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케이블은 ‘초상집’ 분위기다. 윤두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한국케이블방송TV협회 회장으로 취임한지 1년이 채 안 돼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떠났다. 케이블업계를 이끌던 CJ헬로비전은 졸지에 SK의 인수합병 대상이 됐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들은 각종 토론회에도 갑자기 ‘불참’을 통보하며 몸을 사리는 중이다. 유료방송업계 관계자는 “케이블은 지금 매수자를 기다리며 눈치만 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한다.

11일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는 기자 초청 송년회를 열었다. 케이블협회가 행사장에 붙인 플래카드에는 ‘변화를 기회로’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러나 돌파구는 마땅치 않다. 협회 회장직을 대행하고 있는 최종삼 SO협의회 회장은 기자들에게 “도와 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고성수 내일신문 기자(미래창조과학부 출입기자단 간사)는 “케이블이 새로운 방향을 밝혀내야 현재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다 먹고 살 수 있고, 그것이 산업적으로도 뭔가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을 갖는다”고 말했다.

씨앤앰 등 일부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는 ‘독자생존’으로 경영방침을 굳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케이블은 이동통신사에게 가입자를 뺏겨왔다. 이동통신사의 이동전화 결합상품(이동전화+방송+초고속인터넷+인터넷전화+사물인터넷)에 비해서는 경쟁력이 떨어진다. 케이블에는 ‘지역채널’과 ‘지역거점’이 있지만 자본과 마케팅 등 모든 면에서 이통사에 뒤진다. 가입자가 IPTV, 정확히는 이동통신 결합상품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케이블은 제4이동통신에도 도전하지 않았다.

업계와 학계에서는 현재 유료방송 가입자 수준을 ‘최대치’로 보는데, SK가 CJ헬로비전을 인수한 것은 이동통신시장에서의 점유율을 유지하며 가입자당 매출(ARPU)을 올리려는 것으로 본다. SK텔레콤은 실제 최근 기자설명회에서 “CJ 케이블 가입자에게 SK텔레콤 이동전화 결합상품을 권유하겠다”고 밝혔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이날 미디어스와 만나 “SK가 인수합병으로 가입자를 늘리고 시장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여기서 안정적으로 이익을 올릴 수 있다. 이런 구조를 마련하려고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케이블의 붕괴는 빨라진다.

방송에 한정해 보면 SK가 소유한 플랫폼이 방송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더욱 커진다. 결합상품 마케팅 경쟁도 심해질수록 SK의 지배력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방송산업이 SK 같은 재벌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SK는 지난 십년 간 이동통신시장에서 발생한 영업이익의 80% 이상을 가져가며 인수합병을 시도해왔다. 이통사 관계자는 “(일각에서 SK가 CJ헬로비전에 제안한 ‘고용보장’ 기간으로 알려진) 3년이 지나면 SK는 PP(방송채널사용사업자)를 사들이려고 할 것”으로 내다봤다. CJ E&M은 물론, 다음 같은 포털사이트도 SK의 ‘방송사업 수직계열화’ 시나리오에 어울리는 사업자다.

