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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진짜 사나이’, 심의 자체가 성희롱 수준[기자수첩] 피해자가 남자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라는 겁니까?
권순택 기자 | 승인 2015.09.25 12:28

“엉덩이가 화가 나 있습니다”. MBC <일밤> ‘진짜사나이’ 여군특집에서 터미네이터 조교로 불렸던 곽 하사(소대장)의 특정 부위는 이렇게 TV를 통해 그대로 노출됐다. 여기에 더해 <일밤> 제작진은 해당 부위를 CG작업과 자막을 통해 강조했다. 이런 방송이 여과없이 나가자 시청자들은 화가났다. 게시판 등 인터넷을 통해 “성희롱일 수 있는 장면이 여과 없이 노출됐다”며 “방송보기 불편했다”고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곽 하사의 가족들 역시 “보는 내내 언짢았다”며 관련 영상 삭제를 요청했다.

하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산하 방송심의소위(위원장 김성묵)는 23일 회의에서 MBC <일밤> ‘진짜사나이’와 관련한 심의 결과, 행정지도 ‘권고’(경징계)를 의결했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7조(품위유지)를 위반했지만 방송사 재허가시 감점을 줄 정도로 심하지는 않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방통심의위의 심의의 결정에는 ‘제재수위’와 ‘적용조항’, ‘심의태도’ 모두가 낙제점을 면할 수 없다.

   
▲ MBC '일밤-진짜사나이'
“나라면 기분 좋았을 것”이라며 농담식 심의

당일 심의는 시종일관 농담식으로 진행됐다. 심의위원들의 발언과 태도에는 눈과 귀를 의심해야 할 정도로 ‘인권의식’이 실종돼있었다. 정부여당 추천 함귀용 심의위원은 “(민원인은)성희롱적 표현을 썼다는 것”이라면서 “여자를 저런 식으로 (표현)했다면 성희롱이지만, 이것은 당사자가 모멸감을 느껴야 성희롱이 된다”고 발언했다. 함귀용 심의위원은 이어, “하사관(소대장)은 기분이 좋은 것 아니냐. 나에게 그랬다면 기분이 좋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난 재밌게 봤는데 뭘”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야당 추천 박신서 심의위원 또한 “뒷모습이 풀샷으로 나와서 그렇지 미디엄 정도의 사이즈다. 헐렁한 군복을 입어서 제대로 안 보이는데(몸매가 제대로 드러나지도 않는데), 여성 출연자들 말 때문에 (논란이)더 커진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해당 안건을 보고한 여 사무관에 “O팀장이 보기에는 어떻던가요?”라고 물었다. 당황한 O팀장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노코멘트하겠다”며 빠져나갔다. 심의위원들은 이날 MBC <일밤> ‘진짜사나이’에 대한 제재수위와 관련해 “법정제재를 가야 하느냐”, “권고하시죠”라며 안이한 인식을 계속 드러냈다. 행정지도 중 가장 낮은 수위의 ‘의견제시’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합의에 의해 ‘권고’ 제재가 결정됐지만 이번 사안을 가볍게 봤다는 사실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MBC <일밤> ‘진짜사나이’ 방송을 보고 불쾌감을 호소했던 소대장의 가족들이 방송심의위 방청을 했다면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나라면 기분 좋았을 것”, “풀샷으로 나와서 그렇지 미디엄 사이즈”, “법정제재를 가야 하냐”는 등의 농담이 오가는 현장을 그대로 목격한다면 말이다. 해당 방송을 보는 것보다 더욱 불쾌했을 것이다. 부적절한 방송에 대해 제재를 하고 교정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방통심의위에서 나온 발언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오갔기 때문이다. 방청석에서 듣고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일 정도였다. 방통심의위 내의 분명한 권력구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남성 심의위원들이 여성인 직원에게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것 역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심의 안건은 방송내용 중 ‘성희롱’ 표현에 대한 것음에도 남성 심의위원들은 “나라면 기분 좋았을 것”이라는 둥의 성희롱성 발언들을 이어가고 있었다. 직급이 낮은 여 직원에 “넌 어떻게 봤니?”라는 질문을 한 것은 ‘여성의 눈으로 해당 프로그램을 어떻게 봤느냐’는 글자 그대로의 물음으로만 비춰질 수 없다.

‘성희롱’인데 왜 제27조(품위유지)만 적용?

