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판결은 명확하다. 완성차공장에 독립적인 ‘도급’은 불가능하며 현대차, 기아차, GM 등은 수천명의 노동자들을 ‘불법’으로 파견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대법원 포함 8번의 근로자지위확인소송 결과, 법원은 완성차 회사의 불법파견을 지적했고 당장 정규직화할 것을 명령했다. 그런데 회사들은 시간을 끌면서 숫자놀음을 하고 있다. 법원을 비웃기라도 하듯 일부의 노동자들만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며 ‘협상’하고 있다.

서울 한복판 고공농성은 그래서 시작됐다.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인 한규협 최정명 두 사람은 지난해 6월11일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전광판에 올랐다. 한규협씨는 4일 미디어스와 전화인터뷰에서 “소송을 제기한지 3년4개월 만에 1심 선고가 났다. 전원 승소였다. 그런데 회사는 시간을 끌면서 일부만 정규직화하겠다는 안을 내놨다. 현장투쟁, 선전전, 집회…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봤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이곳에 올랐다”고 말했다.

▲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모습(사진=미디어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이 일하는 기아자동차 화성, 소하, 광주공장에는 총 64개 하청업체가 있고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의 각 지회·분회에 소속된 사내하청 노동자는 총 2800여명이다. 이중 514명의 하청노동자는 2011년 7월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2014년 9월 법원은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기아자동차와 사내하청업체가 체결한 도급계약은 실질적으로 근로자파견계약에 해당한다는 판결이었다. 퇴직·사망하거나 정규직으로 전환돼 소송인단에서 빠진 일부를 제외하면 모두 승소했다. 그러나 기아차는 곧장 항소했다.

이 사이 2012년 8월 기아차 노사는 불법파견 정규직화와 비정규직 처우개선 문제를 두고 특별교섭을 시작했으나 회사가 ‘일부 정규직화’를 제안한 탓에 교섭은 어그러졌다. 2013년 4월16일 광주분회 소속 조합원인 김학종씨가 ‘분신’하는 비극도 있었다. 회사는 2014년 9월 1심 선고를 앞두고 350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는 안을 제시했으나, 법원 판결에도 미치지 못하는, 오히려 ‘불법’으로 평가할 만한 내용이었다.

회사가 조금 물러선 것은 2015년 초 520여명이 추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다. 노동자들의 소송 제기 직후, 기아차는 ‘400명’ 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여전히 법원 판결을 무시한 숫자놀음이었다. 노동조합은 정몽구 회장 자택 앞까지 다가갔으나 회사는 ‘465명’ 안을 내놨다. 소하분회는 그해 5월12일 회사 안을 받아들였으나, 화성·광주지회는 회사가 법원 판결에 따라 사내하청노동자 전원을 정규직화해야 한다며 계속 투쟁 중이다.

회사들도 불법파견 판결이 뒤집어질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그래서 특별교섭을 통해 정규직화 규모, 근속연수 인정 기간, 위로금 등을 협상한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세가 약해지고 투쟁 수위가 낮아지고 비판 여론이 잦아들기만 바라며 시간을 끌고 있다. 4일 구 인권위 건물 맞은편 농성장에서 만난 최종원 ‘기아차 고공농성’ 상황실장은 “그래서 2일 특별교섭 결렬을 선언했다”고 전했다. 그는 “회사가 여론에 밀려 교섭에 다시 나왔으나 새로운 안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정몽구 회장은 기자들을 데리고 현장을 시찰하지만 그 안에 있는 ‘불법파견’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회사는 오히려 고공농성 중인 두 노동자를 ‘해고’하기까지 했다. 최종원 상황실장은 ‘해법’을 묻는 기자에게 “정부도 검찰도 국회도 언론도 정몽구 회장의 불법에 대해 침묵한다. 오히려 면죄부를 주고 있다. 청와대 앞에서 1인시위를 하는 시대인데, 정몽구 회장 집에서는 할 수가 없다. 경찰, 용역, 하청업체 사장들이 모두 몰려와 막는다. 정몽구 회장의 권위와 위세는 대통령보다 높고 세다.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야 풀 수 있겠나”라고 되물었다.

