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국정 역사교과서 발행을 위한 본격적인 태세를 갖추고 시국선언에 참여한 전교조 전임자 84명에 대해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는 등 ‘반대’세력 찍어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심복으로 불리는 이정현 최고위원은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해 “반대하는 국민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라고 말해 곤욕을 치렀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정부여당 관계자들은 “(역사 전쟁에서)지면 나라가 망한다”고 발언하는 등 ‘좌파척결’을 부르짖고 있다. ‘매카시의 광풍’이 불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의 이 같은 행보는 이념갈등으로 번져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있다.

‘이념전쟁’은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 때부터 이미 시작됐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에 ‘반민주적’, ‘뉴라이트’ 인사로 분류되는 박상증 목사를 임명한 것이 시작이다. 이념적으로 편향된 인사가 문제가 되는 것은 방송계도 마찬가지다. 최근 ‘노무현은 변형된 공산주의자’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고영주 이사장이 대표적이다. 박근혜 정부는 ‘극우’ 인사들을 꾸준히 방송 관련 기관에 투입해왔다.

▲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방송계 극우인사들은 주요한 이념적 쟁점에서 거의 동일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구체적으로 열거하자면 △5·18광주민주항쟁과 4·19혁명 등 민주화운동에 대한 저평가 및 북한개입, △건국절 중시,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의 “일본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 발언 옹호,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촉구, △젊은 세대의 ‘역사인식’ 불만 및 역사교과서 교체 주장, △<북한인권법> 제정 촉구, △서북청년단 옹호, △방송·통신 콘텐츠에 대한 좌편향 주장, △야권 인사들에 대한 종북 낙인 등이 그것이다.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방송계 극우인사들에는 어떤 인물이 있는지 박근혜 정부에서 방송을 어떻게 바꿔가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회와 박근혜 정부(방통위·방통심의위 포함), 방송사가 어떤 유기적 관계 속에서 방송의 ‘극우화’를 추진하고 있는지에도 주목해야한다.

KBS에 극우인사 이인호 이사장에 조우석·차기환·강규형 가세

공영방송 KBS에는 ‘극우인사’들이 대거 포진돼 있다. KBS 이인호 이사장에 조우석·차기환·강규형 이사가 가세한 모양새다. KBS 이인호 이사장은 서양사를 전공했고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박사를 받았으며 현재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광복절이 아닌 건국절을 제정해 기념하자는 ‘건국60주년기념사업준비위원회’의 공동준비위원장을 지냈다. 이인호 이사장은 2013년 3월 청와대 원로 초청 오찬에 참석해 박근혜 대통령에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동영상 <백년전쟁> ‘이승만의 두 얼굴’, ‘프레이저 보고서 제1부’ 등을 “역사 왜곡”이라고 주장, ‘역사전쟁’을 촉발시킨 인물로 손꼽힌다.

KBS 이인호 이사장은 2014년 국정감사를 비롯한 각종 강연에서도 ‘우익적’ 사고를 감추지 않았다. 그는 제주4·3항쟁 및 여수순천사건과 관련해 “공산당의 체제전복 시도에서부터 비롯됐다는 것은 명명백백한 역사에서 다 나오는 사실”이라며 “진압 과정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양민들이 너무 많지만 대한민국을 지키는데 필요했다”고 정당성을 부여하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다. 이인호 이사장은 김구선생에 대해 “1948년에 대한민국이 독립하는 데 대해 반대했기 때문에 건국의 공로자로서 거론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등 건국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추켜세웠다.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의 “일본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발언에 대해 “감동받았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 KBS이사회 이인호 이사장은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정부가 일본 망명을 추진했다는 내용의 KBS 보도를 논의하는 임시 이사회를 긴급 소집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22일 KBS 신관에서 열린 국감 당시의 이인호 이사장 모습 ⓒ미디어스