케이블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시나리오만이 예측가능한 상황에서 케이블이 취해야 할 전략은 무엇일까. 이동통신사의 마케팅에 밀려 요금경쟁을 해온 케이블에 대해 언론의 관점은 대체로 ‘동정’이다. 그러나 이동통신사의 언론 지배력은 이러한 동정보다 세다. 동정만으로는 사업을 계속 해나갈 수 없다. 아무리 언론에 “도와 달라”고 읍소한들, 일부 언론이 ‘거대 재벌들이 방송과 통신을 모두 집어삼키려 한다’고 한들 여론전에서 이동통신사를 이길 수는 없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정책이다. 케이블은 오히려 정부에 적극적으로 플랫폼에 대한 규제정책을 요구해야 한다. SK와 KT가 지역을 잠식하고, 방송과 통신을 결합해 덩치를 키우는 만큼 플랫폼의 공적 책무를 강화하자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콘텐츠 선순환과 지역방송 강화를 위해 SK 같은 대형 플랫폼사업자에게 지금보다 많은 공적 재원을 내놓도록 하고, 이동전화 결합상품에 대해서도 방송통신발전기금을 납부하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또 케이블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방송이 공짜상품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SK텔레콤은 역으로 ‘균형 발전’이라는 명분을 세워 정부에 ‘케이블에도 이동전화 결합상품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제안할 수 있다. 케이블은 이동전화 결합상품에서의 방송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SK보다 먼저 공론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케이블이 먼저 정부에 ‘이통3사를 활용한 이동전화 결합상품을 허용해 달라’ 제안하고, 결합상품 내 방송서비스에 대한 수익배분율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하자고 요청하는 것도 방법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입자와 노동자다. 시청자에게 가장 편한 이용환경을 제공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혁신해야 한다. 지역채널 등 방송의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 가입자들에게 방송문을 열어주는 등 퍼블릭 액세스 정책을 강화하는 것도 필수다(이를 위해 미래창조과학부, 방송통신위원회, 시청자미디어재단과 협력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그리고 전국사업자인 IPTV와 달리 지역의 간접고용노동자를 직접고용하며 ‘지역사회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결론은 SK와는 다른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케이블이 갈 곳은 바로 ‘지역’이다.

한편 케이블협회는 이날 종로 8타워 지하2층에 위치한 한정식집 진진바라 광화문점에 기자들을 초청하고, 객단가 2만5천원짜리 한정식과 함께 설화수 화장품을 제공했다. 그리고 추첨을 통해 ‘푹’ 1년 사용권(10만원 상당), 초록마을 상품권, CGV 상품권, 현대백화점 상품권, 롯데백화점 상품권, 엘리자베스 아덴 화장품 세트, CJ 상품권 등을 각각 2명에게 선물했다. 협회는 점심식사와 경품 추첨을 끝낸 뒤, 르메이에르 2층에 있는 주점 텍사스바에서 술자리를 이어갔다.

이 자리에는 케이블 업계 관계자와 기자 등 모두 백여명이 모였다. 김진석 CJ헬로비전 대표도 참석했다. 행사장에 일찍 도착한 기자들은 그의 주변자리부터 맡았다. 그러나 그는 행사 시작 20여분 만에 “다른 행사에 참석해야 한다”며 자리를 떴다. 미디어스는 SK에 인수합병되는 과정에서 느꼈던 소회, 그리고 케이블산업의 전망을 물었으나 김진석 대표는 “오늘은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시간이 될 때 말씀드리겠다”고만 말했다.

아래는 송년회에서 나온 건배사 모음이다.

최종삼 SO협의회 회장 건배사

“언제나 기자님들 보면 선남선녀 같이 잘 생기시고 좋습니다. 어제 사실 고민을 많이 했다. 어떤 말씀 드려야 할지, 판에 박힌 이야기하기도 그렇고. 작금 상황을 보면 모르시는 분야가 없으실 것 같다. 상황이나 진행상황 등등 사실 저희들보다 잘 알고 계시지 않나 싶다. 정말 밤에도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도와달라’는 말밖에 없다. 업계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진심으로 도와달라는 말씀 드리는 게 좋은 생각 아닌가 싶다. 20년 역사 일궜는데 그냥 일궈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도 보여드릴 것이지만 여러분도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런 어떤 부분에 대해서 한 줄 한 줄 써내려갈 때 그런 부분들이 케이블산업 발전과 기능과 역할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하고 써 내려가면 그게 저희를 도와주시는 것이고. 여러분은 사회의 리더다. 리더의 사명감을 갖고 역할을 해주시면 케이블산업 자체가 발전하지 않겠나, 위기를 도약의 계기로 삼을 수 있지 않겠나 한다. 그래서 건배사를 무한도전으로 하려고 한다. 제가 ‘무한’ 하면 ‘도전’ 해주십시오. 무조건 도와주시고, 한없이 도와주시고, 도와달라고 하기 전에 도와주시고, 전화하기 전에 도와주십시오. 무한!”

