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보도·시사교양·드라마·예능 전 분야에서 활약하는, ‘만나면 좋은 친구’였던 MBC는 MB정권 이후 본격화된 언론장악의 피해를 가장 크게 입은 곳 중 하나다. 특히 2010년 3월, 김재철 사장의 부임 이후 MBC는 새로운 역사를 하나 둘씩 쓰기 시작했다. 사측은 ‘화합’을 도모하기 위한 걸로는 보기 힘든 결정을 반복했고, 노동자들은 결국 최후의 수단인 파업으로 맞섰으나 4년 후인 현재도 상흔은 지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예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사건’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노조 위축’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MBC 초유의 사태’들 6가지 사례를 정리했다.

1. 노동조합에 억대 손해배상 청구소송 제기

2012년 1월 30일,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이하 MBC본부)는 총파업에 나섰다. 대선을 앞두고 점점 더 정부여당 편향적으로 변하는 보도에, 기자들이 가장 먼저 마이크와 카메라를 내려놓았고, 파업은 170일 간 이어져 언론사에 남을 기록을 세웠다. 공정방송을 약속한 김재철 사장은 파업 장기화에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손해배상 청구’라는 강수를 뒀다.

▲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MBC는 2012년 3월, MBC본부와 집행부 16명 전원을 대상으로 30여억원의 손배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노조에 따르면 이 같은 일은 “언론사상 처음”이었다. 파업이 종료될 즈음, MBC는 ‘파업 장기화로 인한 광고수익 감소’를 이유로 손배 금액을 6배 가량 올렸다. 당시 정영하 본부장을 비롯한 집행부 재산, 이용마 홍보국장의 급여 및 퇴직금, 노조 계좌 등이 가압류됐다.

노조는 파업으로 인해 매달 인건비 30여억원을 보존했던 점, 프로그램 결방 등의 타격이 적었던 점을 들어 회사의 주장을 반박했는데, 1, 2심 법원 모두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일부 절차상 노조 파업은 불법이라는 원고(MBC)의 주장이 있지만 그로 인해 (파업의) 정당성을 해칠 정도는 아니라고 보인다”며 “정당한 파업”이라는 것이 법원 판결의 요지다.

2. 시용 인력 대거 수용, 신입 대신 경력 채용

MBC본부의 170일 파업은 길었다. 이에 대한 사측의 대응은 강경한 노측과 대화와 협상을 통해 사태를 최소화하기보다는, 감정의 골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MBC는 공정방송 쟁취 및 김재철 퇴진을 외치는 노조의 파업을 ‘불법 정치파업’으로 규정한 후, 대체인력을 통해 방송의 빈틈을 메워 나갔다. 임시직 기자 모집, 시용기자 채용, 프리랜서 아나운서 모집 등 다양한 수가 동원됐다.

