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조 < 중모리 < 중중모리 < 자진모리 < 휘모리’를 기억하는가?

중학교 때 음악시험의 단골손님으로 나왔던 문제여서 이 순서를 잘 외우고 있어야만 했다. 그 중 진양조는 가장 느린 장단으로 판소리 춘향가에서는 춘향이 옥에 갇혀 이몽룡을 생각하는 대목에서 쓰이는 장단이라는 것을 알아야 했다. 또한 휘모리는 장단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처음부터 급하게 휘몰아 부르는 장단이란 뜻이다. 때문에 판소리에서는 급하고 분주한 대목이나 절정을 묘사한 대목에 쓰이고 흥부가에서는 박을 타는 대목에서 주되게 사용됐다. 근데 왜 여기에서 장단이야기냐고?

지난 11일에 개막한 ‘2008서울독립영화제’가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한창 상영 중에 있다. 이 2008서울독립영화제에 ‘상상 휘모리’라는 슬로건이 붙었다. 왜 2008서울독립영화제에 ‘휘모리’가 붙었을까? 이제부터 ‘상상의 휘모리’ 2008서울독립영화제를 집중 파헤쳐보자. 팍팍.

그 첫 번째 질문. Sex가 등장한다는데?

맞는 말이다. “감각의 독립 ‘Sex’-표현의 자유를 누려라”라는 타이틀로 기획전이 진행된다. 이 기획전에서는 실제 정사 장면으로 논란을 겪었던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의 <숏버스>를 비롯해 마이클 원터바텀 감독의 <나인 송스>, 브릴리얀테 멘도자 감독의 <서비스> 등이 대거 소개될 예정이다. 이를 기획한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이번 기획전을 통해 육체의 움직임에 대해 과감하게 표현하는 작품들을 살펴보고, 국내에서도 넓혀진 ‘표현의 자유’의 경계를 더욱 확장하는 작품이 나올 수 있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고 하니 기대할 만할 듯하다.

그 두 번째 질문. 감독들이 배우들 오디션을 본다는데?

이 또한 맞는 말이다. 그동안 배우들을 구하느라 고생했던 독립영화 감독들과 독립영화에 출연하고 싶어도 기회를 잡기 어려웠던 배우들이 만나는 자리가 마련된다. 이는 향후 독립영화의 도약을 위한 통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감독, 배우를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치러지는 오디션은 오는 16일 오후 8시에 진행된다고 하니 이 기회를 놓치지 말기를. ‘나도 한번?’

색다른 토론회도 진행된다. ‘Sex is cinema : 영화에서 성적 표현의 문제’ 토론회에서는 “섹스를 다룬 영화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법적·제도적 문제는 없는지에 대해 논한다”고 한다. 이는 오는 15일 오후 5시에 진행될 예정이다. 또한 16일 오후 5시에 열리는 ‘거리의 촛불, 참여 미디어의 가능성’ 토론회에서는 “촛불영상들과 함께, 지난 촛불집회에서 펼쳐졌던 다양한 미디어들의 활동을 돌아보고 참여미디어의 가능성과 역할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고 하니 이 역시 주목된다.

그 세 번째 질문. 독립영화는 고루하고 재미없지 않나?

이건 물음표로 남기겠다. 사실 ‘독립영화’라 하면 왠지 다가가기 힘들다는 생각이 앞서 선뜻 다가가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한발자국만 다가선다면 아마도 그 매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중독성이 강한 장르가 바로 ‘독립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에 대한 답은 직접 관람한 관객들에게 넘기도록 하겠다.

그러나 한 가지. 한국 독립영화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 독립장편영화들이 양적 질적으로 좋은 성과를 보였다. <우린 액션배우다>를 보았는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쌍판떼기를 보아하니 깝깝하다”, “병길아, 나 차 한번 뒤집고 있다 다시 통화하자~”라는 즐거움을 준 이 영화는 관객수 1만명을 돌파했다. 또한 해외 진출작도 늘어났다. 팔순의 농부와 그의 곁을 지켜온 늙은 소의 우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워낭소리>는 한국영화 최초로 선댄스영화제 국제경쟁부문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들어는 봤는가, 선댄스영화제.

또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의 개관 역시 큰 이슈를 낳았다. 영화제 이외에 관객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던 독립영화. 하지만 이제 인디스페이스에서 일상적으로 독립영화를 접할 수 있게 됐다. 이런 모든 이유들 때문에 2008서울독립영화제에는 ‘휘모리’ 모토로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이제 독립영화가 박을 타기 시작했으니 흥부의 박에서 보물이 나오길 기대해봐야겠다.

