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4시4분부터 6분 동안 통화했죠. 화들짝 놀랐습니다. 저는 마지막 질문으로 “이사님의 그런 소신과 철학을 EBS 이사회에서 발언할 것이냐”고 물었고, 당신은 “이사회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 (언론 인터뷰에서) 밝히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나중에 정식으로 인터뷰하자”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메일 주소를 알려 달라”고 하니 “문자로 짧게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가능하면 ‘품격’ 있게 질문을 하는 게 예의에 맞다고 생각해 ‘지면’을 통해 질문을 띄웁니다. / 기자 주


독자들은 잘 모를 수 있으니 일단 이사님을 소개합니다. 조형곤. 당신은 2010년부터 ‘21C미래교육연합’이라는 단체의 대표를 맡아 왔고, 올해부터는 ‘시장경제 창달 인터넷 정론지’ 미디어펜에서 논설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조 이사님이 EBS 이사에 지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과거 발언을 찾아봤습니다. 당신이 미디어펜에 직접 쓴 글을 읽어보니, EBS에 대해 강력한 문제제기를 했더군요. 지난 6월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EBS, 누구를 위한 교육방송인가>라는 토론회에서 당신은 “<지식채널-e>와 <다큐프라임>의 일부 내용들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다큐프라임의 자본주의 관련 방송은 그 시점이 2012년 대통령선거 기간이어서 더욱 문제가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신은 교육서비스를 민간에 개방해 창조경제를 실현할 요량으로 수학능력시험-EBS 방송 연계 정책을 폐지하자고도 주장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EBS는 당장 문을 닫을지 모른다”고 했지만 “정부가 보장하는 독점사업으로 땅 짚고 헤엄치면서 고액 연봉을 받는 EBS의 구조도 문제지만 교육의 장을 이념의 장으로 변질, 학생들의 판단력을 흐리고 왜곡시키는 방송내용들은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여기에 노동조합도 엮어넣었더군요. “더불어 EBS 내에 있는 강성 노조는 정부가 임명한 사장이나 이사진들에 대해 불신임 투표로 업무를 방해하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EBS의 편파적 방송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이쯤 되면 노동조합(전국언론노동조합 EBS지부, 지부장 홍정배)이 당신에 대한 이사 선임을 반대하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EBS지부는 24일 <우리는 당신을 EBS이사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내고 당신에 대한 공개질의서를 발송했습니다. 노동조합은 당신의 발언에 대해 “공영방송 EBS의 ‘독립성’과 ‘공공성’에 대한 기본 이해도 없고, EBS에 관해 눈꼽만치의 지식도 없는 편향적인 언급들”이자 “이사회 존재 이유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위험한 발언들”이라고 비난하면서 퇴진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25일 오전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오후 4시에나 회의가 끝난다. 그때 통화하자”고 답하기에 다시 전화했습니다. 당신은 전화 통화의 초입에 ‘기자의 문제의식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어떤 프로그램이든 제작진이 정치와 사회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 그래서 모든 프로그램은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EBS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이사회의 이사가 특정프로그램의 정치적 편향성을 문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 (사진=미디어스)

당신의 생각은 정반대더군요. “방송을 통해 정치를 이야기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EBS는 KBS나 MBC가 아니다. EBS는 교육적 내용으로 방송을 해야 하는 교육방송이다. 정치의 편에 서고, 특정 편에 서는 순간 교육방송의 위상을 잃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EBS의 대표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는 <다큐프라임>을 문제 삼았습니다. 당신은 “<다큐프라임>이 전부 편향적이라는 게 아니라 ‘평등’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 등 일부가 그렇다”고 친절하게 설명했죠.

아마 당신은 KBS 이사회 이인호 이사장이 특정 프로그램과 보도에 문제제기한 것이 온당하다고 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사회 이사가 특정 프로그램이 편향됐다고 발언하는 것은 분명한 ‘방송·편성 개입’입니다. 해서는 안 되는 말이지요. 당신의 발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방송사를 이념전쟁터를 만들 것이 아니라면 그런 말을 할 이유가 하등 없습니다. EBS지부는 그래서 당신에게 발언의 의중을 재차 묻었고, 저는 “그런 소신과 철학을 EBS 이사회에서 발언할 것이냐”고 물었던 겁니다.

EBS에는 특유의 PD저널리즘이 있습니다. 긴 호흡의 다큐멘터리로 사회에 메시지를 던집니다. 통화하면서 저는 EBS에 다른 불만이 있다고 말씀드렸죠. 저는 PD와 기자의 시각은 지금보다 더 낮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EBS의 저널리즘은 조금씩 무뎌지고 있습니다. 이미 알고 있을 터이지요, 그 동안 <지식채널e>와 <다큐프라임>이 얼마나 흔들렸는지 말이죠. ‘EBS는 정치와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소신을 갖고 있는 당신이 보기에는 제가 바로 편향된 언론인이겠죠.

저는 EBS를 비판적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매체비평지 기자입니다. 사회에 대해 말하지 않고, 하루종일 주구장창 유아어린이프로그램과 수능방송만 틀어댄다면 EBS는 국가인증 어린이집이나 학원일 겁니다. 당신은 EBS를 국정교과서 홍보대행사 정도로 생각하는 겁니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묻고 싶었지만 당신은 초장부터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안 된다, 방통위에 물어보라”고 했죠. 방통위는 ‘법적 결격사유가 없다’는 말 한마디 뿐입니다. 그런데 통화해보니 노조가 당신을 반대하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당신의 그런 소신과 철학, 이념과 정치가 EBS를 망칩니다. 세상은 평등하지 않고, 다큐는 계속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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