가장 파장이 컸던 것은 바로 ‘시용기자’ 채용이었다. MBC는 2012년 5월, 1년 근무(사용) 후 정규직 여부를 결정하는 조건 아래 경력기자를 뽑았다. 수습기자보다도 불안전한 고용형태인 시용기자 채용은 언론사상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일정 기간 후 근로관계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 도입에, 언론계 안팎이 시끄러웠다. MBC 논설위원들조차 “시용기자들이 MBC에 들어온다면 보도 부문의 새 출발은 시작부터 삐걱거리게 된다”며 “파업 찬성, 반대를 넘어서는 본원적 문제”라고 반대 의사를 밝힐 정도였다. MBC 기자회·영상기자회는 “동료들의 등에 칼을 꽂고 회사 쪽 꼭두각시 역할을 자처하는 대체인력은 김재철 체제의 부역자와 다를 바가 없다”며 채용에 지원하지 말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MBC의 일방통행은 파업 후에도 계속됐다. MBC본부 파업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PD수첩> 메인작가 6명 전원이 해고됐고, 그 자리는 대체 작가들이 메웠다. 2012년 12월 방송된 <PD수첩>은 대체 작가와 시용 PD들의 작품이었다. 급기야 MBC는 2014년 4월, 데스크급 경력기자까지 외부 영입을 추진해 내부 반발을 일으켰다. 당시 MBC가 내세운 이유는 ‘순혈주의 타파’와 ‘조직 경쟁력 극대화’였다. 2015년 5월, MBC본부가 낸 노보에 따르면 2012년 이후 뽑힌 68명의 기자 중 58명이 보도국 취재센터 소속이었던 반면, 2012년 이전 입사 기자들은 파업 후 경인지사 등 비제작부서에 다수 포진돼 있었다. MBC의 ‘체질 변화’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파업 이후 정규직 대신 계약직을, 신입 대신 경력직을 뽑는 풍토도 자리 잡았다. 최민희 의원실이 2013년 2월부터 2015년 10월까지 상시채용 공고 현황을 분석한 결과 MBC는 100건의 계약직 채용 공고를 냈으며 이 가운데 94건이 1년 단위의 계약직이었다. 같은 기간 뽑힌 정규직은 160명이었던 반면, 비정규직은 8배에 달하는 1328명을 채용했다. 160명의 정규직 중 신입사원은 일반직과 업무직을 포함해 20명에 불과했다.

▲ ⓒ미디어스

3. 보도영상 부문-시사교양국 해체… 논란의 ‘조직개편’

김재철 사장 때부터 안광한 사장 체제에까지 이어진 논란의 조직개편도 빠질 수 없다. 장기 파업 중이던 2012년 4월, 김재철 사장은 <PD수첩> 부서가 속한 시사교양국을 해체(시사제작국-교양제작국으로 분리)하고 <시사매거진 2580>이 속한 보도제작국을 보도본부에서 편성본부로 이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조직개편안을 확정했다. 2014년, 안광한 사장은 반쪽이 되어 버린 교양제작국조차 없애고 소속 PD들을 콘텐츠협력국, 예능1국 등으로 분산시키는 조직개편을 실행했다. 타 방송사에 비해 무거운 공적 책무를 지니는 공영방송 MBC가 ‘교양국 해체’라는 악수를 둔 것에 대해 언론계 안팎에서 우려가 높았으나 조직개편은 강행됐다.

2012년 8월에는 카메라기자들이 속한 보도영상 부문이 공중분해됐다. 김재철 사장은 영상취재1부·2부, 시사영상부 등이 속한 보도영상 부문을 해체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해, 카메라기자들은 정치부·경제부·사회부·문화부 등 10여개 부서로 뿔뿔이 흩어졌다. MBC는 “카메라기자들을 취재 부서로 전진 배치한다면 업무를 더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고 전문성과 효율성도 증대된다”는 것을 이유로 제시했으나, 내부 구성원들은 실상은 파업에 참여했던 카메라기자들의 조직을 없애기 위한 조처라고 보았다. 또한 비전문가인 취재 부서장이 영상물을 지휘하고 책임지게 할 경우 보도 공정성이 저하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상파 3사를 비롯해 전국 방송사 카메라기자들이 속해 있는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가 MBC의 보복성 조직개편에 맞서 뉴스 풀단 배제, 출입처 출입 금지 등을 내걸고 경고했으나 소용없었다.

수난은 계속됐다. 2013년에는 김장겸 보도국장 지시로 영상·편집기자들의 이름 자막이 사라졌다. ‘이름이 화면에 다 들어가니 지저분하고, 시청자들에게 필요한 정보가 아니며, 뉴스 공급자 위주의 생각’이라는 발언 이후, 특종이나 ‘뉴스플러스’, ‘현장M출동’ 같은 집중취재 아이템을 제외한 MBC뉴스에서는 영상기자들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보도에 대한 책임 소재를 확실히 할 수 있는 이름 기재를 중단하는 것에 대해 논란이 일었으나, 2016년 1월 현재 MBC 메인뉴스 <뉴스데스크>는 인터넷 홈페이지에서조차 취재기자의 이름만 적혀 있다. 지난해 10월 국감에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은 MBC 경영진발 보복인사의 대표적 직종을 ‘카메라기자팀’으로 꼽기도 했다. 1년 단위 비정규 계약직인 뉴스영상PD를 반복 채용해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는 설명이다.