이인호 이사장이 2014년 8월 이사장을 맡은 후 KBS는 △광복 70주년 다큐 <뿌리 깊은 미래> ‘좌편향’ 논란, △<뉴스9> ‘이승만 정부 일본 망명’ 보도 삭제, △역사다큐 <훈장2부작> 제작진 교체 및 불방 사태 등을 겪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 이인호 이사장이 직접적으로 개입한 경우가 많았다. 그는 <뿌리 깊은 미래>와 관련해 “북한에서 할 만한 내레이션이 나온다”라고 주장하고 <뉴스9>의 ‘이승만 일본 망명 요청’ 보도에 대해 ‘시끄럽게 됐다(논란이 커졌다)’는 이유로 전례 없이 이사회를 소집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일본 망명 요청 사실에 대한 보도를 담당한 주요 부서장은 교체됐고 해당 기사는 KBS홈페이지에서 삭제됐다. KBS는 부인했지만 이는 이인호 이사장의 눈치를 본 결과일 수밖에 없다. KBS 내부의 역사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1965년 한일회담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에게 보낸 친서 등을 최초로 영상에 담은 <훈장>이 불방상태에 놓여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여기에 최근 조우석·차기환 이사가 가세한 것에 우려가 크다. 이들의 역사인식 또한 이인호 이사장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조우석 이사는 문화일보, 중앙일보 등에서 일했으며 최근 미디어펜의 주필로 활동하며 ‘극우’ 인사로서의 면모를 그대로 드러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군관학교 지원 때 혈서를 썼다는 설이 등장했지만, 당시 20대 젊은이가 그런 선택을 할 개연성은 없지 않았다. 그게 당시 현실이었으니까”라며 “그렇다고 그를 ‘식민화된 군인’으로 싸잡아 규정해야 할까? 외려 식민지 현실 속에서 근대성에 눈을 떠가는 과정을 통해 훗날의 그가 성장했다고 보는 게 올바른 시각이 아닐까”라고 평가했다. 또 “좌편향 역사교과서, 친일파 인명사전 소동이 ‘정의의 이름으로’ 거듭 등장한다”며 “현대사의 분수령 한국전쟁 자체를 삐뚜름하게 보거나, 전쟁영웅 백선엽을 친일파로 규정하는 허튼 시도도 흔히 보인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영화 <웰컴 투 동막골>과 <괴물>을 ‘좌파영화’로 꼽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의 ‘좌파문화척결’과 흡사한 주장을 반복해서 제기하고 있는 셈이다.

조우석 이사는 또한 “제주 4·3사건에 서청대원(서북청년단)이 투입된 것을 놓고 좌파들은 맹비난하는데, 그 또한 적반하장이다.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하는 민중봉기를 일으킨 남로당이 나쁘면 나쁘지, 그걸 진압했던 서청이 왜 비난을 받아야 하나”라고 주장했다. 한 토론회에서는 “건국혁명가 이승만”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대한민국을 만든 건국혁명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야말로 이승만을 분단의 원흉으로 모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KBS 차기환 이사는 ‘뉴라이트 네트워크’의 간사단체인 자유주의연대 운영위원을 지냈다. 차기환 이사는 역사 관련 발언보다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정부여당의 좌파척결에 호응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다. 차기환 이사는 2012년 총선 당시 보수우파 진영의 범시민사회단체연합에 참여해 김갑중, 김부경, 김종훈, 박세일, 손수조, 송영선, 이용선, 이정현, 하태경, 홍사덕 후보를 ‘좋은 후보’로 선정했다. 이 중 박세일 교수는 새누리당이 주최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옹호 간담회에서 “대한민국이 좌편향 역사병에 걸렸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차기환 이사는 전교조 명단을 공개해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는 조전혁 전 새누리당 의원을 지원하기 위한 ‘법률자문단’의 멤버로 활동했으며, 한미FTA를 반대한 정치지도자들에 대해 낙선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인호 이사장 및 조우석·차기환 이사로 인해 KBS의 독립성과 제작자율성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 더 심화될 전망이다. 조우석 이사는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과 인기를 잘 활용해야 한다. 그를 소재로 한 드라마·영화·다큐멘터리·어린이용 전기·만화책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 등은 이의 근거다. 기존 교과서가 좌파적 성향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을 견지해왔던 교과서포럼의 운영위원이며, 조우석·차기환과 함께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주창하는 보수성향의 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강규형 이사의 존재 또한 무시할 수 없다.

