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나마 YS를 지지한 적이 있다. 투표권이 없었던 고3 때였다. 양김의 분열로 치러진 87년 대선에 앞서 맹랑한 한 친구에 의해 학급 내 대선 모의투표가 제안되고 진행됐다. 그 당시도 정치적 의사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건 쉽지 않았다. 수험생들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곧 나갈 세상에 대한 관심을 뒤로 미뤄둘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생전 처음 겪어보는 대선 아닌가.

모의투표 결과는 YS, DJ, 노태우 등등의 순서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마도 군인 출신 정치인에 대한 지겨움이 작용했을 걸로 풀이된다. YS가 1등 된 데에 나의 지지도 기여했다. 이제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모의투표 결과는 실제 선거 결과와 달라도 아주 달랐다. 그러나 이 선거 결과마저도 세상이 변하고 있고 또 변할 것 같다는 생각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그 이후 상당 기간 YS는 (내겐) 분열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양김 분열, 3당 합당 등등 굵직한 사건의 영향일 게다. 그래도 그는 언제나 한국사회의 중심에 있었고 결국 92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87년 5월 1일 통일민주당을 창당한 뒤 당기를 흔드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YS의 대통령 임기가 관통하는 90년대를 ‘희망의 시대’라고들 한다. 이건 현재가 과거에 붙인 이름이다. 지금 불고 있는 복고 열풍은 90년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당시는 고도 성장기였다. 비록 고도성장의 끝이 IMF 구제금융까지 이어진 건 현재까지도 논란의 대상이지만 말이다.

‘희망의 시대’를 앞당긴 건 민주주의 도입이라는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YS와 DJ의 덕이 크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YS를 형식적 민주주의의 완성자라고들 한다. 그의 업적을 나열해보면 이런 평가가 타당해 보인다. 광주 학살 전두환‧노태우 처벌, 금융실명제 실시, 하나회 척결 등은 이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분명한 업적이다.

물론 3당 합당이 민주주의와 무슨 관계가 있냐고 따져 묻는다면 내놓을 답변이 궁색하기는 하다. 3당 합당은 YS라는 자유주의자가 보수주의에 투항한 야합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가 대통령을 지낸 90년대는 변화와 개혁이 있었으며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어느 정도는 작동하고 있었다는 점을 새삼 강조하는 걸로 답변을 대신한다.

종종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이라는 얘기가 회자되곤 한다. 오래된 얘기지만 쉽지 않은 문제다. 요즘을 7,80년대 군인 통치의 시대처럼 분명한 적이 보이지 않는 시기라고 한다. 여기에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간 지 오래됐다는 얘기도 더해졌다. 한술 더 떠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와 이혼하려 한다는 이야기마저 들린다. 이런 정황에선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정치가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심증 이상의 수준에서 제기된다.

분노할 대상이 헛갈리는 시대, 아니면 분노할 대상을 보고도 못 본 체 하는 시대라고 해야 할까. 이런 시대에 오히려 시장만큼 혁신을 부르짖고 있는 곳이 없다. 민주주의보다 시장의 혁신을 우선시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긴 시장이 밥 먹여 주지,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는 자조가 통하는 세상이다. 여하튼 ‘보이는 적들’과 싸웠던 YS는 ‘보이지 않는 적들’로 둘러싸인 한국사회를 뒤로 하고 저 세상으로 갔다.

YS가 임기 말에 노동악법 날치기를 시도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이후 결국 여야 합의로 통과되긴 하지만, 야당이 반발하던 시기에 YS는 노동악법 처리를 잠시 멈췄다. 그 순간을 만든 것이야말로 정치의 힘이었다고 판단하고 싶다. 20년이 지난 요즘은 정치는 없고 통치 행위만 횡행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적만 해도 버거운데, 보이는 적까지 다시 돌아와 더해졌다. 사실은 그게 진짜 문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