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조우석 이사의 <동성애와 좌파는 왜 하나로 뭉쳤나?>라는 글(▷링크)이 장안의 화제다. 글의 본문을 읽기도 전에 제목만 보고도 피식 헛웃음이 터졌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구나. 아, ‘적반하장도 유분수지’라든가 ‘사돈 남 말하네’ 같은 말들도 어울리겠다. 처음엔 무식해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단지 선동을 위해 일부러 이렇게 쓴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그의 이 글을 읽고 다른 글들도 더 찾아 읽어보니 그의 나라 걱정이 너무나 심대해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그의 용기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무엇보다 ‘교회파괴-국가전복-사회분열 그리고 가정해체를 겨냥한 좌파의 거대한 전략적 노림수가 동성애 전쟁’이라는 그의 분석은 얼마나 의미심장한가. 대한민국이 기독교 국가도 아닐 진데, ‘교회파괴’가 그 모든 전복 사태의 시작이라니 말이다. 그런데 사실은, 필자야말로 전부터 정말 묻고 싶었던 것이 있다. “목사님들과 보수우파는 왜 하나로 뭉쳤나?”가 그것이다.

▲ KBS이사회 조우석 이사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결코 그저 그의 글을 패러디하고 싶어서도 아니고, 근거 없는 이야기도 아니다. 필자야말로 정말 심각하게 한국 사회가 걱정되어서 던지는 질문이다. 이미 한국사회는 여러 목사님들과 소위 ‘애국보수’를 자칭하는 분들, 그리고 보수 정치인들의 네트워크로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나라를 걱정한다면 이 분들의 행보야말로 우리가 함께 심각하게 걱정해야 할 일이다.

'교회파괴'가 '국가전복'으로 이어지는 역사인식의 이유

다른 이야기할꺼리가 많지만 가장 최근의 이슈인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 하나만 예를 들어 보자. 2014년 3월 6일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명성교회 담임목사이자 세계성시화운동본부 명예총재,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 총재, 기독교사회책임 고문 등의 직함을 가지고 있던 김삼환 목사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민주주의 건국’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발전 공적’을 언급하며 “하나님께서 박정희 대통령을 세우셔서 우리나라를 위대한 국가로 발전하게 해주셨다. 박근혜 대통령님은 가정이 없다. 오직 대한민국이 가정이다”라는 발언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을 찬양했다. 그가 고문을 맡은 기독교사회책임은 뉴라이트 교과서를 만들고자 했던 ‘교과서포럼’의 참여 단체였으며, 당시 국가조찬기도회의 회장이었던 황우여 의원은 지금 국정교과서를 추진하는 교육부 장관이다.

교과서포럼이 어떤 단체인가. 2008년 3월 24일 출간했던 교과서포럼의 비검정 교과서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는 일제 강점기에 대해 “그 시기는 억압과 투쟁의 역사만은 아니었다. 근대 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함으로써 근대국민국가를 세울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이 두텁게 축적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고 서술하고 있으며, 4.19 혁명을 ‘4.19 학생운동’으로, ‘5.16 군사정변’을 ‘5.16 혁명’으로 기술했다가 항의를 받기도 했다.

