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 정부여당 추천 상임위원들이 ‘MBC 녹취록’ 파문에 대해 MBC와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에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특별조사를 실시하자는 야당 추천 상임위원들의 제안을 거부했다. 지난달 25일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녹취록에는 MBC 경영진이 지난 2012년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를 불법으로 해고하고 각종 방송프로그램의 아이템과 패널을 통제하고 있다는 발언이 담겨 있다. 이에 김재홍 부위원장과 고삼석 상임위원은 4일 전체회의에서 관련 안건을 제의했으나 최성준 위원장 포함 이기주 김석진 등 정부여당 추천 상임위원들은 ‘MBC와 방문진에 자료를 요청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반대했다. 방통위는 추후 상임위원 간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으나 다수의 상임위원이 반대 입장을 밝힌 만큼 방통위가 이번 사태에 개입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 4일 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 모습. 김재홍 부위원장(사진 왼쪽)과 고삼석 상임위원은 방통위가 MBC와 방송문화진흥회에 자료제출을 요구하고 이들에 대해 특별조사를 벌여야 한다는 입장이나, 이기주 상임위원(가운데)와 김석진 상임위원은 방통위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가 법적 근거 또한 없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최성준 위원장(오른쪽) 또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사진=미디어스)

녹취록을 보면, 백종문 미래전략본부장은 2014년 보수매체 폴리뷰 박한명 편집국장 등과 만난 자리에서 지난 2012년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를 “증거 없이 해고”했고, TV·라디오 시사보도프로그램의 아이템과 패널을 “통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MBC와 폴리뷰는 ‘일부 과장된 발언이 섞인 사적인 대화’라는 입장이나, 208쪽(A4 용지 기준)에 이르는 녹취록에는 불법해고와 방송통제를 의심할 만한 발언들이 수차례 등장한다. 경력직 직원을 채용하면서 ‘출신지역’을 고려했다는 발언도 나온다. MBC 안팎에서는 ‘보수화한 공영방송이 불법으로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고 방송을 통제하고, 보수인터넷매체와 함께 여론전을 벌인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녹취록이 공개된 직후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김환균), 언론노조 MBC본부(본부장 조능희), 언론개혁시민연대(대표 전규찬) 등이 참여한 MBC정상화를위한공동대책위원회(MBC공대위)는 최성준 위원장 면담과 방통위의 특별조사를 요청했다. 그러나 당일 최 위원장은 ‘불법해고’ 논란에 대해 “노사문제”이고 ‘방송통제’ 문제에 대해 “방송법 상 금지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다.

▲ 최성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사진=미디어스)

이에 대해 김재홍 부위원장과 고삼석 상임위원은 2013년 방통위는 MBC를 재허가하면서 ‘2012년 파업에 따른 조직 안정화 방안을 마련하고, 방송 프로그램 제작 차질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을 권고했고 이에 대해 정기적인 점검과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고, 백종문 본부장의 발언은 제작편성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규정한 방송법 제4조를 정면으로 위배한다는 것이라며 방통위가 MBC와 방송문화진흥회에 대해 특별조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두 상임위원이 MBC와 방문진에 자료제출을 요구하는 안건을 제의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재홍 부위원장은 전체회의에서 “고용노동부, 국가인권위원회, 방통위가 조사에 나서야 할 사안”이라며 “부당·불법해고가 이루어졌고 제작편성의 자율성을 침해한 문제에 대해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방송법,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 방송문화진흥회법 등을 거론하며 “방송의 공적 책임, 사회적 책임을 지키지 않은 MBC와 방문진에 자료를 요구하고 조사하는 것은 방통위의 기본 책무”라고 강조했다. 그는 “MBC와 방문진에 자료를 요청해 녹취록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고 후속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삼석 상임위원은 “녹취록을 통해 MBC 고위임원과 주요간부들의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행태를 확인할 수 있다”며 “국민의 눈높이에서 다뤄야 한다. 공영방송의 중요한 가치를 MBC 내부로부터 훼손한 경영진에 대해 단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MBC 문제는) 단순한 노사문제가 아니다. 근거 없이 노조원을 해고하는 것을 넘어 경력직 중심으로 채용하고 교양제작국을 폐지하면서 장악력을 높이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편성에 대한 개입 또한 본인들 입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을 정상화해야 한다. 공영방송이 무너진 뒤에도 ‘방통위는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여당 추천 상임위원들은 MBC와 방문진에 대한 자료제출 요구는 방통위의 ‘월권’이라고 주장했다. 이기주 상임위원은 “정치적 중립성을 천명한 방통위법을 고려할 때 이 사안은 방통위의 업무가 될 수 없다”며 “(자료제출 및 특별조사가) 방통위의 심의의결 사안이라는 법적 근거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2013년 방통위가 MBC에 ‘조직 안정화’를 권고하고 이행실적을 제출할 것을 요구한 것 또한 추후 재허가 때 반영하겠다는 취지였다고 주장했다.

MBC 출신인 김석진 상임위원은 “시민단체 등 제3자가 MBC 내부 노사분쟁에 개입해 노조 입장만을 주장하고 있는데,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하는 방통위가 한쪽 주장에 편승해 휩쓸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노사갈등이 첨예한 시점에서 담당 본부장이었던 사람이 극히 사적인 자리에서 울분을 토하거나 자신의 직무에 대해 과시하고 과장했을 수 있다. 편성에 개입했다고 말한 것이 사실이라고 치더라도 실제 실행됐는지도 알지 못한다. 이 사안은 MBC의 관리감독 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견이 2대2로 갈린 상황에서 최성준 위원장은 “이 안건이 방통위가 심의의결할 수 있는 것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료를 제출받더라도 후속조치를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도 말했다. 그는 ‘방통위에 방문진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이 있는 만큼 우선 방문진에 대한 자료 제출을 요구해야 한다’는 고삼석 위원 제안에 최성준 위원장은 “방통위가 방문진에 미주알고주알 자료를 달라고 한다면 방통위와 MBC의 중간다리 역할을 하기 위해 방문진을 설립한 취지가 유지될 수 있는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다만 최성준 위원장은 “간담회를 통해 위원들 사이에서 다시 한 번 의견을 모으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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