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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시민들은 밧줄로 ‘언론’을 당겼다언론이 할 일은 ‘보도투쟁’이다
박장준 기자 | 승인 2015.11.17 11:00

지난 14일 십만여 명이 모인 ‘민중총궐기’에서 2008년 촛불집회를 떠올린 사람들이 많았다. 2008년과 2015년 사이에 유사한 점이 많은 건 사실이다. 수많은 시민들이 광장에 모였고, 분노할 수밖에 없는 문제에 대해 분노했다. 이명박 정부는 ‘명박산성’으로, 박근혜 정부는 ‘물대포’로 공권력의 힘을 보여줬다. 공권력이 막아버린 광장 밖에서 시민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공권력은 이런 시민들을 정조준했다. 정부는 공권력에 ‘지침을 벗어나라’는 지침을 내렸다.

2008년과 2015년 사이의 차이점도 있다. 공권력은 나쁜 방향으로 진화했다. 박근혜 정부는 시민들이 차벽에 기어오르지 못하게 콩기름을 뿌리고, 캡사이신을 쉼 없이 살포해 더 적극적으로 시민들을 통제했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은 인왕산에 올라 촛불을 바라봤지만,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은 무심하게도 외국으로 순방을 떠나버렸다. 집회 소식은 서면으로나 보고됐을 것이다. 2008년의 시민들은 거리에 나와 모종의 해방감을 느꼈지만 2015년의 시민들은 한줌 성과도 얻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 (사진=공무원U신문)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시민들이 언론을 대하는 ‘태도’다. 박근혜 정부의 언론이 언론답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공영방송의 저널리즘이 급격하게 무너진 데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다. 권력과 자본에 비판적인 기자와 PD는 현장에서 쫓겨났고 해고됐다. ‘제도정치’를 경유해 저널리즘을 복원할 수 있다고 믿은 언론사 노조들은 2012년 총‧대선에 과감하게 움직였다. 덕분에 이들은 지금까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새 정부는 보수신문에게 방송사까지 차려줬고, 종합편성채널들은 특유의 선동으로 자신들이 지상파와 ‘동급’이 됐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보수매체들은 급성장했지만, 노조 무력화로 내부저항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지상파의 저널리즘은 작동을 멈췄다. 결국 지상파는 침묵하고, 종편만 떠드는 세상이 됐다. 언론사 내부 통제도, 현장에서의 자기검열도 강화됐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를 거치면서 급기야 기자들은 현장에서 쫓겨났다. ‘오보’를 남발했던 ‘무능력’ 때문 만이 아니다. 언론이 권력과 같은 곳에 섰기 때문이다.

언론과 권력은 한몸이 되고 있다. 정부는 경영이 어려운 언론을 ‘정부광고’로 통제한다. 미디어스가 입수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0년부터 2014년 6월까지 정부광고 게재 현황’ 자료를 보면, 4년 반 동안 정부가 지출한 광고비는 1조9460억4238만9천원이나 된다. 950개 공공기관은 6698억3084만9천원, 956개 국가행정기관은 3097억1737만7천원, 604개 기타기관은 945억7793만9천원, 199개 지방공기업은 834억9868만4천원, 718개 지방행정기관은 7598억4867만5천원, 166개 특별법인은 285억6886만5천원을 집행했다. 이를 통해 한 번 ‘찍힌’ 언론은 살아남기 힘든 구조가 만들어졌다.

박근혜 정부가 방송, 신문, 포털, 인터넷을 노골적으로 압박해도 언론은 무기력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언론중재위원회 등이 총출동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인 덕에 공론장은 이미 기울기를 잴 수 없을 만큼 기울었다. 민중총궐기에 대한 언론보도에서 운동장이 기울어졌다는 사실은 재확인된다.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부터 보수언론인 조선일보까지, 다수가 시민들의 ‘폭력’만을 강조했다.

새누리당의 주요 인사들은 광장에 뛰쳐나온 시민들을 ‘폭도’라고 부르고 있다. 어떤 국회의원은 광화문광장을 아예 없애버리자는, 중세에나 나올 법한 황당한 주장까지 펼쳤다. 지금 언론이 방기하고, 옹호하고, 비호하는 권력의 모습이 이렇다. 시민들이 허탈해하고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 시민들만이 아니라 언론인들도 그렇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소속 조합원 백여명이 그날 종로거리에 있었지만, 그들이 속해있는 언론은 경찰과 청와대가 원하는 대로만 보도했다. 그날 저녁, 시민들은 권력 그리고 언론을 밧줄로 묶고 당겼다. 하지만, 끌려오지 않았다.

2008년 시민들은 “MBC를 지키자”고 외쳤다. 하지만 2012년 정영하 언론노조 MBC본부장(해직‧현 언론노조 부위원장)은 시민들에게 “MBC를 보지 말라”고 외쳐야 했다. 그리고 3년 뒤, 언론노조는 MBC로 대표되는 공영방송의 저널리즘을 더 이상 입에 담지 않게 됐다. 공영방송에서 ‘민중’은 뉴스가 아닌 예능프로그램에서나 간간히 등장한다. 언론운동단체들의 모니터링 보고서들은 종편 JTBC와 나머지 방송의 보도를 비교하는 내용이 대다수다. 뉴스타파 등 몇몇 대안언론 정도만 가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정도다. 이게 언론운동, 언론노조운동이 처한 현실이다.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자조 섞인 구호를 외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보도투쟁’이 필요하다. 1990년 노무현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은 언론노조 기관지 ‘민주언론’에 <언론, ‘자유의 무기’가 돼야 한다>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그는 ‘언론동지들’에게 “모든 권력이 상호감시와 견제의 기능이 있는 반면, 유일하게 언론만이 그를 통제하고 감시하는 맞수를 갖고 있지 못하다”며 “언론의 타락과 부패를 막기 위해서는 언론노동자의 결집된 힘밖에는 없다”고 썼다.

노동자의 결집된 힘은 ‘노동조합’을 통해 표출된다. 언론노조가 할 일은 메인뉴스든 인터넷뉴스팀이든, 사회부든 정치부든 조합원들이 다시 현장에 돌아가 기사를 쓰고 뉴스를 만들게 하는 것이다. 조합원들도 출입처에서 밀려났다고 주저앉아 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 시민들은 언론노조 깃발이 아니라 언론이 권력을 끊임 없이 비판하고 자신들의 요구를 가감없이 전달할 것을 바라고 있다. 시민들은 “방송을 지키자”고 외칠 준비가 돼 있다. 언론노조는 파업하지 않아도 된다. 노동조합은 고군분투하는 조합원의 버팀목이 돼야 하고, 현장에 있는 더 많은 동료를 만나야 한다. 지금 자신의 현장에서 싸우지 않는 것은 언론뿐이다.

박장준 기자  weshe@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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