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한 시간 늦게 시작된 오늘의 프로야구, SK-삼성전 ​중계방송은 말 그대로 누더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오늘 대구구장 경기를 중계하는 채널은 SKY스포츠와 SBS스포츠, 현장에서 직접 제작하는 팀은 SKY스포츠였고, SBS는 그림을 받아서 중계하는 상황인데요. 담당PD들의 곤란함과 바쁨은 경기 시작 여부가 결정되던 7시16분까지 부산스럽게 함께했습니다.

▲ 대구구장 SKY스포츠 중계차
TV는 그래도 어제 경기를, 또 여러 가지 그림들을 보여주고 자막을 처리하며 시간을 보냈다면, 저희가 맡은 라디오는 말 그대로 정신없는 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평소 이 시간에 방송되던 프로그램이 야구 중계로 취소됐기에 급하게 후배 아나운서에게 뉴스를 부탁합니다.

보통이라면 30분 정도 기다린 뒤 결정되는 걸로 감안했지만, 오늘은 그리 쉽지 않더군요. 경기 없이 해설 캐스터가 10여분을 야구 이야기로 끌어가다 광고를 가는 상황을 이어갑니다.

7시부턴 서울 프로그램인 뉴스를 다시 받고, 정규 프로그램 준비도 했습니다. 비는 줄지 않아 아무래도 취소로 갈 듯 하다는 여론이 높아졌죠. 하지만 일정의 압박은 어마어마했나 봅니다.

중계진도 취소를 준비하던 7시 10여분쯤, 그라운드로 나선 심판들은 경기 속개를 결정했습니다. 다시 바빠진 저마다의 채널들, 해설과 캐스터들은 중계석으로 급한 발걸음을 옮깁니다. PD들과 현장 취재기자들은 여기저기 급한 연락과 함께 오늘 경기가 펼쳐진다는 사실을 알리죠.

약속된 두 번째 경기 개시 시간 7시 30분. 다소 빗줄기가 굵어지며 주저했지만 선수들은 그라운드로 나섭니다. 그렇게 시작된 경기, 정확히 1시간 4분을 기다린 뒤 시작된 오늘 경기, 이미 대부분의 중계진과 취재진의 피로는 한 경기를 치른 듯 피로감을 호소합니다. ​

미리 좀 더 확고한 기준을 알려줬다면, 이를 테면 최대 결정 시간과 같은 부분을 이야기해줬다면 더 좋았을 터. 하지만 지금의 이런 기다림은 분명 긍정적입니다. 내리는 비에도 관중석을 지킨 팬들에 대한 예의이자, 어지간하면 매일 정해진 일정을 묵묵히 소화하는 야구의 미덕을 지키는 노력이란 점에서 그렇습니다.

한편으로는 진작부터 이런 노력을 했다면 하는 아쉬움도 듭니다. 경기 시작 한참 전부터 취소를 결정했고, 경기 시간 즈음에는 맑은 하늘을 보던 경험들이 떠오르더군요.

우리 야구에게는 아직 낯선 풍경인 이런 오랜 기다림, 진작부터 명확한 기준과 원칙으로 진행했어야 했습니다. 물론 중계진의 마음은 답답하고 준비된 것 없이 시간을 채워야 하는 곤란함도 있습니다만, 원칙과 기준이 명확하다면 중계팀들도 아마 앞으론 좀 더 정교하게 준비할 수 있을 터.

한 시즌을 치르며, 아니 지난 10년간을 떠올려도 포스트시즌이 아닌 경우 처음인 듯한 이런 기다림. 중계의 피로감은 물론 퇴근 시간이 무한정 늘어지는 암담함도 있지만, 그래도 이 방향이 옳다 여깁니다.

스포츠PD, 블로그 http://blog.naver.com/acchaa 운영하고 있다.
스포츠PD라고는 하지만, 늘 현장에서 가장 현장감 없는 공간에서 스포츠를 본다는 아쉬움을 말한다. 현장에서 느끼는 다른 생각들, 그리고 방송을 제작하며 느끼는 독특한 스포츠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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