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와 미디어크리에이트(SBS의 방송광고판매대행사업자)가 지난 2012년 6월 지역민방(지역지상파방송사업자) 9곳과 네트워크 광고 합의서를 체결하는 과정에서 지역민방에 광고 매출을 보장하기로 약속하고 프라임타임(21~24시)의 85% 이상에 SBS 프로그램에 편성하도록 요구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SBS의 메인뉴스인 8시뉴스를 지역민방이 8시25분까지 편성하도록 하는 협약 내용도 있다. 20일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실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합의서와 협약서를 공개했다. 규제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가 어떤 제재조치를 할지 주목된다.

네트워크 광고 합의서는 2012년 6월 SBS와 미크리, 그리고 지역민방 9곳의 대표이사가 서명한 문서다. 지역민방을 활용해 네트워크 형태로 전국방송을 하는 SBS, 그리고 SBS의 주요 콘텐츠를 지역에 내보내며 SBS의 방송광고 결합판매에 의존하는 지역민방은 2012년 6월 SBS의 특수관계인인 미디어크리에이트 출범 직전 합의서를 체결했다. 이 합의의 약정기간은 2013년 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로 지금도 유효하다.

최민희 의원실이 공개한 합의서에는 △SBS와 미크리가 지역민방의 광고매출을 일정 수준 이상 보장하는 내용과 함께 △네트워크 협약의 부문별 협약인 편성 협약을 개정하는 내용이 있다. “21시부터 24시까지의 시간 중 SBS 프로그램을 85% 이상 편성한다. 단, SBS가 지정하는 프로그램은 양사가 협의하여 우선 편성한다”는 게 개정된 내용이다. 그리고 석 달 뒤인 2012년 9월 SBS와 지역민방 9개사는 ‘편성 및 네트워크시간대에 관한 협약’을 맺었다. 같은 시기 ‘보도에 관한 협약’까지 체결했다.

최민희 의원실의 주장의 핵심은 ‘SBS와 미크리가 광고매출 보장을 조건으로 지역민방의 편성권을 침해했고, 이는 방송법 및 방송광고판매대행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이라는 것이다. 거대 지상파와 그 미디어렙사가 지역민방의 편성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이 사실로 드러나면 SBS와 미디어크리에이트는 형사처벌을 면할 수 없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적극적으로 사실을 규명하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역민영방송노조협의회는 21일 성명을 내고 “비록 문건은 분리했지만 방송광고 판매 및 배분에 있어 우월적 지위에 있는 SBS는 최소 광고매출 보장이라는 미끼를 통해 법으로 보장된 지역민방의 편성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명백히 자행하고 있다”며 “이는 지역민방을 자사의 중계소로 만들려는 기만적인 술책이며 방송법 제4조(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와 방송광고판매대행 등에 관한 법률(이하 미디어렙법) 제15조(광고판매대행자 등의 금지행위)에 대한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지역민방노조협의회는 “SBS는 이를 ‘협약’이라는 명칭을 들어 사업자간 ‘자율협약’이라 주장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특정시간대의 편성비율을 일률적인 가이드라인으로 제한하는 모양새는 심지어 방통위의 규제에도 등장하지 않는 강력한 편성권 통제”라며 “이러한 불평등한 내용이 심지어 ‘협약’의 형태로 문서화되기까지 했다는 점은 오히려 상호간에 심화된 불평등성을 암시할 뿐이다. 여러 모로 이는 ‘제도화 된’ 편성권 침해의 증거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사건은 복잡하다. 최민희 의원실이 공개한 합의서는 ‘초안’이거나 ‘이면합의서’일 가능성이 크다. 방통위에 따르면 미디어크리에이트는 2012년 허가를 받을 당시 ‘편성 규약 개정’이 포함된 네트워크 광고 합의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방통위 이헌 방송광고정책과장은 21일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미크리가 허가, 재허가 심사 때 SBS 네트워크 광고 합의서를 제출했으나, 합의서에는 편성 개입 내용이 없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헌 과장은 “(방통위에 제출한 합의서에는 편성 규약 개정 내용이 없기 때문에) 미크리가 지역민방과 광고 계약을 체결하면서 지역민방의 편성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은 미디어렙법 상 금지행위에 해당이 안 되고, 허가․재허가 조건에도 위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논란이 되고 있는 편성권 침해에 대해) SBS와 미크리는 네트워크 합의서는 두 회사가 함께 진행했고 (미크리가 방통위에 제출한 광고 합의서에) 편성에 개입하는 내용이 없어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편성 협약과 보도 협약에 나온 ‘편성권 침해’에 대해 방통위는 법적 검토를 거쳐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종영 편성평가정책과장은 ‘SBS와 지역민방이 맺은 편성, 보도 규약이 방송법 위반’이라는 최민희 의원실 주장에 대해 “보도와 편성 협약은 (과거에도 맺어왔고 둘 사이 관계를 고려하면) 당연히 맺어야 하는 것”이라면서 “프라임타임 편성에 대한 협약과 SBS 뉴스시간에 대한 내용도 사업자 간의 자율적인 협의와 합의였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김종영 과장은 “형식적으로 보면 합의서는 SBS와 미크리가 같이 만들고, 협약은 SBS만 참여했지만 두 사업자는 특수관계다. 이 부분이 쟁점이고 법적 검토의 대상. 편성 및 보도 협약과 광고 합의서가 결부돼 있다면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이헌 과장은 “두 개 협약의 실체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며 “(특수관계인 두 사업자와 지역민방의) 협약 자체를 부당하게 볼 것인지 여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편성권 침해 논란와 제재는 방통위가 SBS와 미크리의 특수관계를 어느 수준까지 인정하느냐에 달렸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SBS가 9개 지역민방의 편성권을 침해했다며 SBS에 공식사과를 요구했다. 언론연대는 SBS가 지역민방의 방송시간을 일부를 독점지배한 것이라며 ““이는 지역민방의 제작자율성을 침해하고, 콘텐츠 제작능력을 떨어뜨려 지역시청자들의 볼 권리를 훼손하는 행위다. SBS는 지역성을 말살하는 편성개입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연대는 방통위에 즉각적인 진상조사를 실시할 것을 요청하며 “SBS에 대한 형사고발 등의 법적조치 및 편성권 침해 행위의 재허가 심사반영, 미크리의 미디어렙 허가승인 취소를 강력하게 요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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