MBC, 고영주·김광동에 권혁철·이인철 새로 합류

MBC의 경우도 KBS와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에 공안검사 출신 고영주 이사장이 선임됐다. 방문진 고영주 이사장은 출신에 걸맞게 주로 이념편향적 활동을 펼쳐왔던 인물이다. 영화 <변호인>의 모티브가 된 부림사건의 담당 검사로서 대법원이 무죄를 판결한 것에 대해 “사법부가 좌경화됐다”고 발언해 논란을 빚은 게 시작이다. 스스로의 평가에 의하면 그는 공안검사로 재직하면서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해 관계자들을 사법처리했고 전교조의 ‘참교육’ 슬로건이 이적이념이라는 논리를 만들었다. 그는 퇴임 이후에도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친북·반국가행위자인명사전’을 발표하고 통합진보당 해산 청원에 앞장섰다. 그는 새누리당 추천으로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선임돼 세월호 유가족들을 ‘떼쓰는 사람들’이라며 폄하하기도 했다. 이런 과거의 행적으로 보면 최근의 ‘노무현은 변형된 공산주의자’, ‘박정희·이재오·김문수는 전향한 공산주의자’, ‘국사학자 90%가 좌편향’, ‘사법부·공무원·검찰에 김일성장학생과 (북한)프락치 있다’ 등 편향적 발언이 우리에게 충격을 안긴 것은 전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고영주 이사장은 “국민 대다수는 제가 건전한 상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 “저에게 ‘편향된 이념’, ‘수구이념 추종자’라고 하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상과 이념을 갖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며 자신의 이념편향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 방문진 고영주 이사장ⓒ미디어스

고영주 이사장과 함께 방문진 김광동 이사도 MBC에 관계하는 극우인사로 손꼽히고 있다. 김광동 이사는 2000년 나라정책연구원장을 지냈는데 이후 노무현 정권을 ‘수구좌파’라고 규정하는 자유주의연대 창립에 참여했으며, 보수성향의 인터넷신문 프리존뉴스의 대표필진으로 활동해 대표적인 뉴라이트 인사로 규정되고 있다. 그는 KBS 강규형 이사와 함께 교과서포럼에 참여해 보수성향의 <한국근·현대사>(기파랑출판사) 집필에 참여하기도 했다. 김광동 이사는 현행 교과서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은 독재자로 묘사한 반면 김일성·김정일 체제는 찬양했다는 식의 논리를 폈다. 또 그는 “87년부터 민주주의이고 그 이전은 비민주주의 시대였던 것처럼 평가하는 것은 정치적 의도에 따른 작위적 평가일 뿐”, “(제주 4·3항쟁은)공산주의 체제를 지향하는 세력들이 자유민주주의적 체제에 기반한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세력을 대상으로 벌인 반란”이라는 등 민주화운동을 깎아내리는 발언을 수 차례 했다. 세계일보에 기고한 글에서는 “광복보다는 점차 건국을 기리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독립국가를 만들어 성공의 길을 걷고 있는 대한민국의 탄생 개념이 보다 적극적”이라며 건국절 기념의 당위를 강조하기도 했다.

이렇듯 극우적 행보를 계속해온 고영주 이사장과 김광동 이사는 MBC 방송프로그램에 깊숙이 관여해왔다. △특집대담 <마유미의 삶, 김현희의 고백> 편성, △긴급대담-<문창극 총리 후보자 논란>, △시사 <뉴스후> 폐지 등이 대표적 사례다. 고영주 이사장은 방문진 감사직을 수행하던 당시 MBC 백종문 편성제작본부장이 출석한 자리에서 “(2003년 방송된 <PD수첩> ‘16년간의 의혹, KAL 폭파범 김현희의 진실’ 편은 불공정 편파방송”이라며 시정조치를 요구했다. 이 결과로 김현희 특집대담이 긴급 편성됐다. 김광동 이사의 경우 MBC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과 관련해 “(미국을 다룬) 방송 내용이 일관되게 반미적 성향이 흐른다”고 지적했다. 그는 <PD수첩>, <시사매거진 2580>, <뉴스후> 등 시사프로그램 “통폐합” 발언으로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 김재철 사장은 <뉴스후>를 폐지했다. MBC가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의 교회강연 영상 전체를 여과없이 방송해 전파낭비 논란에 휩싸인 것도 고영주·김광동 인사가 방문진에 재직할 때의 일이다.