하동근 PP협의회 회장 건배사

“어제 (협회) 홍보기획 쪽에서 오늘 이 자리에 서면 인사말 하라고 장문의 글 써서 저에게 가져왔는데 들여다보니까 밥먹는 자리에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 저도 20~30년 가까이 언론계 몸 담았던 입장이니까 요새 제가 보기도 싫고 듣기도 싫은 단어가 페이스북이나 온라인에 나오는 ‘기레기’라는 단어가. 기자가 쓰레기라는 단어를 보면 자존심이 많이 상한다. 언론계가 그렇게 살지 않았고 그렇게 하지 않는데 왜 그 단어가 온라인에 등장하는가 하면 우리 후배 기자님들이 조금 더 분발해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혹시 제가 옛날에 나쁜 짓 한 것이 이런 단어를 후배들에게 넘긴 것 아닌가 하는 자기반성도 한다. 오늘 자리는 여러분을 위한 자리이니까 건배사를 정론직필로 한다. 실시구시하는 입장에서 제가 ‘정론’ 하면 ‘직필’ 해 달라. 정론!”

고성수 내일신문 기자(미래창조과학부 출입기자단 간사) 건배사

“저도 7년 간 건배사를 300~400번 했을 텐데요, 오늘이 가장 부담된다. 변화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겠고, 잘 갈 수 있도록 도와드릴 힘도 없다는 걱정이 앞섰다. 어쨌든 그런 생각을 했다. 방송산업 관련 단체나 회사 굉장히 많을 텐데 현재 제가 만나는 한에서 가장 중요한 고민을 한 곳은 케이블TV협회와 소속된 SO와 PP 아닌가 싶다. 앞으로 여러분이 뭔가를 새로운 방향을 잡고 밝혀내야 현재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다 먹고 살 수 있고, 그것이 산업적으로도 뭔가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을 가져봤다. 그리고 지금 굉장히 혼란스럽고 바람도 많이 불지만 가다 보면 대한민국 케이블TV협회와 각 기업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햇살이 영롱한 대륙에 도착할 것이라고 믿는다. 자, 그래서 제가 ‘케이블TV’ 하면 ‘만세’ 해주십시오. 케이블TV!”

권영철 CBS 기자 건배사

“나이든 사람을 불러내는 게 좋은 모습은 아니다. 가장 젊은 기자들 모셔다가 이야기 들어보는 게 좋은데, 아무튼 나이 많고 경력이 많다는 죄로 연말만 되면 불려나오는 권영철이다. 갑자기 미국 출장을 가서 어제 귀국해서 얼떨떨한데 방송통신 업계에 제가 경험하지 못한 빅뱅이 불고 있는 것 같다. 제가 1994년도 케이블이 출범을 준비할 때 언론담당을 하면서 체신부와 방송을 담당했는데 내년 불어닥칠 위기의 바람은 그때보다 더 거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영역구분도 없고, 지상파 케이블 IPTV 위성방송의 구분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세상이 오는 것 아닌가. 방송과 통신도 이제는 영역을 달리하는 부분이 아니라 하나의 몸통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케이블협회에도 수장이 온지 1년도 안돼 출마한다고 나간 것이 그런 것을 예측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지금 그렇게 보면서 케이블협회의 SO와 PP가 ‘한지붕 두가족’으로 계속 갈 것인지도 궁금하다. 우려와 걱정도 많고 세상이 이렇게 급변한다는 느낌이다. 하동근 선배가 기자들에게 부끄러운 말씀을 하신 것이다. 사실 기자들이 ‘정론직필’을 외쳐야 하는데, 기자 선배이지만 지금 PP협의회장이 이런 말 하는 것은 기자 선배가 보기에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기자들이 그렇게 외쳐야 하는데 기자들은 외치지 않는 것 같은데 선배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기자들이 연말을 보내면서 ‘내가 언론인의 소명을 다하고 있는지’를 고민하면 좋겠다. 갑자기 건배사 시키니까 고성수 간사처럼 ‘만세’를 할 수도 없는데 우리가 어쨌든 우리 모두가 건강하게 자기 역할 다하자는 소망을 담아서 저는 그냥 전통적인 건배사를 하겠다. ‘우리 모두의 건강을 위하여’로 하겠다. 우리 모두의 건강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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