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의 한국사회를 ‘과거로의 회귀’로 진단하는 이들이 많다. 2차 민중총궐기 전국언론노동조합 사전 결의대회에 참석한 김종철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 또한 “4·19를 회상하게 한다”며 “언론인들이 정치가 바로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이렇듯 언론계 내부에서도 군사정권 시절로 돌아가고 있다는 말들이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찬양일색’으로 돌아선 공영방송 보도의 모습.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마치 ‘금기어’가 돼버린 보도들. 그리고 계속되는 언론인들에 대한 탄압. 올해에는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 KBS에서 해고자가 발생했다.

미래가 밝은 것도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통치’는 언론을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신문법 시행령> 개정은 5인 미만 인터넷신문들의 강제퇴출을 예고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안’은 더욱 어두운 미래를 예고한다. 노동개혁 5법 중 <파견법> 개정안은 정확히 ‘기자’를 겨냥하고 있다. 근로계약해지 2대 지침(일반해고·취업규칙) 그리고 임금피크제 확대 또한 언론인들을 피해가지 못할 전망이다. 그리고 마침내 박근혜 정부는 30일 ‘쉬운해고’ 지침 초안을 발표했다. 이제 어떻게 KBS와 MBC 등에서 위력을 발휘할 지 모를 일이 돼 버렸다.

이 같은 상황에서 ‘더 이상 과거로의 회귀는 안 된다’는 의미가 담긴 판결이 나와 주목을 끌었다. 지난 11일 서울고등법원 민사1부(부장판사 신광렬)는 1975년대 박정희 정권의 언론탄압에 항거하다가 해직된 동아일보 언론인 13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파기환송심에서 “각 1000만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40년만의 쾌거였다.

“동아투위에 대한 국가배상…언론에서들 역사적 판결이라고들 한다”

동아투위 김종철 위원장(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은 지난 28일 미디어스와의 인터뷰에서 “역사적 판결이라고 언론에서들 그런다”며 “40년 만에 처음으로 동아투위에 대한 대량해고가 위법하고, 따라서 정부가 배상해야한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1970년대 강제해직된 동아일보 언론인 134명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이하 동아투위)를 결성하고 현재까지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다.

▲ 1974년 10월 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하고 있는 동아일보사 언론인들(사진=동아투위 자료 사진)

“1975년 3월 17일 날 동아투위에서 <자유언론실천> 운동하던 동아일보, 여성동아, 신동아, 동아방송 기자와 PD, 아나운서, 엔지니어 등 160여명이 폭력에 의해 쫓겨났다. 그날 오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결성했다. 내년 3월이면 벌써 41년이 된다.…(중략)…그 동안 21분이 돌아가셨다. 감옥살이 후유증도 있었고 고문도 당하고 생활고도 겪고, 정신적 스트레스가 주원인이 됐을 것이다. 박정희 정권에 맞서서 자유언론 투쟁을 한 게 죄라면 죄였다. 그 해 가을, 동아일보를 상대로 부당해고 취소청구소송을 냈는데, 당시 유신정권 당시 사법부는 꼭두각시였으니까, 심리 몇 번만 하고 ‘이유없다’고 기각됐다. 그런 일이 계속 반복돼 왔던 것이다”_김종철 위원장

2009년 봄 동아투위는 134명의 소송인단을 꾸려 다시 한 번 국가를 상대로 각 5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 계기는 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졌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정리위)가 2008년 10월 “박정희 정권의 광고탄압 등은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이라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국가에 △동아일보 해직언론인에 사과할 것, △해직언론인들의 언론자유 수호 노력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내릴 것, △이들의 피해 회복을 통해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던 것이다. 그러나 1·2심 재판부는 “정부는 원고들이 겪었을 고통에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면서도 ‘시효소멸’ 이유를 들어 기각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3년부터는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었지 않느냐는 거였다. 그 후, 동아투위는 배상금액을 각 1000만원으로 줄여 대법원에 상고했다.

