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하 스포일러 포함

부패한 권력 혹은 기득권에 맞서는 거친 경찰의 이야기, 이 얼마나 흔하고 뻔한 소재인가? <공공의 적>부터 <부당거래>에 이르기까지 이 소재는 꾸준히 영화로 만들어졌고, 꾸준히 사랑받아 왔다. <베테랑>의 시작 또한 이 뻔하디 뻔한 소재이다.

그러나 유독 <베테랑>은 다른 영화들에 비해서 청량감이 더하다. 이것은 영화의 결말에 가까스로 '악'을 처단해서 얻어지는 그런 카타르시스와는 좀 다르다. 영화 내내 계속해서 터지는 시원한 탄산수가 주는 것 같은 청량감이다.

<베테랑>이 이런 청량감을 갖는 이유가 있다. 관객이 불편함과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하는 순간에 시원하게 그것을 바로바로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베테랑>을 보면서 실제 일어난 사건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다. 영화가 실제로 일어난 일을 모티브로 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또 다른 생각 하나를 더하게 된다. '영화가 현실을 과장한 것이 아니다' 즉, '현실은 영화보다 더하다'는 생각이다. 대한민국에서 기득권의 절대적인 힘과 그들의 무법은 영화적 상상력이 아니라 지독한 현실이다.

따라서, 영화 안에서 사건 해결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등장할 때마다 우리는 긴장할 수밖에 없다. 기득권의 힘을 상상이 아닌 현실로서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사를 진행해 나가려는 형사를 막는 상사의 모습을 보면서, 형사의 앞에 놓일 수사의 어려움을 쉽게 떠올린다. 그리고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그런 낌새가 스크린에 펼쳐지자마자 관객은 이를 현실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실제로 있을 법한 일이라는 것을 넘어 진짜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대중에게는 있다. 대기업의 상무가 형사의 업무를 방해하기 위해 와이프를 찾아가 돈이 든 핸드백을 건넬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를 현실로 받아들인다. 오히려 현실에서는 이보다 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바로 스트레스가 쌓인다. 답답해진다.

이를 촘촘히 쌓아서 나중에 한 방을 날리는 것이 기존의 영화적 작법이었다면, <베테랑>은 다르다. 그 순간에 이 답답한 순간을 바로 해소시켜 버린다. 핸드백에 있는 돈을 바로바로 꺼내 대기업 상무를 엿 먹이고, 막내 칼침 놓은 새끼가 누구냐며 달려가 뺨을 치고, 윗선에서의 압박을 '주부도박단' 검거로 은근슬쩍 물타기 해서 수사를 이어나가게 한다. 현실이라면 분명 탁 막혔을 부분을 베테랑은 쌓지 않고 바로 터트려 버린다. 그러니 영화 보는 내내 시원할 수밖에 없다.

칼에 찔리고서도 칼침 정도는 맞아줘야 한다며 당당하고, 전세 대출을 받아야 함에도 쪽팔리지 말라며 남편에게 시원하게 일갈할 수 있다. 그리고 돈 받아 처먹었냐고 동료 형사의 팔을 꺾어 버릴 수 있다. 정의가 주눅 든 모습, 큰 어려움이나 난관에 빠져 정의가 어깨를 숙이고 오열하고 좌절하는 모습이 <베테랑>에는 없다. 그래서 시원하다.

기득권이 행사하는 말도 안 되는 불의와 무법을 더욱 강하게 보여줄수록, 그것을 깨는 영화 말미의 카타르시스는 커질 것이다. 하지만 그 불의와 무법이 현실이라면, 불의와 무법을 강하게 보여주는 것은 관객에게 일종의 폭력처럼 불편함을 유발하기 쉽다. 실화에는 감정이입이 더욱 크게 일어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사회는, 기득권의 불의와 무법이 영화적인 상상력인 아니라 극히 현실적인 사회다. 그래서 <베테랑>처럼 그때그때 풀어버리는 작법이라야 끝까지 즐겁고 신나게 영화를 볼 수 있다.

시대에 따라 관객도 변하고, 영화의 작법도 달라진다. <베테랑>은 지금 시대에 가장 알맞은 작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그래서 시원하고 신난다. 대중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영화로서 매우 훌륭한 경지에 이르렀다. 열심히 추천할 수 있는 영화다.

단지, 그 시원함의 원인을 인식하면 영화보다 더한 현실이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끝맛이 살짝 쓴 것은 안타깝다. 하지만 어쩌랴. 영화가 현실의 그 쓴맛까지는 해결해 줄 수 없는 법이다.


문화칼럼니스트, 블로그 http://trjsee.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화 예찬론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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