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용팔이>에 뜬금없는 장면이 나왔다. “핸드폰 줘봐. 방 알아보게. 음, 이거 괜찮네. 어때?”라는 대사와 함께 방을 구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직방’이 TV화면 크게 잡혔다. '직방'은 <용팔이> 주연을 맡고 있는 주원이 광고를 찍은 회사이다. 그뿐 만이 아니다. 성당 아이들에게 굳이 놀아준다며 운동장으로 나간 이후 화면에 등장한 제품은 ‘몽베스트’ 생수였다. 함께 뛰어 논 아이들에게 굳이 밥을 사준다면서 데려간 곳은 ‘본죽’이었다. 김태희는 비빔밥을 먹었는데, 주원은 김태희에 “재벌집 딸 맞아? 왜 맨날 된장찌개 아님 비빔밥이야”고 물었다. SNS에선 ‘용팔이’가 아니라 ‘죽팔이’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 SBS수목드라마 '용팔이'의 직방 간접광고 모습

지난 2010년 1월, 방통위는 상승하는 방송프로그램 제작비 문제를 해결한다며,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 ‘간접광고’를 허용했다. 그 후 아예 본말이 전도된 상황이 일상화됐다. 드라마의 전개가 광고를 따라 출렁인다. SBS <용팔이>의 과도한 간접광고가 이를 단적인 사례다.

방통위, 언제까지 방송사들만 불쌍하다고 할 것인가

드라마만의 문제도 아니다. 예능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최근 큰 인기를 끌었던 MBC <무한도전> ‘영동고속도로 가요제’ 편을 보면, <복면가왕>을 차용해 프로듀서를 소개하는 과정부터 간접광고의 연속이었다. 박명수, 정준하, 정형돈, 하하, 광희 등 무한도전 멤버들과 특별 게스트로 출연한 윤종신, 유희열, 이적의 테이블에는 ㈜코라콜라에서 판매중인 지코(zico) 코코넛 워터가 올려 있었다. 해당 음료는 <무한도전> 내에서 지속적으로 노출됐다. 박명수와 아이유가 해당 음료수를 들고 춤을 추는 장면까지 방송됐다. 가요제 현장에서도 협찬받은 제품들이 다수 부자연스럽게 노출됐다. <무한도전> ‘배달의 무도’ 편의 경우, 배달 전문 애플리케이션 ‘배달의 민족’의 협찬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 프로그램 전 CM에 협찬명 들어간 사례.The body shop의 광고시간에 협찬명인 SK텔레콤의 광고효과가 될 수 있어 분쟁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자료=방통위)

상황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방통위는 방송사의 재원을 더 확보해줘야 한다는 논리를 앞세우며 ‘광고규제 완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방송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간접광고’와 관련해 현재 금지돼 있는 ‘제품의 특장점’ 시연을 풀어주려다가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던 적도 있고, 스포츠 중계 등에만 허용되던 ‘가상광고’를 교양과 스포츠보도로 범위를 넓혀주기도 했다. 또, 신유형 광고를 허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도 마련했다. 이 밖에도 방통위는 현행 광고금지품목으로 규정돼 있는 병원 및 전문의약품 등에 대해서도 관계부처와 협의를 통해 완화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통위의 방송광고 규제완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최근 추진 중인 <협찬고지에 관한 규정> 개정안은 아예 '제목 광고'를 허용할 방침이다. KBS <JUST DO IT 나이키 농구화 신고 1박2일>과 MBC <갤럭시6로 보는 무한도전>, JTBC <SKT와 함께하는 히든싱어> 등 협찬주의 명칭이나 로고, 상품명 등을 방송프로그램 제목에 붙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방통위는 이 같은 조치가 시청권을 훼손할 것이라는 우려를 알지만 이 또한 방송사의 재원마련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자료=최민희 의원실)

시청자들은 광고를 보는 것인가 드라마를 보는 것인가

협찬주명을 방송프로그램 제목에 붙일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대한 폐해는 누구나 예상이 가능하다. 방송프로그램의 상업화는 비판하기도 어려운 문제가 될 것이다. 현재도 협찬에 따라 프로그램들이 영향을 받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제목까지 그 문을 열어준다면 협찬주들의 요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방송가 안팎에선 현재도 광고주들의 요구를 매우 구체적이라고 말한다. 협찬관련 노출의 경우, “‘을’은 방송 심의에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아래에 명시된 에피소드 및 단순 노출 씬을 자연스럽게 연출하되, 5회(에피소드 2회, 단순노출 3회)는 OO 로고를 직접적으로 노출하는 간접광고 형식으로 한다”는 내용이 계약서에 적시된다. ‘에피소드’라는 표현이 재밌는데, <방송법> 제73조(방송광고등)는 ‘간접광고’를 “방송프로그램 안에서 상품을 소품으로 활용하여 그 상품을 노출시키는 형태의 광고”라고 규정하고 있다. ‘에피소드’를 만든다는 것은 그 범위를 넘어서는 편법이다. 간접광고와 협찬은 출연자의 광고 영향을 많이 받는다. SBS <용팔이>의 경우에서 보듯, 주연배우인 주원이 광고하는 ‘직방’이 협찬사로 들어가는 식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방송프로그램에 협찬주명을 고지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협찬 계약서’에는 더 많은 요구사항들이 포함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 MBC <무한도전> '배달의 무도' 편과 배달 앱 서비스 '배달의 민족'

반면, '제목 광고'가 정말 광고 효과가 있느냐는 의문도 있다. <협찬고지에 관한 규정> 제5조(광고효과의 제한)를 보면, “방송사업자는 협찬주에게 광고효과를 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제작·구성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프로그램 제목에 협찬주명을 고지하는 것이 광고효과가 있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이 밖에도 충분히 합리적인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방통위는 이에 대한 명확한 반론을 하지 않고서는, 단지 ‘방송사들이 어렵다’는 얘기만 반복하고 있다. 간접광고를 허용할 때에도 가상광고 허용범위를 넓혀줄 때에도 늘 그랬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윤정주 소장은 “제목광고 도입해준다고 하더라도 방송사 재원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면서 “그렇다면 그때 가서는 또 무엇을 풀어줄 것이냐”고 물었다. 이어, “그보다는 방송프로그램 제작비가 상승하는 근본적인 원인에 따른 대책이 필요하다. 차라리 드라마 한 편을 줄이라”고 요청한다. 제작비 상승의 근본 원인은 놔둔 채, 상승된 제작비를 근거로 계속 특혜를 맞춤해 제공하는 행정, 방통위가 언제까지 본말이 전도된 정책을 내놓으려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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