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친일’이라는 말은 ‘빨갱이’, ‘공산주의자’라는 호명에 맞먹는 금기어가 돼가고 있다. 우리는 광복 70주년을 기념하지만 여전히 ‘친일청산’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못했다. 얼마 전 광복절을 맞아 독립언론 뉴스타파가 내놓은 ‘해방 70년 특별기획’은 ‘친일청산’을 요구하는 게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친일 인사들의 부는 후손에게 되물림되고 있었지만, 그들은 이에 대해 어떤 반성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바로잡기 위한 정부의 역할이라는 것은 허망한 수준이다. 독립 유공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서훈도 친일인사들에게 전달됐다. 이 사실이 밝혀진 이후 24명의 서훈 자격이 박탈됐지만, 이 가운데 절반은 훈장은 반납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도 정부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친일인사들이 국립현충원에 안정돼있다는 사실 또한 여러 차례 논란이 됐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해방직후나 지금이나 정부의 ‘친일청산’은 요원하기만 하다.

최근 의열단의 활동을 모티브로 한 영화 <암살>은 1200만 넘는 관객을 불러 모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픽션과 상업적 성과의 영역일 뿐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여전히 논픽션, 공적 영역에서 ‘친일’문제를 꺼내기 어렵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부친 김용주 전 전남 방직 회장이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증거 자료를 제시했으나, 이를 다룬 보도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게 대표적이다.

SBS·JTBC만 다룬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부친의 친일행각…내용은?

SBS <8뉴스>는 16일 <“김무성 부친, 일제 군용기 헌납 독려”> 리포트를 통해 “역사연구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인 김용주 전 전남 방직 회장이 명백한 친일 반민족 행위자라며 당시 일간지 기사와 광고 등을 증거 자료로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SBS는 “연구소는 김 전 회장이 1937년 경상북도 도의원으로 당선되는 등 지역의 고위직을 지내면서 군용기 헌납을 선전하고 일제의 징병제를 찬양하는 등 여러 친일 활동을 했다고 지적했다”며 “이에 대해 김 대표 측은 김 전 회장의 행적은 친일과 애국이 모두 있다며, 적절한 시기에 국민이 판단할 수 있게 입장을 밝히겠다고 해명했다”고 전했다. 이를 전하는 시간은 든 시간은 38초였다.

▲ 9월 16일 SBS '8뉴스'
SBS는 해당 리포트 제목에서부터 ‘따옴표’를 넣어 스스로를 전달자의 위치로 한정했다. 내용 또한 ‘기계적 중립’에 충실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부친이 친일 행위자라며 관련 자료를 제시했다’는 팩트가 먼저 등장했다. 그러고는 ‘김용주 전 회장의 행적은 친일과 애국이 모두 있다’는 김무성 대표 측의 반론이 곧바로 이어졌다. SBS 보도는 김무성 대표의 부친의 친일 행적에 대해 새롭게 드러난 사실은 ‘군용기 헌납 선전 및 일제의 징병제 찬양’ 등으로만 보도됐다. 구체적인 내용은 파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나은 편이다. 당일 KBS와 MBC 메인뉴스에서는 김무성 대표 부친의 친일행각에 대한 어떠한 리포트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같은 날 JTBC <뉴스룸>은 <김무성 대표 부친 ‘친일 논란’ 증폭>이라는 제목으로 관련 사건을 보도했다. JTBC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인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의 친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며 “친일 문제를 비롯한 우리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민족문제연구소가 김 대표의 부친이 1940년대 일제에 군용기 헌납 운동을 주도하는 등 친일행위를 했다며 관련 사료를 제시했다”고 전했다. 이어, “결전은 하늘이다! 보내자 비행기를!”이라면서 “1944년 7월 국내에서 발간된 일본 아사히 신문의 광고로 군용기 헌납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에 김용주 전 회장의 이름이 적혀 있다”고 설명했다. 또, “징병제 참여를 독려하는 광고에도 김 전 회장의 이름이 나와있다”며 “민족문제연구소는 김무성 대표의 부친 김용주 씨가 명백한 친일행위자라고 주장했다”고 덧붙였다. SBS 보도보다는 조금 더 상세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뉴스타파, 역사적 배경부터 설명…“1937년부터 전쟁범죄행위 한 것”