▲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지지하는 교수 모임 등이 국정 역사교과서 찬성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은 연합뉴스TV 캡처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시도하는 이들의 연합이 극히 우려스러운 이유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정통성을 한국 기독교의 역사적 공헌과 존립 근거로 일체화시키고자 하기 때문이며, 그 정통성과 기여의 중요한 근거로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내세우고자 하기 때문이다. 보수 기독교계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근대화의 역사에 기독교의 공헌이 서술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으며, 이 같은 입장은 최근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던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지지하는 교수 모임’에 연명한 신학교 교수들의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연명에 참여한 서울기독대학교 신학과 백종구 교수는 지난 10월 19일 뉴스앤조이와의 인터뷰에서 “기독교 없이는 한국의 근대화를 설명할 수 없다.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다. 국가는 기독교의 공헌을 정확하게 말해줘야 한다”고 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개신교는 해방 이후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에 의해 압축적인 성장의 기반을 다졌다. 소련과 사회주의 세력을 견제하고 한국에서의 영향력을 확고히 해야 했던 미국의 필요성과, 해방 이후의 혼란한 정국에서 자신의 취약한 정통성을 개신교 기반을 통해 확보하려 했던 이승만 정부의 필요성이 만나 한국의 보수 개신교는 엄청난 후원과 특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미군정은 한국에서 활동해 온 미국 선교사들을 주요 공직에 발탁하면서 이들과 친분이 있는 한국인 개신교 신자들을 대대적으로 채용했고 일본이 소유했던 재산을 불하하는 과정에서 압도적인 특혜를 받아 일본 종교 단체들이 남기고 간 자리에 100개가 넘는 개신교 시설이 들어설 수 있었다. 한편, 이승만 전 대통령은 제헌의회를 기도로 시작하고, 한국기독교연합회(KNCC)의 요청을 받아들여 일요일로 예정되어 있던 첫 제헌의회 선거일을 월요일로 연기하였으며, 국영방송에서 선교를 할 수 있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첫 민간방송으로 기독교 방송 CBS를 인가했다. 군목, 형목, 경목제도를 도입해 군대와 형무소, 경찰에서 특혜적으로 선교 사업을 할 수 있게 하였고,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지정했다. 또한 개신교는 건국 과정에서 중요한 교육 정책과 행정에 밀접하게 참여하면서 수많은 교육기관들을 운영했으며, 해외 원조의 배분권을 쥐고 사회복지 기반을 장악했다. 결국 현재까지도 한국의 보수 개신교계가 군대와 경찰, 정치권, 언론, 의료, 사회복지, 교육기관 등 정치·사회 영역 전반에서 특권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반이 거의 대부분 이 당시에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 2013년 7월 한기총 등 종교단체와 나라사랑학부모회 등 교육 관련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동성애 조장 교과서문제 대책위원회' 위원들이 11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민원실 앞에서 '동성애를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단정하는 내용의 삭제' 등 고등학교 교과서 내용의 수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한 뒤 교육부에 성명서를 전달하려고 민원실로 들어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에는 한국기독교협의회가 5.16 쿠테타 직후 “금번 5.16 군사혁명은 조국을 공산 침략에서 구출하고 부정과 부패로 기울어가는 조국을 재건하기 위한 부득이한 처사였다”는 내용의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10월 유신과 긴급조치 발령으로 민주인사들이 탄압을 받던 시기에 구국기도회 등을 열어 사회 분위기를 반공으로 몰아갔으며, 베트남 파병도 적극 지지했다. 한경직, 김장환 목사는 군사정권을 옹호하는 민간사절로서 미국에서 순회강연과 방송 출연 등에 나서기도 했다. 베트남 파병, 3선 개헌 지지, 주한미군 철수 반대 등에 반공을 근거로 내세우며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던 박정희 정권은 이러한 개신교의 반공 관련 활동을 적극적인 체제 유지의 도구로 활용했다. 그들의 역사가 이러하니 현 정부가 시도하는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서로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제이지 않겠는가.