4. 2011년 이후 ‘무단협’ 유지

MBC 내 최대 노조인 MBC본부는 2011년부터 무단협 상태다. 쟁점은 ‘공정방송 조항’이다. 170일 파업 관련 판결에서도 법원은 ‘공정방송은 노사 양쪽의 의무’라는 점을 확인했으나, MBC는 경영권과 인사권을 이유로 공정방송을 위한 조항을 노사가 분담한다는 조항을 계속 문제 삼고 있다. 단협이 효력을 잃게 되면서 자사 방송에 대한 문제제기와 평가를 할 수 있는 공정방송협의회라는 공식 창구도 사라졌다. MBC본부의 민주언론실천위원회(이하 민실위)가 공방협에 참석해 불공정 문제의 근원을 추궁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하는 한편, 문제가 엄중할 시 불공정 관련 당사자 문책 및 보직해임까지 요구할 수 있었던 권리는 옛말이 돼 버렸다.

5. 유배인사 걸림돌 되자 아예 ‘직종폐지’

▲ (표=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노보)

지난해 10월, MBC는 언론사상 이례적인 기록을 또 썼다. MBC는 인사규정상 정의된 ‘기자’, ‘카메라기자’, ‘편성프로듀서’, ‘TV프로듀서’, ‘라디오 프로듀서’, ‘아나운서’, ‘미술’, ‘제작카메라’, ‘방송기술’, ‘방송경영’, ‘시설’, ‘IT·콘텐츠관리’, ‘기타’ 등으로 분류돼 있던 직종 정의를 삭제했다. 대신, ‘국장’과 ‘부국장’, ‘부장’, ‘일반직 사원’, ‘촉탁직 사원’, ‘연봉직 사원’, ‘업무직 사원’이라는 새로운 분류를 적용했다. 예능 PD로 입사했다 회사 비판글을 이유로 정직-비제작부서 발령-해고를 겪은 권성민 PD가 부당전보 및 징계무효소송에서 잇따라 승리해 MBC 인사의 ‘부당성’이 재차 확인되자 아예 직종을 없애는 방향을 택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MBC는 직종에 대해 “편의대로 사용하기는 하나 명목상으로만 존재하고 사실상 사문화됐던 개념”이라며 “직무중심의 단일 체계를 통해 콘텐츠에 집중하는 새로운 조직, 창의적 노력을 지지하는 조직을 만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경력직 수시 채용에 이어 직종 개념을 사규에서 삭제하기로 한 것은, 우물 안을 벗어나 ‘세계 시청자’와 만나려는 결정”이라고도 했다. MBC본부는 직종폐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으나, 법원이 이를 기각해 ‘법적 구제’도 받기 어려워졌다.

6. 노조 전임자 복귀 명령

지난해 12월, MBC는 노조 활동을 위해 시행하는 타임오프제(근로시간 면제)를 회사의 ‘시혜적 조치’로 규정, 노조 전임자들에 전원 업무복귀 명령을 내려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MBC는 “근로자는 단체협약으로 정하거나 사용자의 동의가 있는 경우에는 근로계약 소정의 근로를 제공하지 아니하고 노동조합의 업무에만 종사할 수 있다”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4조(노동조합의 전임자) 제1항에 따라 노조 전임자 제도를 시행해 왔으나, 타임오프 기간이 종료됐으니 업무복귀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MBC본부 노조 전임자들은 연차를 소진하며 업무를 이어가고 있고, 공백을 메우겠다며 해직자들이 나서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노사 간 임금협상이 진행되는 중요한 시기인데다 단협 체결도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노조 전임자 복귀 명령은 ‘노조 파괴’ 시도라는 관측이 나온다.

▲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