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하, 집무실 책상 위에 <‘신문 등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 서류 뭉치가 있을 겁니다.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핵심만 보고 드리자면 1년 뒤부터 인터넷신문 ‘간판’을 달려면 취재 및 편집 인력을 ‘5명 이상’ 상시고용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원래는 ‘3명 이상’이었는데 문화체육관광부는 사이비언론을 척결하고 저널리즘의 질을 높인다는 이유로 규제를 강화했습니다.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것) 언론이 늘어나 ‘사이비언론’ 피해가 심각하다는 이유입니다.

목적은 ‘올바른 언론 만들기’ 입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이명박 전 각하가 종합편성채널을 만들면서 문화부가 ‘소통’하고 ‘상대’해야 할 대형언론사가 늘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소셜네트워크에 나도는 온갖 유언비어까지 채집(opinion mining)해 일일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놈의 인터넷신문이 정부를 가장 괴롭힙니다. 3명만 모이면 인터넷신문으로 등록할 수 있기 때문에 인터넷신문(및 인터넷뉴스제공사업자)는 2005년 286개에서 2014년 5950개로 급증했습니다. 종이신문은 571개에서 374개로 줄었는데 인터넷은 정반대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문화부의 분석이 현실과 다른 게 있습니다.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어 장사를 하는 언론은 대부분 대형언론사의 계열사입니다. 아시다시피, 네이버에서 검색이 되는 언론은 436개, 다음은 623개입니다. 네이버는 대문과 뉴스페이지를 150개 언론사의 기사로만 편집합니다(다음은 173개, 네이트는 116개 입니다). 상위 2~10%의 언론사들이 포털의 영향력을 활용하는 셈입니다. 문화부가 ‘저널리즘의 질이 낮다’고 지적하는 언론사는 ‘5인 미만 언론’이 아닙니다.

한국광고주협회가 대기업 홍보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른바 ‘사이비언론’으로 꼽힌 192개 언론사 중 절대다수는 ‘5인 이상 언론사’입니다. 이 명단에는 각하가 매일 아침 읽는 조선‧중앙‧동아일보도 있고, 각하에게서 ‘형광등 백개를 켜놓은 아우라가 느껴진다’고 칭송한 종합편성채널도 있습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언론사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이 대형언론사들이 ‘사이비언론을 척결하자’고 부채질을 해댔습니다.

이런 ‘나쁜 언론’에는 정부광고를 끊어야 하는데 문화부는 역발상을 했습니다. ‘언론이 많아져 대형언론사까지 질이 나빠졌다’는 겁니다. 각하가 ‘사인’을 한다면 40%에 가까운 인터넷신문이 문을 닫아야 합니다. 작은 언론들은 정부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기업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작지만 특정 분야를 집중해 취재‧보도하는 전문지들은 졸지에 문을 닫아야 합니다. 3명을 5명으로 늘린다고 저널리즘의 질이 좋아질 것이라는 것은 말그대로 어불성설입니다. 각하가 평소 언론의 책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절대 신문법 시행령 개정을 재가하면 안 됩니다.

결재서류를 문화부로 돌려보내야 할 이유는 쌓였습니다. ‘창조경제’ 때문이기도 합니다. 질 좋은 일자리를 청년들에게 제공하는 게 정부의 목표라면, 신문법 시행령을 개정해서는 안 됩니다. 인터넷신문들이 시행령안에 대해 반대하자 문화부는 3인에서 5인으로 등록요건을 강화한다 하더라도 업계에는 큰 영향이 없고, 있더라도 월급 150만원 직원을 2명 고용하면 돼 고용창출 효과가 있다고 선전했습니다. 살림이 쪼들리는 5인 미만 인터넷신문이 내년에도 언론사 간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렇지 않아도 박봉인 기자들의 월급을 깎아야 합니다. 각하가 청년에게 약속하는 ‘일자리’가 설마 이런 것은 아니겠지요.

인터넷신문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은 ‘너무 많다’는 겁니다. 미루어 짐작컨대 각하도 그리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미 인터넷신문의 절반(43.8%)은 사실상 망했습니다. 일 년에 한 건의 기사도 내보내지 않습니다. 홈페이지가 없는 언론도 25.5%나 됩니다. 인터넷신문 시장은 정상 작동 중이고, 독자들은 수많은 언론에서 옥석을 가려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 본지 박장준 기자. 박장준 기자는 "손가락은 절대 각하를 향한 삿대질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11월19일 시행령이 공포되면 미디어스를 비롯한 5인 미만 인터넷신문은 1년 유예기간을 거쳐 2016년 11월19일부터 미등록신문이 됩니다. 각하께 편지를 쓰는 저는 ‘기자를 사칭하는 사기꾼’이 됩니다. 방송통신위원회에도 출입할 수 없고, 부조리한 기업을 취재하려고 해도 문전박대를 당할 것입니다. 각하, 저는 계속 권력과 자본을 가장 가까이서 감시하고 견제하고 취재하고 보도하고 싶습니다. 부디 젊은 기자(만 31세)의 편지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국정교과서에 ‘박근혜 정부의 인터넷신문 등록요건 강화로 절반 이상의 언론이 사라졌다’고 기록되면 되겠습니까. 아직 재가하지 않으셨다 전해들었습니다. 부디 재고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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