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계와 시민사회는 물론 학생들마저 거리로 나오는 등 반대 여론이 높은데도 정부는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23개 매체에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홍보하는 의견광고를 제의했고, 경향신문을 제외한 22개 매체가 이 광고를 게재했다. 그동안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비판적인 논조로 기사와 사설을 써 왔던 한겨레가 정부 광고를 받은 것에 대해 내부에서도 적절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겨레지부(지부장 최성진, 이하 한겨레지부)는 19일 성명을 내어 “한겨레지부는 정부의 의견광고를 받아들인 행태는 적절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면서 “이번 국정교과서 광고 게재에 대한 정석구 편집인과 김이택 편집국장 등의 책임 있는 해명과 입장 표명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 10월 19일 한겨레 1면

한겨레지부는 “지난 15일 교육부가 게재를 의뢰해온 의견광고는 민주, 민족, 통일의 3대 창간정신에서 출발한 한겨레라면 받아들이지 않는 게 마땅했다”며 “정부 광고는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한 교과서를 만들겠다’며 짐짓 지극히 타당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의도는 불순하기 짝이 없다는 사실을 한겨레 구성원이라면 모를 리 없다. 교과서 국정화의 폐해를 앞장서서 밝히고 그 시도를 비판해온 언론이 바로 한겨레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겨레지부는 “‘기사는 기사, 광고는 광고’라는 목소리가 일정한 권위를 갖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다양한 의견과 입장이 전개되며, 한겨레 독자도 정부의 공식 입장을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야말로 지극히 타당하다”면서도 “문제는 ‘기사와 광고는 별개’라는 형식논리만을 이번 정부 광고의 취급에 대한 한겨레의 판단 잣대로 삼기 어렵다는 점”이라고 전했다.

한겨레지부는 한겨레가 국정교과서에 대해 “‘역사전쟁’이니 ‘이념대결’이니 하는 말로 포장돼 있지만 사실과 논리에 근거한 역사논쟁과 거리가 멀다. 힘으로써 민주국가의 상식을 파괴하고, 후진국을 자처함으로써 국격을 망가뜨리는 폭거일 뿐”, “역사교과서 국정화야말로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정면으로 어긋난다”고 보도한 것을 언급하며 “국정교과서 추진 방침이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어긋나는 폭거라면, 이를 정당화하는 취지의 정부 광고는 더 이상 민주주의 사회에서 오갈 수 있는 다양한 ‘의견’이 아닌, 헌법적 가치에 대한 억압과 폭력”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정부의 의견광고가 실린 19일 1면에도 <‘아베정권에 교과서 국정화 힘 실어줄라’ 일본 시민사회, 한국 국정화 반대 성명>이라는 기사로 교과서 국정화 움직임을 비판하는 기사를 보도했고, 같은 날 <‘국사학자 90%가 좌파’라는 김무성 대표의 망언>이라는 사설에서는 “좋은 정책으로 역사의 새 장을 열 생각보다 입맛대로 역사책을 뜯어고쳐 어두운 과거를 감추고 실정을 덮겠다는 것은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이라며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는 아베 총리에게 칭찬이라도 듣고 싶은 것인가”라고 일갈한 바 있다.

한겨레지부는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의 이런 시도는 과거 유신독재를 미화하는 교과서 제작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과거 수많은 민중과 노동자의 인권을 억압하고 민주주의를 짓밟은 유신독재를 찬양하는 국정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의견’이라면, 이는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라며 “그럼에도 편집인 등은 ‘좌편향이나 주체사상을 언급하지 않아 문제될 것이 없다’며 문제의 광고 게재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한겨레지부는 “27년 전 ‘민주주의 신문’을 자처한 한겨레의 창간에 힘을 보태준 많은 시민이 기대한 우리의 모습은 이렇지 않았을 것”이라며 “정영무 대표이사, 정석구 편집인과 김이택 편집국장한테 묻는다. 정말 오늘치 신문에 실린 교육부의 국정 교과서 광고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보는가. ‘진보의 맏형’으로 불리는 한겨레가 이번 국정 교과서 광고 게재로 얻은 것은 대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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