해당 소송에서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과거사정리위가 진실규명결정을 한 상황에서 국가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이라며 허용될 수 없다”고 파기환송해 고등법원으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동아투위로서는 그나마 작은 ‘성과’였다. 그렇지만 대법원은 134명의 원고 가운데 권근술, 김동현, 김진홍, 김태진, 김학천, 성유보, 송준오, 오정환, 이부영, 이종대, 임채정, 조학래, 허육, 황의방 등 14명에 대해서만 국가가 배상책임이 있다고 결정했다.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상규명을 요구한 50명만을 원고로 한정했고, 그나마도 <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라 보상금을 수령한 36명을 제외시킨 결과였다. 동아투위가 ‘당시 대법관이던 신영철의 꼼수’라고 비판한 까닭이다. 그리고 서울고등법원 파기환송심은 타계한 김진홍 씨를 제외하고 13명에 대해 최종 승소판결했다.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요청한 사람들만 원고로 인정한 것은 법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거기에다가 신영철 재판부는 그 중에서도 국가 지원금을 받지 않은 사람만 자격있다고 더 축소시켜버렸다. 대법원의 명백한 오심이다. <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른 국가 지원금은 부당해고에 대한 보상금이 아니라, 민주운동을 한 사람들에 대한 지원금이었다. 그리고 동아투위 뿐 아니라, 노무현 정부 때 명예보상금을 수령한 사람들이 국가를 상대로 배상청구를 했을 때 ‘소송자격이 없다’고 하니까 이걸 헌재에서 판결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해 현재 헌재에 계류중이기도 하다. 이렇듯 현재에서 다투고 있는 사안에 대해 대법원이 원고인단을 조정해 파기환송했다는 것”_김종철 위원장

과거사정리위 결정 취소 판결에 이은 국가 배상 판결의 의미는?

많은 언론들이 서울고등법원 파기환송심에서 13명이 ‘승소’한 것을 두고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 이유는 동아투위가 40년간 제기한 소송에서 첫 번째로 이긴 법정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면서 동아일보가 보인 행보는 이번 판결에 대해 더 많은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동아일보는 이명박 정부 들어 안전행정부를 상대로 ‘1974년 백지광고 사태 등 언론인 해직에 유신정권이 개입했다’는 과거사정리위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과 함께 과거사정리위의 진실규명 공표로 회사의 명예가 훼손됐다면서 1억10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대법원은 지난 5월 말 과거사정리위의 동아투위 관련 결정을 취소하라고 결정했다. 대법원의 과거사정리위의 동아투위 결과 취소라는 결정은 언론계에 큰 충격을 줬던 사건으로 기억된다. 동아일보의 강제해직이 ‘경영난 때문’이라는 주장을 대법원이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관련기사 : 박정희 정권 언론 탄압 없던 일 하고 싶은 져주기 소송?) 반면, 대법원은 6월 과거사정리위의 동아투위 사건에 대한 조사는 적법하다는 점에서 손해배상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동아일보가 직원들을 대량해고한 것이 경영난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여러 가지에서 증명이 됐다. 당시 개신교나 천주교를 비롯한 김대중 선생과 재야운동단체들이 ‘경영난 때문에 해고를 한다’고 한다면 성금을 모아 월급에 보탤 것이라고 그랬지만, 김상만 등 경영진이 거부했었다. 그리고 동아일보사 결산 보고를 보더라도 75년은 적자가 아니다. 도대체 어디가 경영난 때문이라고 하는 것인지, 그것은 거짓말이다”_김종철 위원장

▲ 자유언론실천재단(이사장 김종철 동아투위위원장)은 2일 동아일보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법부는 박근혜 정부의 신유신체제 아래 ‘사법사상 암흑의 날’을 재현했다”며 “도대체 무슨 근거로 1975년 3월 동아일보사 사주 김상만이 사원들을 대량해직한 사건이 ‘경영난’ 때문이라는 주장을 정당화한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미디어스

70년대로의 회기?…“단 한 줄도 박정희 비판 기사가 나올 수 없었다”

2015년 한국의 언론상황이 ‘군사정권으로 회뒤했다’는 것은 김종철 위원장의 70년대 언론인으로서 살아낸 삶 속에 그대로 묻어나 있었다. 김종철 위원장은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킨 뒤 언론탄압이 극에 달했다”며 “쿠데타 난 날로부터 방송사를 점령하고 계엄령 내리고, 건강한 언론은 민족일보 조영수 사장은 사법살인하고 그랬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종철 위원장은 “1969년 3선 개헌을 통해 장기집권체제를 구축하고 나서 국회를 해산하고, 대의원대회는 거수기로 만들어 ‘박정희는 평생 대통령’으로 만든 것 아니냐”며 “그 당시 동아일보 편집부에 있었는데 국민투표 시행령 문제에 대해 제목한번 잘못 뽑았다고 데려가 고문하는 등 무법천지가 따로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신쿠데타 이후 단 한 줄도 박정희를 비판하는 기사가 나올 수 없었던 것”이라면서 “그런 식으로 지내다가 동아일보 기자들이 74년 10월 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했던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편집국 기자들이 항의하고 농성한 게 자극제가 됐다는 얘기다.