▲ 뉴스타파 17일 보도 캡처
또 같은 날 뉴스타파는 <김무성 부 ‘군용기 헌납’, 징병 독려 기명 ‘광고’ 확인>이라며 보다 명확한 제목으로 관련 소식을 전했다. 최승호 앵커(MBC 해직PD)는 “김용주 전 회장은 친일파와 애국자까지 서로 다른 평가가 엇갈려온 인물”이라며 “물론, 애국자라는 것은 아들 김무성 대표의 주장이다. 그는 아머지가 친일파라는 지적들은 조작된 근거에 의한 것이라고 평가절하해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민족문제연구소는 김용주 씨의 친일행각을 담은 2건의 자료를 발굴해 공개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통해 김용주 씨가 단순 친일파가 아니라 일제 침략 전쟁에 대한 적극 부역자라고 지적했다”고 덧붙였다. SBS와 JTBC에서 한 두 문장으로 요약됐던 김용주 전 회장의 친일행각은 뉴스타파에서는 그대로 드러났다.

“시국은 확실히 승리냐 죽음이냐의 결전의 한 가운데로 돌입하고, 더욱이 적은 공군으로써 승패를 결정지으려고 한다. 적의 맹렬한 공습하에서 묵묵히 (조국)수호에 애쓰는 우리 아버지, 우리 아들, 우리 형, 우리 동생,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과 그리고 ‘좀 더 비행기를’이라고 외치는 필사의 요청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_1944년 7월 아사히 신문 광고 ‘결정은 하늘이다! 보내자 비행기를!’

“난폭하기 짝이 없는 숙적 미영을 지금이야말로 물리쳐 멸망시키자. 징병제 실시에 대한 반도 동포의 간절한 요망을 드디어 구현했다. 우리 반도의 정예여. 천왕의 존엄한 위세 아래, 우리 반도의 인재가 빈틈없는 전우애로 미영 격멸의 전선에 서는 날이 온 것이다. 대동아의 천지에 깊숙이 진군하여 황국의 흥폐를 양어깨에 짊어진 황군이 숙적 미영 격멸에 혁혁한 전과를 거듭하는 가을. 2천5백만 반도 동포, 특히 젊은 반도청년에 거는 기대가 실로 크다. 일억의 환호와 축복 속에 있는 반도의 젊은이들이여. 궐연히 일어나라! 결전이 자네들을 부른다”_1943년 9월 아사히 신문 광고 ‘대망의 징병제 실시 지금이야말로 정벌하라, 반도의 청년들이여’

뉴스타파는 “일제의 침략전쟁이 극에 달하던 1944년에는 전투기가 부족하자 가미가제라는 자살특공대까지 만들었었다”며 “전투기가 부족하자 일본은 비행기 헌납운동을 벌였고 아사히 신문에 광고가 게재됐다”고 역사적인 배경부터 설명했다. 이어, “이 광고를 낸 명단이 적혀 있는데 일본인 이름과 함께 김전용주(가네다류슈) 이름이 등장한다”며 “김전용주는 김용주 전 회장이 창씨개명한 이름”이라고 덧붙였다.

뉴스타파는 또한 “1943년 신문광고에는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대동아 전쟁에 총알받이로 나설 것을 독려한다”며 “이 광고를 게재한 사람이 나오는데, 포항 지역에 김전용주(김용주)가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이준식 연구위원은 “일본을 위해, 일본군을 위해, 일본천왕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라고 선동하는 행위야 말로 가장 죄질이 나쁜 친일 행위”라고 규정했다. 특히, 기업명이 아닌 본인 이름을 광고에 올린 것은 전쟁에 협력하고 있었다는 것을 과시하는 행위로 ‘적극적인 부역’이라는 얘기다.

