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0일 비무장지대(DMZ)에서 포격 도발을 감행한 이후,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22일 양국은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고위급 접촉을 시작했으나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와 군, 그리고 언론을 통한 소식을 종합하면 우리는 지난 4일 발생한 ‘지뢰’ 폭발과 20일 포격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고 있고 북은 우리에게 ‘심리전 방송’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요구들만이 난무하는 모습이다.

이틀 째 진행 중인 고위급 접촉에 우리는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참여하고 있고, 북한은 김양건 노동당 비서와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이 나왔다. 통일부에 따르면, 이 회담은 북한의 요청에 의한 것이다. 통일부는 북한은 21일 오후 4시께 김양건 당비서 명의 통지문을 통해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김양건 당비서와의 접촉을 제의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즉각 김양건 당비서가 아닌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접촉에 나오라는 수정 통지문을 보냈다. 22일 북한은 현재와 같은 2대 2 접촉을 제안했다.

▲ 북한의 서부전선 포격도발로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22일 오후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접촉에서 김관진 국가안보 실장(왼쪽 위)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대화를 하고 있다. (왼쪽 위 시계반대방향)김관진 국가안보 실장, 홍용표 통일부 장관, 김양건 노동당 비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사진=연합뉴스)

고위급 접촉이 진행 중인 와중에도 대치국면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북한은 포병부대를 보강하고 잠수함을 이동시키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우리 군은 북한군의 이 같은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며 “한미동맹 연합전력으로 최대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군사적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우리도 북한도 “도발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상대에게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우리와 북한 모두 ‘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치킨게임을 하고 있는 셈이다.

도발과 보복이 반복되고, 고위급 접촉조차 치킨게임의 일부로 진행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명박 정부 이후 ‘핫라인’이 소실됐기 때문이다. 북한은 김정은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숙청’ 작업에 군사 도발을 감행하고 있고, 우리 정부는 이런 북에 대해 경제제재 조치에 이어 북 정권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심리전 방송을 강행했다. 양국 간 대화 또는 다자간 대화로 해결하기보다 손쉬운 ‘강경책’을 쓴 셈이다.

대화가 이어지고 있는 지금 이 시각에도 양국은 모두 ‘화전양면’ 전술을 펴고 있다. 북한군은 포병전력을 강화하고 잠수함 부대를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군은 이를 ‘추가적인 도발 가능성’으로 해석하면서수중 탐지·감시전력을 강화하고, 최전방에 포병전력 또한 보강하고 있다. 대북확성기 방송 또한 중단하지 않고 있다. 우리 군은 해외에서 훈련 중인 전투기마저 조기에 복귀시켰다. 호전적인 북한에 대해 우리 정부는 ‘대전’을 선택한 셈이다.

▲ 남북 고위급 접촉 재개를 앞둔 23일 오전 인천시 옹진군 연평면 당섬에서 해병대 연평부대원들이 경계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두 비정상국가의 경영진에게 지금과 같은 긴장 국면은 체제 통치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국지도발과 전쟁의 가능성이 나올수록 북은 왕조체제, 남은 공안통치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양국의 정치권과 외교라인이 ‘태업’하며 만든 군사적 긴장완화는 비정상접촉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최근의 군사적 긴장관계는 양국이 그 동안 도발과 전쟁 가능성을 키워온 결과이기 때문에, 고위급 접촉 또한 ‘양보’ 없이 성과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합의가 어려운 까닭은 갈등과 전쟁이 양국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북한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 이후 점점 고립되고 있다. 한국은 실리외교마저 포기하고 북에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고위급 접촉에서 양국이 획기적인 평화유지 방안에 합의하지 않는다면, 양국의 주민과 시민들은 앞으로도 양국의 ‘저강도분쟁(low intensity conflicts)‘에서 벗어날 길이 없지만 양국 모두에게 평화에 대한 의지는 없다.

지금 상황대로라면 ‘전쟁으로서의 정치’와 ‘정치로서의 전쟁’에 의한 군사정치와 공포정치가 간헐적으로, 그러나 자주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정치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뿐이다. 이를 위해 ‘단계적 군비축소’를 논의하고 일방적인 군축이라도 추진해야 할 때다. 지금 언론과 시민사회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북한의 군사도발에 백배의 보복을 하지 않으면 굴복하는 것이다’와 같은 호전적 선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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