답은 ‘투쟁을 계속하고 언론이 이를 보도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재벌의 불법에 대해 문제제기해야 할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한다. 최종원 실장은 “수십명의 기자들이 이곳에 다녀갔지만 대부분 ‘미안하다. 데스크에서 기사가 잘렸다’고 한다. 한겨레와 경향신문도 200일 즈음해 다시 한 번 기사를 썼다. 언론이 잔인하리만치 침묵하고 있다. 고공농성 백일을 맞아 한겨레와 경향에 광고를 내려고 했는데 ‘정몽구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것은 안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 2016년 2월4일 구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맞은편 기아차 노동자들의 농성장의 모습 (사진=미디어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고공농성 중인 한규협씨는 ‘언론에 서운하지 않나’라는 질문에 “한편으로 이해가 된다. 그러나 기아차 불법파견 문제는 기아차 비정규직 몇천명만의 문제가 아니다. 진보언론에서조차 우리를 외면해서 서운했다. 처음 이곳에 올라와서 40일 동안 강제로 단식을 하게 됐다. 이곳에서 보는 경찰, 사측, 인권위, 언론의 모습은 일심동체였다. 한국에서 재벌은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 된 것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기아차는 분명 노동자들이 지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 기아차와 현대차가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한다면 소송이 줄을 이을 것이다. 두 회사가 시간을 끄는 이유는 ‘자본의 이해관계’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시간을 끌면 노동조합의 투쟁력이 약해지고 교섭 타결을 바라는 조합원이 많아진다. 퇴직자도 생긴다. 언론에서도 잊혀진다. 최종원 상황실장은 “더 많은 언론이 회사의 범죄에 대해 더 많이 알려주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면 어디선가 뚫려 (노동계 전체에 산적한 불법파견 문제가) 터져나올 수 있다. 절박하고 힘들지만 싸움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일반해고 지침(공정인사 지침)을 강행하고, 제조업에까지 파견을 허용하는 파견법 개정을 밀어붙이는 상황을 고려하면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싸움은 ‘불법파견’을 둘러싼 마지막 싸움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이 싸움의 의미는 크다. 한규협씨는 “자동차제조업체 내에서 불법파견을 가지고 고공농성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보고 있다. 물러설 수 없다. 우리를 내고 용기를 내는 많은 비정규직이 있기 때문에 대충 마무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의 고공농성은 240일(2월5일 기준)이 넘었다.

싸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설날에 정몽구 회장 자택을 찾아 ‘절’을 올릴 계획이다. 고공농성 중인 한규협씨는 혈압으로 약을 복용하고 있으나 효과가 없는 상태로 전해졌다. 그는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힘들다. 그래도 가족이 모두 지지해주고 어려운 상황을 참아내고 있다. 시민단체와 종교계가 너무 많이 도와줬다. 더 바란다면 그건 욕심일 것”이라면서도 “저희 상황을 알고 있고 심정적으로 지지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제는 몸으로 나서 저항을 해야 할 때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노동개악이 ‘지침’으로 현장에 내려가고 있다. 실제로 노동조합이 약하거나 노조가 없는 곳에서는 지침이 일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파견법도 개악한다. 비정규직은 파리목숨이지만 이제는 아예 보호조차 받을 수 없게 된다”며 “당장은 참을 수 있을지 몰라도 버티기 어려운 시기가 올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있을 만큼 실천하고 싸워야 한다. 총선을 통해서도 정부에 명확한 경고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 고공농성 초기 경찰은 밥까지 막았다. 현재 가족들과 조합원들이 식사를 올려보내고 있다.(사진=미디어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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