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백종문 미래전략본부장이 부당하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무리하게 해고를 추진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의원이 25일 공개한 녹취록에 담긴 내용이다. 녹취록에는 공영방송 MBC가 법적 증거가 불충분함에도 ‘노조 파괴’를 위해 무리하게 해고자를 발생시킨 점 이외에도 김재철 체제 이후 자리를 잡은 간부들의 편향된 시각과 폴리뷰라는 보수성향 매체 대표의 집요하고 구체적인 청탁 사실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와 한겨레가 대서특필한 이 소식은 보도 직후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 관련기사 : “최승호·박성제 파업 배후 증거 없지만 해고했다”…MBC 녹취록 파문)

종편 JTBC <뉴스룸>은 25일 <MBC 임원 "증거 없는 것 알고도 최승호·박성제 해고">라는 단신을 내보냈다. <뉴스룸>은 “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의원이 공개한 녹음 파일을 보면, MBC 백종문 미래전략본부장이 2014년 4월 보수 성향의 인터넷 언론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 두 사람을 해고시킬 때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될 것을 예측하고 해고시켰다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 당시 백 본부장이 ‘이들이 노동조합 파업의 후견인이어서 가만 놔두면 안 되겠다 싶어 해고를 시켰다’고 말한 내용도 들어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같은 날 지상파 메인뉴스 가운데 ‘MBC 녹취록’을 다룬 곳은 전혀 없었다. ‘당사자’인 MBC는 오히려 다소 이례적인 보도를 선보였다. 최민희 의원이 공개한 MBC 녹취록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대신 최민희 의원이 선거법 논란에 휘말렸다는 단신을 배치한 것이다.

▲ 1월 25일자 MBC <뉴스데스크>

<뉴스데스크>는 <남양주 출마 최민희 의원, '선거법 위반' 논란 내사> 제목의 보도에서 “경기도 남양주에 출마선언을 한 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의원이 남양주시청에서 회견을 마친 뒤, 시청 사무실을 돌며 직원들에게 인사를 한 것으로 확인돼 경찰이 선거법위반 여부를 내사하고 있다”며 “현행 공직선거법은 예비후보가 선거운동을 위해 호별 방문을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경찰은 인사 차원이었는지 선거운동 목적이 있었는지를 조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이 최민희 의원 선거법 위반 논란에 대한 내사를 진행 중이라는 소식은 지난 20일 경기일보가 앞서 보도한 바 있다. 출마 기자회견 후 시청 사무실을 돌며 인사를 돈 것이 ‘호별방문’이어서 현행 공직선거법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는 선거법 위반 사실이 확정된 것이 아닌 ‘경찰 내사 단계’에 해당하는 소식이다. MBC는 이를 5일이나 뒤늦게, 지상파 3사 중 유일하게 메인뉴스에 올렸다.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결국 MBC 심기를 건드리는 불편한 사실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최민희 의원이 ‘저격’ 당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소셜미디어 등 공간에서는 ‘방송 사유화’라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다.

MBC의 최민희 의원 관련 보도는 파급력이 상당했다. MBC가 보도하기 전까지만 해도 최민희 의원 선거법 위반 의혹제기를 보도한 신문은 경기일보 정도에 불과했으나, MBC 보도 이후 연합뉴스, 헤럴드경제, 국민일보, 중부일보, SBS, 뉴스1, YTN, 일요신문, 아시아경제, 동아일보, OBS, 뉴시스, 세계일보 등 여러 언론이 관련 소식을 다뤘다. 그 전까지는 뉴스 가치가 없다고 생각된 사안을 MBC가 보도하니 그저 안심하고 별 고민없이 따라 보도한 것인지, 아니 더 나아가 MBC의 '보복'을 동업자 입장에서 거든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 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의원 선거법 위반 논란 기사들

MBC에겐 너무 무거운 공영방송이란 이름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조능희, MBC본부)가 MBC 보도 및 정책을 비판적으로 지적할 때, ‘해사행위를 중단’하라거나 노조의 주장을 ‘발목 잡기’라고 힐난하는 장문의 입장을 내놓았던 MBC는 이번 일에 침묵을 지키고 있다. 파괴력 있는 사안에 대한 관심이 잦아들기만을 기다리는 모습으로 읽힌다.

이번 녹취록 파문은 현재의 MBC가 얼마나 건강하지 못한 조직으로 존재하는지를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녹취록에 다른 언론사보다 높은 공적 책임을 가진 ‘공영방송’ MBC가 경영진의 의사와 반한다는 이유로 역량 있는 사원들을 잘라냈다는 점, 부당해고 소송에서 질 것을 뻔히 알았음에도 해고를 강행하고 이후 항소 항고로 지난한 법정 다툼을 계속하고 있는 점, △정보원 지정 △100분 토론 및 라디오 프로그램 패널 출연 △외주제작 등을 통한 재정적 지원 등을 대놓고 요구하는 보수매체의 청탁을 성사시킨 점 등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MBC는 언론노조 MBC본부에 대한 언론플레이를 하는 데에 해당 매체를 활용하기까지 했다.

결국 보도국 장악, 교양국 해체와 법무실 확대를 포함한 조직개편, 무단협 유지 및 언론노조 MBC본부 배제 기조 등 그동안 MBC가 둔 수많은 ‘악수’들이 일정한 방향성을 갖고 이루어진 것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을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 관련기사 : 억대 손배 청구, 시용인력 채용… MBC가 새로 쓴 역사)

체질 변화를 바라는 경영진 몇에 휘둘리고, 지상파 방송사의 가장 큰 무기인 ‘뉴스’를 자사 방어 혹은 자사 비판 세력을 향한 공격의 무기로 쓰며, 노조원들을 향한 부당노동행위와 언론사와의 지저분한 뒷거래가 드러났는데도 그저 입을 다물고만 있는 것이 MBC의 현실이다. 치부를 인정하지도 비판을 수용하지도 않는 MBC에게 공영방송이라는 타이틀은 너무나 무겁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