그 마지막 질문. 그렇담 어떤 영화들을 봐야 하는 건가?

그렇다. 독립영화를 자주 접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떤 영화를 볼 것인지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준비했다. ‘서울독립영화제2008’에서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영화 6선. <http://www.siff.or.kr/indexkr.php>로 들어가서 꼭 시간표 확인하기. 2008서울독립영화제는 오는 19일까지 계속된다. 단, 이것만은 알아두자. “경고, 독립영화를 재밌게 보다 폐인이 되더라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2008서울독립영화제 “올 겨울, 절대 놓쳐서는 안 될 독립장편영화 6선!”
-서울독립영화제2008 필견의 독립장편영화 6편 프로그램노트 톺아보기-

1. ‘힘들 땐 두만강을 찾고 백두산을 올라라’ 광대무변의 푸르름을 노래한다, 개막작 <푸른 강은 흘러라>
(강미자Ⅰ2008ⅠFictionⅠColorⅠHDⅠ77min 30sec)

“푸르름은 낭만이야”, “푸르름은 광대무변이지”, “그것은 숙원의 약속이고”, “그것은 옥 같은 고백이지” 영화 속 주인공 순이와 철이는 채팅을 통해 이와 같은 대화를 주고받는다. 감독은 이 대사를 오프닝에서 두 번이나 반복한다. 영화는 푸르른 청춘을 이렇게 존중하고 찬양하면서 시작된다.
중국 연변에서 촬영된 강미자 감독의 첫 번째 장편 <푸른 강은 흘러라>는 순박하면서도 강렬하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고 있는 연변 소년, 소녀들의 활기차고 당당한 모습 뒤에 묵묵히 집안일을 돌보는 철이의 아버지와 한국으로 돈 벌러 떠난 철이의 어머니가 등장한다. 소년, 소녀들의 모습에서 강건함과 싱그러움 그리고 청춘의 부유하는 설렘을 느낄 수 있다. 연변의 학교 풍경은 언뜻 낯설어 보이기도 하지만, 꿈을 가진 소년 소녀들의 모습만큼 풋풋하고 푸르르다. 청춘들이 꿈을 꾸어야 하는 학교 모습이 필경 이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후략)
<조영각 / 서울독립영화제2008 집행위원장>

2. 국내영화 최초, 선댄스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워낭소리>
(이충렬Ⅰ2008ⅠDocumentaryⅠColorⅠHDⅠ75min)

(전략) 말이 없는 노인과 늙고 힘없는 소는 많이 닮아 보인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펼쳐진 그들의 일상은 참 한가하고 딴 세상을 꿈꾸게 한다. 그러나 보는 것처럼 만만치 않은 삶이란 걸 할머니를 통해 환상을 깨게 한다. 끊임없이 계속해서 잔소리를 해대는 할머니. 이미 대답을 원하지 않는 혼자만의 넋두리이자 고단한 삶의 표현이다. 평생 자신의 말을 하지 못하고 살아갔을 거라는 짐작이 든다. 할머니는 어쩜 카메라를 믿고 그동안 못했던 말들을 할아버지에게 쏟아내고 있는 듯 보인다. 40년을 할아버지의 곁에서 함께 농사를 지어온 소. (중략) 인간과 소의 감정을 포착해내며 화면 가득히 메우는 노인과 소의 관계는 보는 이 하여금 묘한 매력으로 이끌어가는 힘이 있다.
<김태일 /독립다큐멘터리 감독<안녕, 사요나라>, 서울독립영화제2008 예심위원>

3. 어느 게이의 지독한 현실, 그리고 처절한 판타지 <청계천의 개>
(김경묵Ⅰ2008ⅠFictionⅠColor+B&WⅠHDⅠ61min)

(전략) 개를 구해주고 시력을 회복한 남자는 거리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은 찾지 말라”는 소년의 충고를 듣는다. 소년을 찾아 헤매다가, 어느 옷가게에서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은 남자는 아름다운 여성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녀는 멋진 남자와 달콤한 사랑을 나누지만, 그녀의 행복한 순간은 무참히 깨어지고 불안하게 누군가에게 쫓긴다. 결국 그녀는 제복을 입고, 개의 가면을 쓴 남자에게 겁탈을 당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주인공은 남자가 되어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그가 겪었던 것은 꿈일까? 현실일까? 영화는 꿈과 현실, 육체와 영혼, 자연과 허위의 불일치와 가슴 아픈 충돌을 예리하게 담아낸다. 그리고 여성이 될 수도 없고, 남성으로 살 수도 없는 자아의 혼란을 보여준다. 김경묵 감독은 여성이 되려는 욕구를 가진 한 자아가 꿈과 현실을 오가면서 깨어져 나가는 모습을 흑백과 칼라를 교차시키며, 지독한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파고드는 새롭고도 신선한 영화를 선보인다. 또한 청계천의 인위적이고 인공적인 물줄기처럼 가식적인 세계의 허상을 바라보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도시 속 영혼의 모습을 아름다우면서도 처절하게 그려내고 있다.
<조영각 / 서울독립영화제2008 집행위원장>

