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스카이라이프 전임 경영진이 최대 2000억원대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유료방송 핵심기술인 CAS(Conditional Access System, 수신제한시스템) 공급업체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회사가 부담해야 할 비용을 누락했다는 이유다. 스카이라이프는 “과거 공급업체와 법적 분쟁이 종결됐고, 업체 변경으로 인한 손해가 없다”는 입장이다.

12일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김환균)과 스카이라이프지부(지부장 장지호)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몽룡 전 사장 등 전임 경영진이 2009년 CAS 공급업체 변경을 시도하면서 제3자와 유착, 밀실추진, 자료조작, 허위보고 등 부정한 방법으로 새 업체를 선정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이 전 사장 등 전임 경영진 셋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12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열린 KT스카이라이프 전 경영진 배임 혐의 검찰 고발 기자회견 (사진=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사연은 이렇다. 언론노조에 따르면, 스카이라이프는 2001년 영국업체 NDS와 계약을 맺고 이 업체로부터 CAS를 공급받았다. 이후 2009년 스카이라이프는 방송위원회의 ‘CAS 기술 국산화’와 ‘비용 절감’을 이유로 미국업체인 Nagravision이 스카이라이프 셋톱박스 공급업체인 DMT와 함께 설립한 법인 ‘한토리’과 독점계약을 맺었다. 이곳은 현재까지 스카이라이프에 ‘제휴형 국산 CAS’를 공급하고 있다.

문제는 업체 결정 과정에서 스카이라이프 전임 경영진들이 ‘Nagravision이 NDS의 라이센스를 영구 소유한다’고 가정하고, 이를 전제로 5년 간 138억5200만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판단한 데 있다. 특히 스카이라이프는 Nagravision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율촌에 법률자문을 구했다. 언론노조 스카이라이프지부는 이 과정에서 유착, 조작행위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CAS가 바뀌면 셋톱박스를 인위적으로 바꿔야하거나, 기존 시스템에 대한 사용대가와 손해배상 문제가 따라 붙는다. 스카이라이프지부는 구 CAS가 포함된 셋톱박스를 교체하는 ‘인위적 전환비용’을 최소 2168억6520만8천원으로 추산했다. 전환하지 않고 구 셋톱박스가 해소될 때까지 기다리더라도 NDS에 지급해야 하는 사용대가가 수백억원 발생한다는 게 노조 설명이다. 실제 과거 공급업체인 NDS는 국제중재판정부에 문제를 제기했고, 2014년 271억원에 이르는 배상금이 결정된 바 있다.

노조는 “복수의 CAS를 공급하고 NDS 발주물량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사용대가 등을 줄일 수 있었다”고 보고 있다. 노조는 전임 경영진이 이사회 의결 과정에서 이 같은 대안을 무시했을 뿐더러 인위적인 전환비용이나 사용대가 등을 고려하지 않은 보고자료를 바탕으로 업체를 변경했다고 주장했다. “이를 사실대로 밝힐 경우 CAS 공급업체 변경이 불가능해지거나 아니면 Nagravision에게 큰 이익을 보장해주는 독점공급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라는 게 노조가 추정하는 ‘졸속 계약’의 이유다.

▲ 12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발장을 들고 서 있는 전국언론노동조합 KT스카이라이프지부 장지호 지부장. (사진=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은 “2천억원대의 손해를 끼쳤다는 점에서 절차와 과정에 의심의 여지가 많다”며 “(인위적 전환비용 등) 문제를 무시해 졸속으로 추진했고, 이를 은폐하려는 기도가 있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스카이라이프지부 장지호 지부장은 “CAS는 과금 등을 위한 유료방송의 핵심기술인데 (피고발인) 3인이 스카이라이프의 의사결정구조를 장악하고 농락해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스카이라이프는 “이번 형사 고발은 노동조합이 퇴사한 전직 임원들을 고발한 건”이라며 “당시 CAS 사업자가 변경된 이유는 △CAS 기술 국산화(구 방송위의 재허가 조건) △CAS 비용 부담 절감 등을 목적으로 한 명백한 경영상 판단이었다. 또한 (구 CAS 공급업체인) NDS 간 합의를 통해 모든 법적 분쟁이 종결됐고, 스카이라이프는 본건으로 인한 손해가 전무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다만 스카이라이프는 “본 건과 관련하여 협조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성실히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스카이라이프 홍보팀은 기자회견 현장에 총출동했다. 현장에서 만난 홍보팀 관계자는 “당시 CAS 업체 변경은 경영적 판단이었다”며 “회사는 손실을 본 게 전혀 없다”고 말했다. 스카이라이프는 노조의 의혹제기에 대해 두 차례 걸쳐 법률 검토를 거쳤으나 경영상 배임으로 볼 수 없다는 자문결과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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