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다. 민주주의는 자꾸만 힘을 잃고 권력에 장악된 언론 역시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모든 분야에서 ‘퇴행’이 이뤄지고 있다는 자조가 나오는 시기, 구성원들에게 진 빚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앞에 나선 사람이 있다. 최근 97.6%의 높은 찬성률로 당선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이하 새 노조) 성재호 신임 본부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당선소감에서 선거운동 기간에 “어휴~”, “어려운 시기에…”, “힘들 텐데…”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우려의 목소리처럼 KBS를 둘러싼 안팎의 상황은 결코 녹록치 않다. 보도본부 간부 시절 용산참사 축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축소 보도,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 특종 뭉개기 등 불공정 보도를 주도해 특히 ‘기자’들의 거부감이 가장 높았던 고대영 씨가 지난달 사장에 취임했다. 최고의결기구인 KBS이사회는 이인호 이사장을 비롯해 뉴라이트 인사들이 대거 투입됐으며, 이사회-청와대가 신임 사장 선임에 대해 입을 맞췄다는 폭로도 나왔다. 정부는 ‘노동개혁’을 부르짖으며, 이에 반대하는 민주노총 등 반대세력에 대한 공격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재호 당선자는 ‘희망’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가 발견한 희망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연구동 새 노조 사무실에서 성재호 당선자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어려운 시기에 본부장에 출마했다. 계기가 궁금하다.

모든 정권이 공영방송이나 언론을 통제하려고 했다. 자기들 입맛대로 하고자 하는 시도가 늘 있었는데 2008년 MB 정권이 들어서면서 굉장히 노골화됐다. 당시 사장을 부당하고 부정한 방법으로 쫓아냈고 특보 사장이 왔다. 그 과정에서 어쩌다 2008년에 (사장 부당 해임을 막는 투쟁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 해고가 된 상황이었는데 정작 KBS노조(현재의 KBS노동조합과 새 노조로 나뉘기 전 단일노조)는 굉장히 (대처가) 미온적이었다. 오히려 기자, PD, 기술인협회 등 직능단체가 앞장서서 제작거부 주도하면서 (해고 사태를) 풀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구성원들한테 빚을 졌다고 생각했다.

뭐라도 돕고 싶어서 KBS노조 중앙위원을 자청했지만 당시 노조가 구성원들에게 KBS가 해야 할 역할을 견인해 내지 못하는 곳으로 전락했다는 것을 깨달아 새 노조 세우는 데에 앞장섰다. 그래서 1대 집행부(*성재호 당선자는 이때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였다)도 했다. 그때도 무언가 앞에 나서는 자리를 부탁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었다. 막연히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어떤 역할을 요구받을 때 ‘내가 거절해서 (조합을) 힘들게 만들지는 말자’고 마음먹었다. 있겠다. 사실 저는 회사나 구성원들한테 ‘저 사람은 어떤 스타일이다’ 하는 게 규정화된 사람이지 않나. 그런 부분들이 과연 새 노조에 도움이 될까 생각했고, 누군가 새롭고 다른 방식의 생각을 갖고 싸울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늘 있었다. 그게 쉽지 않아 결국 저한테까지 온 것 같다.

- “감히 ‘희망’을 말하고자 한다”는 당선소감이 인상적이었다.

저는 앞으로의 상황을 낙관적으로 본다. 희망은 곧 기회를 의미한다고 본다. KBS는 구조적으로 외부의 정치적, 사회적인 상황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사장이나 이사회 임명구조도 그렇고 세월호 참사 같은 사회적인 큰 변동에도 영향을 받는다.