문제는 또 있다. 방통심의위는 MBC <일밤> ‘진짜사나이’와 관련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7조(품위유지) 1항 제5호 “방송은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시청자의 윤리적 감정이나 정서를 해치는 표현(불쾌감·혐오감 등 유발을 해선 안 된다”는 부분만 적용했다. 해당 장면을 성희롱이라고 판단하지 않은 걸로 해석할 수 있다. 성희롱이라고 판단했다면 제20조(명예훼손 금지) 제1항 “방송은 타인의 명예를 훼손해선 안된다”와 제30조(양성평등) 2항 “방송은 특정 성(性)을 희화적으로 묘사해선 안 된다”, 제35조(성표현) 제2항 “방송은 성과 관련된 내용을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묘사하여서는 안 된다” 를 근거로 해서 제재를 하는 게 옳았다.

MBC <일밤> ‘진짜사나이’의 곽 하사는 군인으로서 해당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러므로 방송에서도 곽 하사를 군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비췄어야 했다. 하지만 방송은 결과적으로 특정한 신체를 부각시키는 데만 골몰했다. 그것은 당사자 곽 하사는 물론 군인이라는 직업에 대한 명예훼손으로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날 심의위원들은 곽 하사를 ‘군인’이 아닌 ‘남성’으로만 보고 심의를 진행했다. ‘남자들은 이런 거 다 좋아하지 않나’라는 인식 속에서 심의를 하다 보니 군인이라는 직업에 대한 명예훼손은 애초에 논의 조차될 수 없었던 것이다.

심의위원들은 ‘성희롱’ 자체에 대한 인식 부족 역시 드러냈다. 이날 함귀용 심의위원은 “당사자가 모멸감을 느껴야 성희롱이 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성폭력에 있어서 ‘피해자 중심주의’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함귀용 심의위원이 간과한 부분이 있다. 바로 곽 하사의 직업적 특성이다. 상명하복이 일상화된 군대라는 조직에서 곽 하사 본인이 당시 ‘모멸감을 느꼈다’고 하더라도 이를 쉽게 표현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해당 방송을 보고 곽 하사의 약혼녀와 가족들 또한 불쾌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방통심의위는 해당 방송 장면을 ‘성희롱’으로 인식하고 적용조항과 제재수위를 정하는 것이 옳았다. 다수의 시청자들 또한 ‘성희롱’이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던 상황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방통심의위 내 ‘인권감수성’이란

방통심의위는 그동안 스스로 인권감수성이 떨어지는 심의 결과를 내놓곤 했다. 가장 논란이 컸던 것으로 △JTBC <선암여고탐정단> ‘동성 여고생 키스’ 장면에 대한 심의를 꼽을 수 있다. 방통심의위는 동성애를 “정신적 장애”로 표현할 정도로 낮은 인권의식을 보여줬었다. 결국, 방통심의위는 JTBC에 재허가시 감점요인이 되는 법정제재 ‘경고’(중징계)를 결정했다. 반면, JTBC <썰전>에서 강용석 씨가 성매매특별법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다문화가정에 대해 폄훼했을 때에는 ‘권고’라는 솜방망이 결정을 내려 논란을 자초했다. 당시 강용석 씨의 발언은 국제결혼을 남성들의 성욕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만 봤다는 비판을 받았다.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을 잠재적 사회적 문제아로 낙인찍는 위험천만한 발언들도 역시 문제였다. 방통심의위는 MBC <마녀의 전설>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던 ‘데이트강간’을 문제의식 없이 다뤘음에도 만장일치로 ‘문제없음’을 의결하기도 했다. 이 같은 심의결과가 나올 때마다 방통심의위의 ‘인권감수성’은 문제가 됐다. 그럼에도 똑같은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심의과정에서 함귀용 심의위원은 “여자를 저런 식으로 희롱했다면”이라고 발언했다. 만일, 곽 하사의 성별이 여성이었다면 더 큰 문제였을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으로 보인다. 그 대상이 여성이었다면 MBC도 표현에 있어 조금은 더 신중을 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였다면’, ‘남자이기 때문에’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부적절하다. 여성민우회 이윤소 사무국장은 “성희롱에 여성과 남성의 차이는 없다”며 “여성이라고 해서 그것이 성희롱이 되고 남성이기 때문에 성희롱으로 볼 수 없다는 논리는 그 자체로 성차별”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방통심의위 박효종 위원장은 24일 전체회의에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위원회의 권위’를 강조했다. 하지만 권위라는 것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박효종 위원장이 언급한 중요한 역할을 잘 수행했을 때에 따라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방통심의위 관련 법령에는 “방송 내용의 공공성 및 공정성을 보장하고 정보통신에서의 건전한 문화를 창달하며 정보통신의 올바른 이용환경 조성을 위해 존재한다”고 규정돼 있다. 과연, 지금 방통심의위가 스스로 주어진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할 때다. 건전한 문화 창달은커녕 일반 시청자들의 인권의식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방송내용을 심의한다면 그 조직이야 말로 사회적 ‘해악’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권순택 기자  nanan@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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