뉴스타파는 김용주 전 회장에 대해 “1920년부터 30년대 중반까지 야학과 초등학교를 설립하고 신간회 등 민족적 활동을 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40년대 이후부터 해방까지는 확연히 ‘뚜렷하고 일관되게 친일행적’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1943년 서울 부민관에서 ‘징병제 실시를 찬양하고 적국인 미국과 영국을 격멸하자는 조선인 공직자 궐기대회’인 전선공직자대회가 열렸다. 당시 조선인 참가자는 단 2명이는데 그 중 한 명이 김용주 전 회장이었다. 이 자리에서 김용주 전 회장은 “가장 급한 일은 반도 민중에게 고루고루 일본정신문화의 진수를 확실히 통하게 하고, 진정한 정신적 내선일체화를 꾀하여 이로써 충실한 황국신민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내선일체화를 주장했다. 뉴스타파는 “1937년 이후, 김용주 전 회장은 적극적인 전쟁범죄행위를 했다”고 강조했다.

김무성 대표가 부친 친일에 입을 열어야 하는 까닭…언론이 보도해야하는 이유

하지만 김무성 대표와 김용주 전 회장은 이 같은 ‘친일행각’에 대해 전면부인하고 있다. 김용주 전 회장은 <풍설시대 80년>이라는 회고록을 통해 “나는 1943년부터는 일제 치하의 모든 면에서 스스로 후퇴하여 8·15해방에 이르기까지 칩거 생활로 들어간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친일기간’은 ‘칩거생활’로 둔갑됐다. 최근 광복70주년을 맞아 지난달 15일 김무성 대표 부친 김용주 전 회장의 평전 <강을 건너는 산>이 출간됐지만 친일 의혹은 한 줄도 다루지 않고 있다는 것이 뉴스타파의 지적이다.

▲ 뉴스타파에서 민족문제연구소 이준식 연구위원의 발언 캡처
뉴스타파에서 민족문제연구소 이준식 연구위원은 “고위공직자라고 해서 친일청산에 대한 입장을 밝힐 필요는 없다”며 “다만, 예외가 있다. 후손이 선대가 저지른 친일반민족 행위를 미화하려고 한다거나 사람들이 가지는 역사인식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려고 한 때에는 명확하게 문제제기를 하고, 본인의 답을 들을 권리가 국민들에게는 있다”고 답했다. 실제 김무성 대표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부친의 애국심을 찬양하는 동영상을 올려놓고 있으며 “부친은 애국자적 삶을 살았고, 친일인명사전에도 이름이 없으므로 친일파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한다. 또, “한국의 진보좌파 세력들은 건국 이후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굴욕의 역사라고 깎아 내리고 있습니다”며 좌파와의 역사전쟁을 선포하며 ‘친일’논란 교학사 교과서 옹호하고 국정교과서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김무성 대표가 스스로 부친의 친일행각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한다는 얘기다.

지난 18대 대선 TV토론에서 ‘다카키 마사오’라는 이름이 등장하자 많은 시민들은 당혹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일’인사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의 일본식 이름이 방송을 통해 재차 드러난 것에 대한 놀람이다. 이는 그만큼 ‘친일’이 ‘공산주의자’에 비견될 정도로 금기시돼 왔다는 증거다. 특히, ‘부의 되물림’에 의해 친일인사의 후손이 대통령(당시 후보)과 여당 대표 등 권력을 쥐고 있는 경우 이런 문제는 철저히 감춰진다. 그러나 고위공직자에 대한 검증차원에서 이 문제는 반드시 논의돼야 한다. 김무성 대표는 현재 명실상부 유력한 여권 대선후보이다. 이에 대한 언론의 검증은 어느 때보다 날카롭고 세밀해야한다. 그런 검증을 거친 지도자야말로 공신력을 얻어 그에게 주어진 역할과 임무를 충실히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언론은 그 ‘검증’의 역할을 스스로 내려놓은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이번 민족문제연구소의 김무성 대표 부친의 ‘친일행각’ 증거자료를 공개한 보도를 외면했듯 말이다. 그동안 제대로 된 검증 없이 고위공직에 올랐다가 구설수에 오르고 때로는 낙마하기도 했던 인물들에 대한 언론의 책임 또한 가볍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로 인한 국민들의 받을 정치에 대한 혐오·피로도 그리고 사회적 비용 또한 적다고 할 수 없다. 언제까지 그런 언론보도 행태를 그대로 보고만 있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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