지난 10년 가까이 우리 사회 자체가 굉장한 퇴행을 겪었다고 생각한다. 보수-진보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비상식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더라도. 특히 민주주의와 인권의 퇴행이 심했는데 KBS도 마찬가지였다. 안에서 사람들이 자조적으로 하는 말 중 하나가 ‘KBS를 보면 대한민국 사회를 보는 것 같다’는 것이다. 정치적, 사회적 목소리가 나오는 정도나, 노조가 갈려 있는 상황이나…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생각들이 KBS 구성원들 생각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희망’을 이야기하느냐.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회의 퇴행을 멈출 수 있는 정치적 시기가 다가오는 것은 분명하다. 제 임기 안에 그동안의 일들에 대해 평가하고 심판할 수 있는 정치적 일정들이 있다. 그동안 정치권력에 종속되면서 일어났던 퇴행을 바꿔볼 수 있는 기회가 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들이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선거’라는 기회에, KBS가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본다. 희망을 너무 외부적 요인에서 찾는 지적도 있을 수 있겠지만, 여하튼 지금 시기가 퇴행의 마지막이라고 볼 수 있다. 저희가 5~6년 동안 3번의 파업을 했지만 우리 스스로도 부끄럽지 않은 싸움을 2년 동안 계속 하면 마지막엔 내외부적으로 좋은 결과를 내어 큰 희망을 안고 새로 시작할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 KBS는 늘 보도 공정성 논란이 시달린다. 이번 집행부의 제1공약 역시 ‘방송장악 끝장내는 맞불’인데.

KBS는 외부적 요인에 굉장히 취약하다. 가장 큰 부분이 대통령에 의한 사장 임명일 텐데, 대통령은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정략적 득실’에 따라 임명구조를 좌지우지해서 문제인 것이다. 사장 선출 기구인 이사회가 여야 7대 4 구조로 고착화된 것 역시 고쳐야 할 문제이지만, 이건 ‘외부의 몫’인 것 같다. 저희는 내부에서 저항하고 싸워서 방송장악에 맞서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선 제도적으로 많은 게 필요하다. (방송장악 시도를) 적절히 견제하고 막아줄 제도적 장치와 규정들이 촘촘하게 있다면 아마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내부 장치 만드는 게 시급하다. KBS뉴스 보도의 편파성, 불공정성을 개선할 수 있는 제도를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말 안 되는 권력이 또 방송을 장악하려고 할 것이다.

고대영 사장은 인사청문회에서 BBC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정말 BBC처럼 하려면 (KBS 상황을) 시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만들어야 한다. 사장 들러리 같은 위원회가 아니라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강제할 수 있는 시청자위원회를 꾸린다든지. 공방위도 그렇다. 사측은 그들이 편집권을 행사해 나간 보도에 대해 웬만하면 불공정했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노사가 팽팽히 대립하다 결렬됐다, 이건데 그럼 의미가 없는 것이다. 재판도 국민참여재판이 있듯이 공방위도 시청자 참여 공방위를 하면 되지 않겠나. 노사 입장을 들어보고 시청자들이 판가름 정도는 해 줄 수 있게 만들자는 것이다. 이렇게 제도적인 장치를 조금씩 보완하면 (공정성 문제를) 풀 수 있다.

그런데 신임 사장은 하려고 하지 않는다. 공정성을 얘기하면서 생각이 딴 데 가 있다. ‘공정하다’는 것은 편집권 행사하는 사람이 ‘우린 공정하다’고 말해서 되는 게 아니다. 제작자의 신념과 양심으로부터 출발해서 데스킹 과정을 거치지만, 결국 최종 결과물의 공정성은 시청자가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데 데스킹 기능이 허술해서 그렇다는 소리를 한다. 군사독재 시절에 하던, 속된 말로 ‘까라면 까’ 하는 방식으로 방송과 보도를 얘기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 지난 4일 97.6%의 찬성률로 당선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성재호 신임 본부장 ⓒ미디어스

- 내년 4월, 내후년 12월에 각각 총선, 대선이 예정돼 있다. 불공정 방송 감시를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하다.