방문진 고영주 이사장과 김광동 이사가 먼저 자리를 잡은 상황에서 권혁철·이인철 이사가 새롭게 들어왔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권혁철 이사는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요인 중 하나는 반시장적 성향을 가진 국회의원들”이라며 “(그 같은)좌파 의원들 대부분은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 소속 의원들로 낙선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이인철 변호사는 보수성향의 행복한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표로서 <북한인권법> 제정을 촉구하는데 앞장선 바 있다. 이들이 기존 방문진 극우인사들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면 상황은 지금보다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EBS, 조형곤 이사에 극우 출신 사장을 더하면?

EBS에도 역시 박근혜 정부의 극우 침공의 손길이 뻗치고 있다. 극우 성향의 조형곤 21C미래교육연합 대표가 최근 이사로 선임된 것이 대표적이다. 조형곤 이사는 미디어펜에서 기명칼럼을 통해 뉴라이트 성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청소년용 정치해설서인 <김치도 꽁치도 아닌 정치>에 대해 “통진당 정치투쟁 매뉴얼이 중학교 추천도서라니…”라며 비난했다. 조형곤 이사는 이 책에 등장하는 ‘오늘날 한국에서 빨갱이는 광적인 이데올로기 마녀사냥을 보여준다. 더 이상 쓰면 안 될 말’, ‘친일파 후손들과 뉴라이트 계열은 친일 인사들의 행적을 두둔하고 임시 정부의 가치를 폄하하며 항일 운동의 진정한 뜻을 희석하려 한다’는 등의 내용에 대해 “빨갱이라는 말을 쓰지 말래놓고선 ‘뉴라이트’는 천하의 죽일 놈으로 매도하고 있다”며 “즉각 이 도서를 추천도서 목록에서 삭제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폈다.

▲ 조형곤 21C 미래교육연합 공동대표(EBS 화면 캡처)

EBS 조형곤 이사의 이 같은 인식이 방송 프로그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려되는 지점이다. 그는 <흔들리는 EBS, 교육독점이 부른 편향 폐해> 칼럼을 통해 EBS 프로그램들이 “좌편향”이라며 “EBS는 공익을 위해 공영적 방송을 한다고 주장한 것과 달리 매우 편향적이고 선동적인 방송을 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지식채널-e>와 <다큐프라임>의 일부 내용들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조형곤 이사의 이 같은 인식은 정부가 EBS의 수능교재 집필과 관련해 이미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의 독재와 인권탄압 등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부분을 “빼라”고 지시한 것과 유사한 맥락으로 이해된다. (▷관련기사 : 교육부, EBS 수능교재에서 박정희 독재 "빼라")

새롭게 구성된 EBS 이사회는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대한 우려를 더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서남수 이사장은 박근혜 정부 초대 교육부 장관 출신(~2014년 7월)이며, 이시우 이사 역시 정부가 추천한 인사다. ‘맥주병 난동’으로 논란을 빚은 안양옥 이사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지지하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이다. EBS 신임 사장에 새누리당에서 활동한 경력을 갖고 있는 뉴라이트전국연합 류석춘 전 대표(현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원장)과 뉴라이트 교과서로 평가받는 교학사 교과서 대표집필자 이명희 교수가 유력인사로 대두되고 있는 실정까지 고려하면 KBS에 이어 EBS 내 ‘역사전쟁’이 벌어질 것이란 우려를 충분히 해볼 수 있다.

청와대, 방통심의위에 박효종, 조영기, 함귀용 투입

방송 콘텐츠에 대한 심의 권한을 갖고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가 극우인사들에 의해 점령되다시피 한 것은 방송계 전반의 극우화를 심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 뉴라이트 학자 출신으로 서울대 명예교수를 지낸 박효종 방통심의위원장은 이런 우려를 갖게 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박효종 위원장은 뉴라이트 교과서를 발간을 주도한 교과서포럼 회장을 KBS 강규형· MBC 김광동 이사와 함께 지낸 인물이다. 그는 2005년 발표한 한 논문에서 기존의 독립운동사 연구를 ‘편협한 민족주의’에 입각했다고 깎아내리고 “일본 육사를 나왔다고 하더라도 나라를 중흥시켰으면 민족주의자”라고 주장해 박정희 대통령을 찬양하기도 했다.

