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효종)의 방송 공정성‧객관성 심의 제재 결과를 확대 반영하는 방송평가 규칙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심의위 제재 결과로 반영하는 ‘감점’을 최대 2배로 높이겠다는 게 개정안의 핵심내용이다. 방통위 사무처는 방송평가위원회(위원장 김재홍 방통위 부위원장) 내 다수의 의견을 무시하고, 스스로 발주한 연구과제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이 같은 내용의 규칙 개정안을 설계했다. 그리고 방통위는 23일 전체회의에서 이를 ‘보고안건’으로 다루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방통위 의지대로 방송평가 규칙이 개정되면 심의위를 통한 표적심의가 이루어지고 정부가 비판언론을 옥죌 수 있게 된다. 특히 방통위는 내부 방송평가위원회 소속 위원 다수(7명 중 5명)이 규칙 개정에 반대하고, 자신이 발주한 방송공정성 평가지표 개발을 위한 연구과제 결과가 나오기 전 규칙 개정안을 만들었다. 야당 추천인 김재홍 고삼석 상임위원은 반대 의사가 분명하고, SBS 출신인 허원제 상임위원 또한 규칙 개정안에 찬성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까닭에 개정안이 방통위를 통과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 등 적용대상이 되는 언론은 지난달 말 사업자 의견수렴 자리에서도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종합편성채널의 최대주주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또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조선일보는 22일자 5면에 <‘관치 방송’으로 역주행하는 방통위>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최성준 위원장에게 날을 세웠다. 조선일보는 지상파에만 공정성 잣대를 적용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1면에 <“방통위, 방송 길들이기-규제완화 역행” 논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정치권과 방송업계에서는 방통위가 애매한 기준을 앞세워 권력의 입맛에 맞게 방송을 길들이려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 조선일보 2015년 10월22일자 5면(위), 동아일보 1면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대목은 보수언론의 현실인식이다. 조선일보는 “심지어 최성준 방통위원장이 추천한 (방송평가위원회) 평가위원인 김현주 광운대 교수조차 ‘방송사를 옥죄는 도구를 정부가 갖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며 ‘정권이 바뀌면 (이 제도는)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정부의 공정성 심의 결과가 방송사 재승인‧재허가에 미치는 영향을 확대한다면 정권이 바뀌었을 경우, 과거 정부에 우호적인 방송이 정권의 입맛대로 심의와 제재 대상이 되고 재승인과 재허가 심사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방통위는 ‘카드’를 꺼내들고 동시에 방송사를 압박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전방위적으로 인터넷신문과 포털을 압박하고 이념전쟁 벌이고 있는 맥락에서 볼 때 방송평가 규칙 개정은 ‘여론 장악’이라는 큰 그림 중 일부분이라는 혐의가 짙어진다. 최성준 위원장과 이기주 상임위원이 방송평가 규칙 개정을 강행하는 배경에는 ‘청와대 지시’가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방통위에서는 “특정 상임위원이 방송평가위원들을 따로 접촉해 규칙 개정안에 찬성해줄 것을 종용했다”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통과 가능성이 낮기는 하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부산 출마설이 끊이지 않은 허원제 상임위원을 설득하면 방송평가 규칙 개정안이 방통위를 통과해 내년부터 새로운 규칙을 적용할 수 있다. 정부여당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더욱 우호적인 방송을 옆에 끼고 총선과 대선을 치를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인터넷신문과 포털을 향해 ‘고강도’ 압박을 진행 중이라면, 이번 방통위의 방송평가 규칙 개정은 ‘저강도’이기는 하지만 가장 효율적인 여론 장악 수단이다. 방송이 ‘언론자유’ 구호를 버릴 가능성도 있다. 업계에서는 방통위가 규제강화 대신 방송사에 줄 ‘떡고물’이 무엇인지 주목하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