동성애 이슈를 자꾸만 노무현, 박원순, 통진당, 좌파와 연결시키려는 이 분들의 속내

한편, 최근 몇 년 사이에는 ‘거리의 목사님’들도 많이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광화문 사거리에 가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광장 맞은편에 “나라를 망치는 세월호 악용세력들 물러가라!”는 현수막을 들고 서 있는 ‘사도교회/나라사랑 기독연대’ 이석인(두요한) 목사를 볼 수 있는데 그는 지난 해 서북청년단 재건총회에서 축사를 하기도 했다. 시청 앞에는 ‘동성애·동성혼 반대한다’는 예수재단 임요한 목사가 있다. 지난 해 7월 국회를 찾아간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을 경찰이 가로막아 유가족들이 울분을 터뜨리고 있던 와중에 그는 국회 앞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중단하라’는 피켓을 들고 일인시위를 하고 있었다. 몇 가지 일련의 정황들로 미루어 짐작할 때 이 ‘거리의 목사님’들과 보수 대형교회 목사님들은 그다지 서로 막역한 관계는 아닌 것 같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동성애지지’ 혹은 ‘세월호 진상규명’ 같은 이슈들을 ‘노무현’, ‘박원순’, ‘통진당’과 연관시키고 이들을 모두 하나로 묶어 ‘좌파’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우석 이사와 같이 “이들 좌파들이 동성애를 좌익의 최종병기로 내세워 교회를 파괴하고, 가정을 무너뜨리고, 국가를 전복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이러한 주장은 동성애자들 입장에서 참 기가 막힌 것인데 왜냐하면 그 분들이 동성애자들과 한 통속으로 묶으려 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박원순 서울시장이 알고 보면 성소수자 인권의 진전을 위해 뭔가 확실히 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가만히 보면 그냥 이 분들이야말로, ‘동성애 반대’를 어떻게든 엮어 사실은 ‘노무현 반대’, ‘박원순 반대’를 외치고 싶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 2015년 6월 9일 오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탈동성애 인권유린 박원순 서울시장 및 정치인 규탄 기자회견'에서 김규호 목사(앞줄 왼쪽)가 사회를 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개인적으로 이런 짐작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노무현 정부 때 추진했던 ‘4대 개혁입법’에서 특히 ‘사립학교법 개정’을 건드린 이유로 목사님들이 대동단결했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을 위시로 한 보수 개신교계는 본격적으로 광장에서 연일 대규모 집회를 열었고 목사님들은 삭발 투쟁까지 감행했다. 사립학교법 개정은 해방 이후 수백 개의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수많은 학교법인을 쥐고 있었던 보수 개신교의 기반을 흔드는, 최대의 적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뉴라이트전국연합을 비롯한 각종 보수 네트워크에 김진홍 목사 등 보수 개신교 인사들이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민주당 계열에 대한 적극적인 공세를 한 축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등 뉴라이트, 보수 정권을 세우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뿐만 아니라, 인권 영역의 제도화 정책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좌파적 음모’를 가지고 시작된 것으로 간주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반대해 왔다. 현재까지 보수 개신교계에서 선동하고 있는 대부분의 논리와 교회 위기 대응, 사회적 소수자들을 종북이나 사회 혼란을 조장하는 집단으로 낙인찍고 혐오를 조장하는 주장들은 대부분 이 당시에 형성된 보수 개신교의 활동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그 분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그래. 이 모든 역사를 보니 그 동안 억울한 일이 많으셨구나, 하고 이해해 보자. 그런데 이 분들과 조우석 이사가 진짜 모르는 게 있다. 사실은 당신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동성애자들이 아쉽게도 어디 구석탱이에 모여 있는 변태들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학생, 교수, 교사, 의사, 군인, 경찰, 기업인, 직장인 등 여러 가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인지라, 이들 중에는 박근혜 대통령 지지자, 새누리당 지지자도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아쉽게도 좌파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 좌파인 필자로서는 이러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참으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으나, 뭐 앞으로 또 이런 무식한 글을 쓰지 않으려면 그렇다는 것쯤은 알아두시는 게 좋겠다. 그리고 ‘좌파’ 역시 그 범주를 규정하기 나름이라 그렇게 여기저기 갖다 붙이면 그만인 게 아니라는 것도 고려해 주셨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차별금지법에 대해서 한 마디 하자. 대한민국 정부는 유엔인권이사회로부터이미 몇 년간 수차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권고 받은 바 있다. 물론 ‘성적지향에 기반한 차별금지’ 조항을 포함해서 말이다. 모든 이들의 보편적 인권과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인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면서 역사 왜곡으로 점철될 국정역사교과서를 지지하는 분들이야말로, 나라꼴을 어떻게 만드시려는 작정인지 참으로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게다가 자꾸 에이즈 감염인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발언들을 하시는데 이참에 에이즈의 원인은 동성애가 아니라 HIV 바이러스이며, 에이즈를 마치 ‘동성애병’인 것처럼 인식되게 만들거나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낙인과 혐오를 강화할수록 에이즈 예방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좀 알아두시라.

아, 참고로 이 글에서 지칭한 ‘목사님들’이란 모든 목사님을 통칭하고자 한 것은 아니라고 밝혀둔다. 나는 사실 인권과 평등, 민주주의, 그리고 정의를 위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가장 깊이 알고 실천하시는 목사님들을 많이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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