▲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14일 국회에서 열린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위원회·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박효종 위원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를 오래전부터 주장했던 인물 중 한 명이다. 2009년 조선일보 <우리는 왜 그를 잊지 못하는가> 칼럼을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을 ‘불멸의 통치자’로 추켜세운 뒤, “(박정희 정부 때)산업화의 주역과 민주화의 주역이 일란성 쌍생아처럼 함께 태어났다. 입장과 철학은 달랐지만 진정성과 헌신, 열정과 소명의식으로 무장한 한국인이 출현한 것이다. 박정희는 이렇게 영웅시대를 연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효종 위원장은 2012년 박근혜 대선캠프 정치쇄신특위위원으로 활약하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도 참여한 바 있다.

함귀용 심의위원은 방통심의위에서도 가장 편향된 성향을 지닌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공안적 시각에서 볼 때 방송의 좌편향이 심각하다”며 “MBC를 사고 싶다. 하지만 노조 끼워서 팔면 절대 안 살 것”이라는 비상식적 발언을 내놓은 바 있다. 참여연대가 천안함 침몰사건 조사결과와 관련해 UN에 서한을 보낸 것에 대해서도 함귀용 심의위원은 “불순한 반국가단체행위를 한 목적이 무엇인지 규명한다면 <국가보안법> 상의 이적행위로 처벌할 수 있다”며 “배후에 분명히 누군가(간첩을 의미) 있을 거라 생각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조용기 심의위원 역시 <북한인권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대표적 인물로 최근 논란이 뜨거웠던 ‘대북전단 살포’ 필요성을 역설해온 인물이다. 조영기 심의위원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사태와 관련해 “20년 정도 김일성 비밀 교시를 받아 들여서 뿌려 놓았던 씨앗들이 지금 자라난 것”이라며 우리 사회 곳곳에 종북인사들이 포진해있다는 주장을 편 극우 인사로 평가된다.

이런 인물들에 의해 좌우되는 방통심의위가 방송의 ‘공정성’을 평가하는 등 심의업무를 맡고 있다는 점은 앞으로의 전망을 더욱 어둡게 만든다. 실제로 방통심의위는 KBS와 MBC에서 벌어진 ‘역사전쟁’ 논란을 빚은 프로그램들에 대한 징계를 통해 방송을 길들이고 우향우 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방통심의위는 △KBS <뉴스9> 이승만 정부의 일본 망명 보도에 주의, △KBS <뿌리 깊은 미래> ‘남녘’ 표현 등에 경고, △KBS <뉴스9> 문창극 보도에 권고 등 KBS 이인호 이사장이 불만을 가진 프로그램에 대해 중징계를 결정했다. 방통심의위는 또 △MBC 특별대담 <마유미의 삶, 김현희의 고백>에 문제없음, △MBC <뉴스후>에 시청자 사과, △MBC <PD수첩> ‘광우병 편’에 시청자 사과 등 는 사실상 문제없음을 의결해 극우인사들이 요청해 제작한 프로그램에는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들이 반발한 내용의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중징계를 결정하는 편향적 행보로 일관했다. 이 밖에도 방통심의위는 △채널A <뉴스특급> 박근령 초대 “신사참배 비판은 패륜” 등 극우적 ‘망언’ 노출에 대해 행정지도인 권고라는 경징계를 결정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박효종 위원장 체제에서 방통심의위는 △KBS <개그콘서트> 메르스 비판 민상토론에 의견제시, △JTBC <뉴스9> 다이빙벨 보도에 관계자징계, △MBC <뉴스데스크> ‘박원순 시장 아들 병역 기피 보도’에 의견제시 등의 제재를 한 바 있다. 정부 여당에 기울어진 심의라는 지적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앞서 언급한 MBC의 <김현희 대담>과 <뉴스후>, <PD수첩> 등에 대한 징계는 박효종 위원장의 3기 방통심의위결정은 아니다. 하지만 방통심의위는 1·2기 역시 정부여당 추천 6대 야당 추천 3으로 구성돼 왔으며 편향된 정치심의로 항상 논란이 돼 왔다.