“당시 인쇄노동자들은 물론 편집국 기자와 아나운서, PD들이 포함돼 노조를 만든 건 동아일보가 처음이었다. 가입대상자의 2/3이 이틀 안에 노조에 가입할 정도였다. 당시 언론사에서 노조를 만든다고 한다면 사형은 안 당해도 무기징역을 받을 수도 있는 그런 엄혹한 시절이었다. 박동선 게이트 또한 단 한 줄 언론에 안 나왔다. 중앙정보부가 방송사에 출입하면서 ‘빼라’, ‘고쳐라’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살벌한 시대였으니까 말이다. 민청학련이나 인혁당 사건에 있어서 ‘고문’ 등의 폭로에 대해서는 언론에 한 줄도 쓸 수 없었다. 그렇게 동아일보 투쟁은 ‘백지광고’ 사태 등 세계 언론사상 유례가 없는 운동으로 기록돼 갔다. 쫓겨날 때까지 계속 됐으니까”_김종철 위원장

박근혜 정부의 <신문법 시행령>은 박정희 정권 시절 ‘언론통폐합’은 연상케 한다는 비판이 많다. KBS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폭로에 의하면, 청와대는 공영방송 사장을 통해 직접적으로 보도 및 인사 등에 개입해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 내용 또한 ‘(정부에 불리한 건 뒤로)빼라’, ‘해경비판자제’ 등의 내용이었다. ‘노조’에 대한 탄압과 무력화 시도는 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 비판적인 기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과거로의 회귀라는 말이 영 틀리지는 않다는 뜻이다.

▲ 동아투위 김종철 위원장ⓒ미디어스

“박정희는 언론탄압에도 성공하고 장기집권에서 성공하는 듯 보였지만, 결국에는 그렇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독재자의 운명을 옆에서 지켜봤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아버지를 따라가려고 한다. 다만, 달라진 것은 지금은 KBS와 MBC 등에 낙하산 사장을 내려 보내면서 겉으로 ‘합법적’ 모습을 띄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결과는 같다. MBC만 봐도 그렇지 않나. 노사에 있어서 임단협의 주체인 노조 전임자에 대해 현업 복귀하라는 명령을 어떻게 내릴 수 있나. 해직자들이 비대위까지 꾸려서 노조를 꾸려가야 할 정도로 MBC는 무법천지가 돼 버렸다. KBS는 어떤가.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고 쓰러진 백남기 농민의 보도를 비롯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최근에는 MBC 보도보다 더 심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KBS가 더 악랄했다’고들 한다. 언론을 집권자의 사유화 하는 경향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증거다”_김종철 위원장

김종철 위원장은 “참 답답한 시기”라며 “JTBC를 뺀 TV조선과 채널A 등에서 집권세력에 유리하도록 가공된 기사들이 식당과 목욕탕, 휴게실, 경로당에서 하루 종일 쏟아져 나온다. 그로 인해 노년세대를 세뇌시키고 수구보수적 사람들을 결집시키고 있다”고 개탄했다. 이어, “공적책무를 가지고 균형을 맞춰져야할 지상파 KBS와 MBC, SBS 또한 정부에 의해 지배당한 상황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닌 엎어진 운동장이 돼 버린 것”이라면서 “JTBC를 비롯한 한겨레, 경향신문, 뉴스타파 등이 선전하고는 있지만 영향력 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크다”고 씁쓸함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종철 위원장은 “역사를 보더라도 부도덕한 세력만이 권력을 지배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며 “4월 혁명이 그랬고 6월 항쟁, 부마항쟁 모두 엄혹한 시기에 민주화의 불씨가 된 사건들이다. 박근혜 정부처럼 반이성적이고 반양심적인 세력의 정권은 오래 지탱할 수 없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단결해야 한다”며 언론인들을 다시 한 번 독려했다. 이날 김종철 위원장은 다시 한 번 ‘4월혁명’의 희망을 이야기했다. 과연, 새해에는 따듯한 봄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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