4. 독립영화는 왜 예술적이지 않은가에 대한 의문을 버려라 <허수아비들의 땅>
(노경태Ⅰ2008ⅠFictionⅠColorⅠ35mmⅠ90min)

노경태 감독의 영화는 기이하다. 전작인 <마지막 밥상>도 그랬지만 <허수아비들의 땅>에서도 역시 서사의 논리를 초과하는 잉여가 두드러진다. 그의 영화가 발산하는 잉여는 서사적 논리에 매끄럽게 포섭되지 않는다. 감독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마지막 밥상>에서 오랜 여운과 인상을 간직한 관객들이라면 영화 속에 배치된 상징의 의미를 친절히 설명하는 감독의 성실함이 오히려 영화의 호소력을 축소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 있을 것이다. 그의 소박한 언어는 영화가 발산하는 직접성을 온전히 담아내기에 불완전하다. <허수아비들의 땅>은 또 한 번 그러한 경험을 제공한다. 영화는 <마지막 밥상> 못지않은 정서적 충격과 여운을 남기지만 이번에도 관객은 감독이 의도한 것 이상을 영화에서 본다. 그러니 이제 인정할 수밖에. 그의 영화는 감독의 의도를 넘어선다고. 그의 영화는 서사의 맥을 파는 것만으로 전모를 드러내지 않는 이미지 포에틱스의 영화다. 그것은 거의 직관적이며 본능적이다. 실험영화를 통해 단련된 그의 이미지 조탁술은 서사의 논리를 뛰어넘어 시네마의 본질을 향해 접근해간다. 그의 영화가 낯설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우리가 영상을 문자언어의 주석달기 쯤으로 오해한 비영화적 영화들에 너무 길들여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풍부하고 다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이미지와 시네마 정신으로 충만한 영화. 그러나 강렬한 매혹에도 불구하고 서사 자체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관객 스스로 이 영화의 판관이 되어야 한다.
<맹수진 / 영화평론가, 서울독립영화제2008 예심위원>

5. 강력하다, 강력하다, 더없이 강력하다! 부산영화제 최대의 화제작 <똥파리>
(양익준Ⅰ2008ⅠFictionⅠColorⅠ35mmⅠ130min (CJIP 지원작))

배우로 널리 알려진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는 처음부터 숨 가쁘게 몰아치는 영화다. 강하게 몰아치는 흐름 속에 눈과 귀를 맡기다 보면, 난무하는 욕설과 폭력에서 주인공에게 드리워져 있는 어둡고 깊은 상처를 만나게 된다. 가족에 대해 특히 아버지에게 불신과 증오를 품고 있는 상훈은 매정한 듯 보이지만, 어린 이복동생만큼은 끔찍이도 챙긴다. 하지만 그가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매우 서투르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여고생 연희와의 관계에서도 그의 서투름은 명확하게 드러난다. 서로 애정과 연민의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상훈과 연희의 공통점은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훈은 폭력을 휘두르면서 살고 있고, 연희는 가정 폭력을 힘겹게 견디고 있다. 그런! 힘겨운 삶을 보여주면서도 영화는 위트를 잃지 않고 인물들의 복합적인 감정을 효과적으로 담아낸다. 영화의 주제는 반복되는 폭력의 굴레이지만, 그런 폭력적 상황에서도 삶의 생기를 잃지 않고자 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확연하고 강렬한 배우들의 표정과 연기를 통해 빛을 발한다. 이것이 이 영화의 커다란 장점이다. “똥파리”는 더러운 곳에 꼬이는 존재이다. 그것이 똥파리의 생존 조건이다. 그곳을 벗어나서는 살 수 조차 없는 존재들을 영화는 가감 없이 보여준다.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세상은 이미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고, 가장 작은 사회인 가정도 예외는 아니다. 양익준은 강렬한 연기와 연출을 통해 사회 밑바닥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처를 진심으로 어루만지고 있다.
<조영각 / 서울독립영화제2008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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