박효종 위원장 체제의 방통심의위는 최근 인터넷 상의 명예훼손성 게시글에 대해 제3자 혹은 직권심의가 가능하도록 하는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개정을 추진 중에 있다.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은 ‘상위법의 취지에 맞춰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시민사회단체 등은 이를 ‘그 분 비판금지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밖에도 방통심의위는 메르스 사태 등의 국면에서 정부가 ‘괴담’으로 규정한 내용을 주장하는 인터넷 게시글을 삭제하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국회와 방통위마저 장악한 ‘극우’ 인사들

방송계의 ‘우향우’에는 국회와 방통위의 역할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이들은 KBS이사와 방문진 이사, EBS 이사, 방통심의위의 추천 및 선출·임명권을 쥐고 있는 기관들이기 때문이다.

KBS이사는 <방송법>에 따라 방통위가 추천하면 청와대가 임명한다. 방문진 이사들은 <방송진흥회법>에 따라 방통위가 추천·임명한다. EBS 이사들은 <한국교육방송공사법>에 따라 교육부가 추천하는 1인과 교육관련 단체에서 추천하는 사람 1인을 포함해 방통위가 임명한다. 방통심의위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통령 추천 3인과 관련 상임위 추천 3인과 국회의장 추천 3인으로 구성된다. 결국 국회 추천 분에 대하여 여야 동수 안배를 하더라도 대통령 추천 3인을 더하면 6대3의 구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KBS 이인호·조우석·차기환·강형규 이사, 방문진 고영주·김광동·권혁철·이인철 이사, EBS 조형곤 이사는 정부여당에서 추천한 인물들이다. 방통심의위 박효종 위원장과 함귀용·조영기 심의위원은 청와대가 직접 추천·임명했다.

방통위는 독립성을 기반으로 공영방송 이사들을 공모하고 추천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하지만 그동안 청와대 입맛에 맞는 극우 인사들을 추인하는 정도의 역할 밖에 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방통위 또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5명의 상임위원 중 위원장을 포함한 2인을 청와대가 추천·임명하도록 돼있고 남은 3인의 경우 여당 추천 1인, 야당 추천 2인으로 구성하기 때문에 3대2 구조가 고착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 3기 방통위에서 최성준 위원장과 이기주 상임위원은 청와대가 추천했으며 허원제 상임위원은 새누리당이, 김재홍 부위원장과 고삼석 상임위원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추천했다.

▲ 방통위 최성준 위원장과 허원제 상임위원, 이기주 상임위원(사진=연합뉴스)

5명의 방통위원 중 ‘극우’로까지 평가할 수 있는 인물은 없다. 다만, 법령에 의해 ‘독립성’이 보장돼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원하는 인사를 하면서 책임론이 불거지면 발뺌으로 일관한다는 게 문제다. 최성준 위원장은 “중립인 분만 공영방송 이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허원제 상임위원은 야당의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해임요청에 “적법 절차를 거쳐 임명된 것으로, 특별한 결격사안이 없는 상황에서 해임을 논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일축했다. 청와대가 추천한 이기주 상임위원 또한 “임명이 잘못됐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새누리당 의원들의 역할과 기능 또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새누리당의 경우 홍문종 위원장을 비롯해 박민식 의원(간사), 김무성, 민병주, 서상기, 유일호, 조해진, 강길부, 권은희, 류지영, 배덕광 의원들이 미방위에 포진돼 있는데, 그 면면을 보면 이들 역시 방송의 극우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김무성 대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이끄는 인물 중 한 명이다. 홍문종 위원장과 박민식·서상기·민병주 의원 등은 고영주 이사장이 출석한 국정감사에서 고 이사장에게 쏟아지는 ‘이념편향’ 비판을 업무연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차단해 논란을 야기했다. 조해진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MBC는 과거 국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노영방송이라는 우려를 받아왔다”며 “그런데 경영진이 바뀌면서 많이 해소되고 한쪽에 치우친 이념색깔 또한 완화됐다”고 발언했다. 방통심의위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개정은 새누리당 민병주 의원이 주장한 내용이다. 방통심의위 박효종 위원장은 “(인터넷상 명예훼손 게시글 심의에 대해)그동안 친고죄로 운영을 했고 그에 대해 새누리당 민병주 의원이 지적이 있었기 때문에 부정화를 바로 잡으려는 것”이라고 개정 취지를 설명해 이와 같은 해석을 뒷받침 했다. 이 밖에 박민식·서상기 의원은 감청 합법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정부는 북한의 테러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책무와 함께 국민의 통신비밀을 보호하고 통신자유를 신장할 책무가 있다”며 동조했다.

