못한 태도다. 보상하는 척만 하지 말고 국민과 상생해서 그 사회가 안정적으로 커나가고 노동자와 가족들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디어스 : 삼성이 이제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외국에도 공장들이 있을 텐데 그쪽에서는 문제가 없나

황상기 : 브라질 법원에서 이건희 회장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한 일이 있었다. 삼성공장이 있었는데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떼어먹고, 과한 야간 및 장시간 노동을 시켰다. 그로 인해 노동자가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지만 하나도 책임을 안지면서 발생했던 일이다. 현재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그 같은 사실이 분명 있었던 일이다.

임자운 : 아차, 반올림을 공격하는 내용 중 하나가 그런 것도 있다. 반올림이 교섭에 목메는 이유가 존재 이유를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얘기가 그것이다. 벌써 9년째 된 일이다. 반올림이야말로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일단락 짓고 싶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 문제 때문에 다른 일을 못하고 있다. 대기업 협력업체와 이주노동자들을 상대로 하는 말도 안 되는 사고가 벌어지고 있는 게 한국사회다. 해외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한국에서의 법 논리와 보상, 사과가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기도 하다.

황상기 : 그런데 교섭에 묶여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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