KBS뉴스가 불공정하다고 하지만 뉴스 제작자들은 최소한의 기계적 중립이라도 지키려고 노력한다. 제가 보기에 불공정성이 발생하는 이유는 ‘편집’이 첫 번째 이유다. 뉴스를 취사선택하는 권한을 갖고 있는 책임자들의 불공정성이 크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YS 서거 영결식에서 아이들 합창단이 와서 추위에 떨었던 일을 보자. 어느 언론사가 이걸 보도해서 난리가 났다. 웹상에서 여론이 들끓고 행자부가 사과를 했다. 그런데 KBS뉴스 작성기사를 찾아보면 사과기사만 있다. 정략적인 이해관계에 따른 거다. 즉, 현 정권에 부담이 되거나 불리한 보도는 아예 보도를 안 하는 것이다. 논란이 돼 해결이 되면 해명 보도를 한다. 이러면 시청자들은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났어도 뭘 빼먹었는지 모르게 되니 불공정성을 체감할 수 없는 것이다.

단신으로라도 보도한다고 하는데 단신은 사실 의미가 없다. 어제(14일)부터 세월호 청문회가 열렸다.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공식적인 외부 활동 중 사실상 첫 사례였다. 그런데 9시 뉴스에 단신으로만 나온다. 하지만 내년 4월 16일이 되면 또 2주기 특집을 내라고 난리를 칠 거다. 이게 뭐냐는 말이다. 중요한 사회적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보도’로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세 줄 단신에는 기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내용을 담기가 쉽지 않다.

아예 틀거리 자체를 옮겨버리는 방식이 두 번째다.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같은 경우, 노동법 개정 문제와 엮여 있다. 그런데 이런 본질적인 걸로 접근 안 하지 않는가. 집회에서 폭력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조계사에 계속 머물 거냐 말 것이냐 등 흥미 위주로, 소위 ‘경마 저널리즘’처럼 한다. 쇼를 보는 것처럼 몰아간다. 세월호가 여전히 논란으로 남아 있는 이유가 여전히 진상규명이 안 됐기 때문 아닌가. 재판만 진행되고 있고. 아직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조차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다. 오죽하면 특조위가 생겼겠나. 이런 상황이라면 KBS뉴스는 세월호 참사 진상이 얼마나 규명되고 있는지, 책임자로 지목된 사람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발굴하고 보도해야 한다. 이게 언론의 역할이다. 그런데 이걸 정치부 뉴스로 옮겨간다. 프레임을 여야의 정략적인 ‘공방’으로 맞춰 버린다.

MB 내곡동 사저 건도 그렇다. 사회부에서 한 번 (보도)하다가 청와대와 새누리당 대 야당 구도로 정치부에서 처리한다. ‘비리’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공방으로 다뤄, 정작 취재기자가 내곡동에 가 보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사회적 갈등 이슈로 만들어 ‘정치’를 지긋지긋하게 만들어 버린다. KBS뉴스에는 이런 2가지 방식이 존재해 왔고, 이런 일을 (편집) 권한이 있는 책임자들이 계속해 왔다. 그러면서 ‘이거 정치부에서 나간 거 아니냐’, ‘잘 다뤘지 않느냐’ 한다. 이게 언론이냐는 것이다. 이런 프레임을 깨 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 방송장악 백서 발간과 공영방송 범국민참여위원회를 ‘방송 감시 활동’의 일환으로 보면 되나.

조합에서 사전 예방 차원, 사후 비판 차원에서 감시 활동을 하려고 한다. 현장에서 어떻게 아이템 하나하나까지 감시하고 (부당한 지시에) 저항할 수 있을지 찾아낼 것이다. 자기 검열하는 분위기가 더 커지고 있지만, 제작자들이 이를 극복하고 들어오는 압력에 문제제기할 수 있도록 하려면 조합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겠다.