미방위는 <방송법>을 비롯한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등에서 규정하는 사항과 밀접한 연관관계를 가진 상임위다. 현재 국회에 공영방송의 사장을 공정하고 중립적인 인사가 선출 될 수 있도록 하고(KBS 이사 등 여야 동수 추천/특별다수제 도입 등), 방송사 내 제작자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노사동수 공방위 의무화 등)이 포함된 관련 법 개정안이 다수 계류중이지만 19대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될 상황에 놓여있는데, 이 중심에 새누리당 미방위원들이 있다.

방송광고, 정부광고, 시청자 방송참여 확대를 위한 재단에도 극우인사?

이 뿐만이 아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이하 코바코), 한국언론진흥재단, 시청자미디어재단 등에도 극우인사가 포진해있다. KBS와 MBC 등 방송광고를 대행해 판매하는 코바코의 곽성문 사장은 대표적 ‘친박’인사로 과거 중앙정보부(현 국정원)의 프락치로 활동했었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곽성문 사장의 자기소개서가 공개됐는데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등이 내용이 그대로 수록돼 있어 충성맹세서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코바코 곽성문 사장은 <방송광고판매대행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현 방통위가 임명했다.

방통위는 또한 시청자들의 방송 참여 확대와 권익 증진을 위해 설립된 시청자미디어재단 초대 이사장에 ‘노무현, 종북’이라는 망언으로 논란을 빚은 이석우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을 임명했다. 이석우 이사장은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안철수 후보를 두고 “백설공주와 두 난장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석우 이사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포기발언 논란 당시에도 ‘종북몰이’에도 앞장선 바 있다.

▲ 코바코 곽성문 사장과 한국언론진흥재단 김병호 이사장,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석우 이사장(사진=연합뉴스)

정부광고 대행 등을 주 업무로 하고 있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경우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선대위 공보단장을 맡았던 김병호 전 새누리당 의원이 이사장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는 ‘인혁당’ 사건과 관련해 “사과를 피해자 당사자들이 아닌 그들의 가족이나 후손까지 확대하기 시작하면, 전 국민 중에 사과를 안 받을 사람이 있겠느냐”라고 발언해 비판을 받았던 인물이다. 김병호 이사장 재직기간 중 한국언론진흥재단은 △4·16연대의 박근혜 정부 비판 기자회견 장소 대관 불허, △국민일보 메르스 관련 광고 제외 논란, △네이버-카카오 뉴스제휴평가위원회 위원에 김태호 전 삼성엔지니어링 전무 추천 등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인사권은 문화체육관광부가 가지고 있다.

이처럼 방송생태계 전체가 극우 인사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방송사 및 관계기관의 인사권을 쥐고 흔드는 양상이다. 방송사 내 극우인사들은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장을 선택하고 방송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이를 감시하고 제재해야 할 방통위는 직무유기 중이고, 방통심의위는 징계를 통한 방송사 길들이기에 앞장서고 있다. 방송의 ‘돈줄’과 관계있는 코바코와 한국언론진흥재단, 시청자미디어재단까지 극우·친박세력이 접수했다.

이 결과 KBS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에게 보낸 굴욕적 내용의 친서를 최초로 입수했는데도 공개할 수 없게 됐다. MBC에 김현희가 단독으로 나와 떠들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EBS 교양 프로그램들이 ‘중립’이라는 명분으로 무색무취화될 위기다. 방송사 뉴스는 모든 민감한 사안에서 ‘박비어천가’만 반복한다. 극우화된 방송은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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