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제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이 지난 21일 총선에 출마하겠다며 사의를 밝혔으나 방통위에서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를 두고 방통위법과 선거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언론운동단체들이 법적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최성준 위원장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김환균),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언론운동단체들은 28일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통위가 허원제 위원의 직무를 즉각 정지할 것을 촉구했다. 이 단체들은 “공직 임기조차 채우지 않고 입신양명을 위해 떠나면서 국민 앞에 사죄하기는커녕 ‘공직’과 ‘정치활동’을 병행하겠다는 것”이라며 “방통위법과 선거법을 조롱하면서 다가 올 총선 보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방송평가 제도까지 본인이 직접 손보고 출마한다고 하니 그의 비뚤어진 권력욕의 끝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언론소비자주권행동, 자유언론실천재단,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새언론포럼,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표현의자유와언론탄압공대위, 미디어기독연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언론위원회, 한국방송PD연합회, 방송기자연합회는 28일 과천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허원제 위원의 사죄와 직무정지를 촉구했다. (사진=미디어스)

현행 공직선거법은 선거에 입후보하려는 공무원에 대해 “소속기관의 장이나 소속위원회에 사직원이 접수된 때에 그 직을 그만 둔 것”으로 본다. 선거법에 따르면, 허원제 위원은 방통위 상임위원 직을 지난 21일 그만 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방통위 핵심관계자는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인사혁신처에 허원제 위원의 사의표명을 밝힌 것은 12월14일이고, 사직서를 인사처에 전달한 시기는 ‘12월 중순’이다”라고 확인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12월24일자 <‘총선 출마’ 허원제 방통위원, 의결 참여 ‘강행’>

‘사표가 수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상임위원으로서 활동을 계속해야 한다’는 방통위와 최성준 위원장 주장을 수용하더라도, 허원제 위원은 현행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어긴 것이 된다. 방통위법은 상임위원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허원제 상임위원은 지난 21일 방통위를 통해 ‘출마 선언’을 하고 ‘정견 발표’를 했다. ▷관련기사: 12월21일자 기사 <허원제 방통위원 사의 표명, “총선 출마”>

문제는 허원제 위원이 사의 표명 이후에도 방송통신 정책 의결에 참여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는 23일 전체회의에서 의결권을 행사했다. 허 위원은 28일과 31일 전체회의에도 참여한다는 게 방통위 공식 입장이다. 방통위의 한 관계자는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허원제 위원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 최성준 위원장 또한 방통위 설치법과 선거법을 동시에 위반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중 허원제 상임위원이 후임 상임위원이 결정될 때까지 의결권을 행사한다면 가장 문제가 되는 안건은 ‘방송평가 규칙 개정’이다. 오보와 막말에 대한 규제 강화와 함께 언론의 공정성‧객관성‧선거방송에 관한 심의 결과를 방송평가 감점으로 현행에 비해 2배 반영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최성준 위원장은 애초 ‘연내 의결’을 통해 2016년 방송분부터 새로운 규칙으로 평가하자는 입장이었으나, 최근 상임위원들에게 “새로운 상임위원이 합류하면 그때 가서 의결하자”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관련기사: 12월23일자 기사 <총선 나가는 방통위원이 방송평가 규칙까지 손본다?>

언론노조 김환균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지난 7월에도 허원제 위원의 출마 이야기가 나왔고 언론단체는 ‘선거에 나갈 것이면 방통위를 떠나라’고 했으나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최소한 7월부터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방통위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환균 위원장은 “법조계 출신 방통위원장은 공직선거법 조항을 모르는 것인가. 아니면 알고도 이 정도 쯤은 문제제기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 것인가. 허원제씨는 최소한 21일자로 방통위원이 아니다. 허원제씨가 그 이후 참여한 의결은 위법하다.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허원제 위원에 대해 “당장 짐을 싸서 방통위를 떠나라”고 촉구했다.

신현종 표현의자유공대위 운영위원장은 “허원제씨는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 국회에 있을 때 미디어악법 날치기를 주도하는 등 언론환경을 망가뜨리는 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한국PD연합회 안주식 회장은 “(허원제 위원이 방통위에 남아 방송평가 규칙 개정을 의결하려는 것은) 방송을 총선에 유리하기 활용하기 위한 자신들의 일정이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며 “허원제씨는 자신이 소속한 정치집단을 대변하기 위해 문화콘텐츠 현업자들을 나락에 빠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자회견 참석 단체들은 “방통위는 지금 당장 공직자 자격 없는 허원제씨를 직무에서 배제하고 방통위에서 내보내라. 본업은 내팽개친 채 선거 출마나 준비하고 공직을 이용해 사전선거운동이나 하라고 만들어진 방통위가 아니다. 선거를 앞두고 ‘언론 통제’에 악용될 것이 분명한 방송평가제도 개악 논의를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 단체들은 “만일 방통위가 ‘허원제 국회의원 만들기’, ‘정부여당 압승 방송정책’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언론시민단체들은 국민과 함께 ‘정치공작소’로 전락한 방통위 해체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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