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자들이 제아무리 힘들다고 하더라도 회비는 내야 한다’는 게 지난 6월 발효된 방송법 시행령의 취지다. 김재홍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이 비유한 대로, 아파트 입주민이 자기 사업이 적자고 힘들다며 아파트 관리비를 내지 않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방송법 상 방송사업자와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제공사업자(IPTV사업자)는 모두 방송통신발전기금을 낸다.

콘텐츠 사업자는 방송광고 매출의 일정 부분을 내고, 플랫폼 사업자는 방송서비스 매출의 일부분을 내고, 홈쇼핑채널 사업자는 영업이익의 일부를 기금으로 낸다. 방통위는 매년 ‘방발기금 고시’를 통해 사업자군 별로 징수율을 정하고 기금을 징수한다. 그리고 21일 방통위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에 대한 후속조치로 적자 사업자라도 방발기금을 납부하도록 하는 고시를 의결했다. 단, 이 고시의 부칙에는 ‘종합편성·보도전문 채널사용사업자에 대해서는 징수율을 0.5%로 하되 2016년부터 징수한다’는 취지의 단서조항이 붙어 있다. 상위법인 시행령을 뒤엎는 명백한 ‘종편 특혜’로 볼 수 있다.

고삼석 상임위원은 방송법 시행령의 개정 취지에 맞춰 고시 부칙의 단서조항을 없애고 올해부터 징수하자는 의견을 여러 차례 제시했다. 김재홍 상임위원은 “3년 동안 면제했고, 징수를 안 할 수 없게 됐다. 징수하자고 했는데 이제는 1년 뒤에 하자고 한다. 누가 봐도 우스운 행정행위라고 생각한다”며 올해부터 당장 징수하자는 의견을 냈다.

반면 허원제 부위원장은 기존 플랫폼 사업자들의 경우 징수 유예기간이 종편보다 길었다는 이유를 들며 사업자들에게 ‘예측가능성’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기주 상임위원은 “공익성, 영리성 측면에서도 차이가 있다”며 종편과 다른 플랫폼 사업자를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종편은 아직 보호받아야 할 신생사업자’이며 ‘공익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사업자인 만큼 수익성이 나지 않으면 더 배려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상임위원 간 공방이 이어지자 최성준 위원장은 “두 위원이 반대의견을 냈다는 점을 회의록에 남기고 원안대로 의결하자”고 유도했다. 논리에서는 고삼석, 김재홍 상임위원이 앞섰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말 많고 탈 많은 종편 특혜는 이렇게 손쉽게 연장됐다. 3대 2의 말싸움 결과다. 방송광고 시장이 침체하고 있는 와중에서도 30%대의 매출 성장을 기록한 종편은 올해도 회비를 내지 않게 됐다.

▲ 최성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사진=미디어스)

황당한 것은 특혜를 정당화하는 방통위의 논리다. 방통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종편·보도 방송채널사용사업자에 대해서는 과거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위성방송에 대한 최초 분담금 징수율 1% 적용 시 해당 사업자군이 흑자 전환 상태였던 점, 종편·보도PP가 전체적으로 여전히 적자임을 감안하며 징수율을 0.5%로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매출 등 모든 실적에서 앞자리수부터 다른 플랫폼사업자의 1%는 종편에게는 10%가 훌쩍 넘는 돈이다. 애초 비교대상이 아닌데도 방통위는 종편 특혜를 위해 다른 사업자군을 끼워맞췄다.

방통위는 한 술 더 떠 “적자상태에 있는 사업자의 경영효율화 등을 통해 수익성을 개선할 기회를 부여하고 콘텐츠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올해 징수율을 0%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방발기금을 면제하면 그 돈이 콘텐츠 투자로 이어질 것이라는 황당한 주장이다. 종합편성채널 4개사와 보도전문채널 2개사의 2014년도 방송광고 매출액의 0.5%(2016년 징수율 기준)는 9억7천만원 수준이다. 방통위가 이번에 면제한 기금은 사업자별로 2억원이 채 안 된다. 이 돈을 받지 않으면 사업자들이 수익성을 개선하고 콘텐츠에 투자할 것이라는 것은 쉽게 말해 ‘거짓말’이다.

종합편성채널이 방통위 사무처와 정부여당 추천 상임위원들의 사려 깊은 마음을 이해할까. 전혀 아니다. 종편은 2014년 재승인 과정에서 출범 당시 약속한 대규모 투자 계획을 절반 또는 3분의 1 수준으로 줄이는 새로운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 심사위원회와 방통위는 방발기금 면제와 같은 이유를 들어 종편의 투자계획 축소를 수용했다. 그러나 종편은 이마저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올해 또 방통위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았다. 종편이 약속한 투자를 하지 않는 동안 종편 특유의 ‘싸구려 정치토크쇼’만 퍼졌다.

방송광고 시장이 축소되면 광고 매출액과 방발기금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종합편성채널은 협찬 영업에 집중하고 있다. 그렇다면 방통위가 할 일은 콘텐츠 선순환을 위해 플랫폼사업자에 대한 방발기금 징수율을 상향조정할 것을 미래창조과학부에 요청하는 것이다. 그리고 방송통신 융합 시대에 맞춰 쪼개지고 있는 광고과 협찬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여야 한다. 협찬 매출이나 홈쇼핑 연동 수익 배분 같이 사업자들이 최근 기획 중인 ‘틈’에 기금을 부과하는 것도 대안 중 하나다.

방통융합이니 N스크린이니 할 것도 없다. 정부와 국회가 보수언론에 신문방송 겸영을 허용한 것처럼 방발기금도 신방겸영 정신에 맞게 징수하면 된다. 종편이 꿈꾸던 ‘글로벌 미디어그룹’은 실현가능성이 없지만 출범 4년 만에 종편은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집단이 됐다. 그리고 종편은 보수신문을 등에 업고 여전히 성장 중이다. 종편은 갓난아기가 아니라 거대-보수-미디어그룹의 일원이다. 고시 부칙의 단서조항에 있을 사업자가 아니다. 종편에 2억원을 아껴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최성준 위원장 이하 방통위 관료들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 최성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사진=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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