KBS는 우리 구성원들만의 것도, 새누리당의 것도, 대통령 것도 아닌 ‘국민의 것’이다. 방송의 아이템 선정, 제작까지 가능하면 다 공개해서 견제할 수 있는 장치들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 그러려면 큰 연대를 통한 감시기구가 필요하다. 그동안은 (방송사 내) 노동조합과 언론 관련 단체들만 목소리를 높였는데 대한변협이든 전경련이든 법조·경제·노동·학계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연대를 만들고자 한다. 조합과 연대 기구 두 가지가 잘 맞물려 돌아가면 내부 책임자들도 쉽게 자기네 입맛대로 왜곡하고 (보도를) 빠뜨리고 이러지는 못하지 않겠느냐. 공영방송 범국민참여위원회는 방송 모니터 이외의 다른 활동도 함께 할 수 있는 곳이 되지 않을까.

선거와 관련해 한 마디만 더 하자면, 선거가 있을 때 ‘붐’을 일으키는 것이 공영방송 KBS의 역할이다. 민의를 대변해 주는 책임자를 뽑는 선거가 가장 중요한 정치일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대한민국> 같은 쇼가 아니라 선거방송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 KBS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라도 전 국민의 관심 속에 치를 수 있도록. 분위기만 띄우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이 (선거 후보들을) 판단할 정보를 줘야 한다. 앵무새처럼 전달하는 것은 법에 규정된 선거방송만으로 충분하다. 뉴스에서는 비판적 견지 속에서 당과 후보자에 대한 아주 풍부하고 심층적인 정보를 줘야 한다. 그게 공영방송의 역할이다. 지난 2번의 대선에서 검증 프로그램을 해 냈다. 제가 참여해놓고도 미흡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실증적이고 비판적인 보도가 ‘홍수를 이룰 정도로’ 해야 한다. 누가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우리 생활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는가. 하지만 KBS는 이런 역할을 잘 안 한다, 선거 보도할 때도 아주 차분하게 마치 여러 개 중 하나의 아이템인 것처럼, 시청자들이 정치적 관심을 가질까봐 겁내하는 사람처럼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이 부분도 계속 문제제기를 할 것이다.

- 노동개혁이라는 정부 정책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노조를 ‘적’인 것처럼 몰아붙이는 분위기가 거센데 앞으로의 각오가 있다면.

조합원이든 비조합원이든 다 지쳐 있다. 제게 ‘힘드시겠어요’, ‘어려우시겠어요, 힘든 시기에…’라고 하지만 그건 다 본인들의 얘기이기도 하다. 앞으로 다가올 시기가 점점 어렵고 힘들어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 조합은 힘들 때일수록 단결했고 힘을 보여줬다. 파업을 3번 했지만 조합원은 계속 늘었고, 그 과정에 대해 내부에서 자랑스러워 한다, 외부에서 볼 땐 많이 미흡하겠지만. 지난 8년 동안 어렵지 않은 시기는 한 번도 없었다. 더구나 신임 사장이 굉장히 강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고, 정부도 공안정국을 펼치면서 노동법 개악 등 노조에 대한 직접적 공격을 하면서 목을 죄어오고 있으나 위기가 조성되면 조성될수록 안에서는 뭉칠 수 있다고 본다. 회사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회사가 파국을 원하지 않는다면 모든 사안에 대해 파트너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 노조는 단순히 임금을 올리기 위해, 복지를 확장하기 위해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근참법(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에서 근로자 대표가 되고, 편성규약에서 실무자 대표가 된다. (노사는) 동전의 양면 같은 건데 (사측이) 부인하려고 한다.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회사의 모든 노조뿐 아니라 직능단체까지도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한다고 본다. 교섭대표노조인 KBS노조와 타임오프 배분 문제, 단체협약 일부 조항과 관련된 것들, 노사협의회에서 (새 노조에게) 한 자리도 주지 않는 것 등 여러 갈등이 있지만, 그건 서로 합리적으로 양보하고 노력해서 해결해 나가면 된다. 당장 신입 사장이 조직개편을 서두르고 있는 모양새인데, 효율성을 높이기보다는 무차별적인 구조조정의 전조로 나타나거나 사장 줄세우기 조직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이럴 때 구성원들이 뭉쳐서 노사가 1:1로 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부적인 연대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합리적으로 연대가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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