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혐오는 강자한테 하는 게 아니에요. 강자한테 혐오를 표출할 수가 없어요. 약자한테 표출하는 감정이죠. 자기보다 상대적으로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가정되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불안정한 심정과 상대적 박탈감을 투사하는 방식으로 혐오가 나타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여성뿐만 아니라 성적 소수자 지역적으로 특정적 사람, 나랑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불안정하고 불안한 감정을 투사해서 그걸 해소하고자 하는 욕망이 생기는 거예요” _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4일 밤 방송된 MBC <PD수첩>은 도입부부터 강렬했다. 3만명 넘는 구독자를 확보하며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는 페이스북 페이지 ‘김치녀’에 올라온 한 동영상을 소개하며 프로그램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게시된 동영상에 등장해 남자친구의 가방 선물이 성에 차지 않는 듯 몹시 화를 내는 어떤 여성은 ‘희대의 김치녀’로 일컬어졌고, ‘저딴 X은 맞아야지’, ‘저런 X은 딱 한 대만 맞으면 정신 차리는데’, ‘갑자기 살인충동 생긴다’ 하는 이용자들의 댓글이 여과 없이 전파를 탔다.

▲ 4일 방송된 MBC PD수첩

정점은 여성혐오를 선명히 드러내는 페이스북 페이지 관리자들의 인터뷰였다. ‘김치녀’ 관리자는 “이걸 보고 깨우친 여자들이 정말로 많다. ‘아 내가 잘못됐구나. 관리자님, 내가 잘못됐습니다’ 하는 계몽되는 그런 사람들도 많았다. 그래서 페이지 운영하는 데 굉장히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며 “나중에 결혼을 잘못하게 되면 인생이 망하지 않나. 김치녀는 김치녀대로 격리시키는 그런 제 사상, 페이지 운영의 철학”이라고 자랑스레 말했다. 그는 ‘개념 없는 여성’ 때문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 페이지를 포기 못하겠다. 뭔가 사명이 생겼다”면서 여성들에게는 자신의 이 ‘사명’을 알아주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다른 페이지 관리자는 “남성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여성은 가정적인 동물이고 애초에 다르게 태어났고 애초에 다른 사회인데 거기서 사회의식이 조금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라며 “그런 행동을 함으로써 사회적으로 분란을 일으키고 이슈화가 되어서 분명히 문제가 되는데 그것들이 하필 여성인 것”이라고 전했다.

<PD수첩>은 이 같이 자극적인 발언과 장면을 등장시킨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한국여성 혐오 현상이 상당히 우려할 만한 수준”까지 이르러 “일부 젊은 남성들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한국여성 혐오, 대체 그 남자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자는 것이다. 2030 남성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겠다고 자처해, 프로포즈할 때 명품백을 안겨주는 상황극을 본 커플의 반응을 알아보고 사석과 술자리에서 이루어진 대화를 중계하며 제작진이 소개팅을 주선해 남녀 역할을 분석했다.

대중문화평론가, 교수 등 전문가들의 코멘트를 통해 ‘여성혐오’가 지닌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여성혐오가 만연한 현상을 구조적으로 분석해 어떤 방식으로 개선해야 하는지 고민하려는 시도가 이따금 발견되긴 했으나, 방송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설명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희생하는 남성’의 고달픔 집중 조명하고
‘여혐’ 동참자에게 ‘여혐의 위험성’을 짚게 하는

<PD수첩>은 2030 남성 500명에게 설문조사한 내용을 지속적으로 노출했다. ‘김치녀’라는 말의 뜻을 아는지, ‘김치녀’라는 비판에 동의하는지 등 ‘여성혐오’와 관련된 내용에서부터 ‘남성’이라 겪는 불편과 역차별에 대한 이야기까지를 두루 다뤘다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마치 ‘여성혐오’가 ‘남성에 대한 부당한 역차별’에서 기인했다는 인상을 준다.

응답자의 94.8%가 김치녀라는 말을 알고 있었고, 48.4%가 한국여성을 비하하는 ‘김치녀’라는 표현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실시간 채팅에서 2030 남성들은 김치녀라는 말의 의미를 ‘허영’, ‘개념 없는 여자’, ‘의무는 지려하지 않고 여성 우대만을 원하는 여자’, ‘누구나 욕 먹을 짓을 하는 그런 여자들을 비하하는 것으로 비하할 만하니까 비하하는 것’, ‘열등의식은 아니고 보다보다 지쳐서 만들어 낸 단어’로 풀이했다. ‘한국여성을 전체적으로 비하하는 단어’, ‘잘못된 비하 발언’이라는 답은 소수였다.

이어, <PD수첩>은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해서 여성보다 2년 뒤처지고, 헌재 판결로 인해 이제 군 가산점까지 인정받지 못하는 남성들의 ‘어려운 상황’을 설명한 후 여성도 4주 혹은 8주 기초 군사훈련은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소개했다. 2030 남성들은 ‘여성들이 군 복무를 인정해주지 않는다’거나 ‘가산점을 바라고 간 건 아니지만 논란이 있을 때 자기 이익에 관련된 것에 대해서는 1%도 양보할 수 없다는 여성들의 태도를 실감’했다고 고백하고, “여자면 살기 편할 것 같은데, 아르바이트 보니까 (여성은) 서비스업 같은 다 좋은 거더라”고 부러워했다.

이후로도 데이트 계획을 세우고, 데이트 비용을 주로 내고, 결혼을 할 때도 자신이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등 2030 남성들이 겪고 있는 부담과 애환이 주를 이룬 내용이 이어졌다.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하다는 칼럼으로 도마에 올랐던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과 극우 성향 사이트 일베 이용자임을 밝히며 ‘일부 무개념 여성을 풍자’한다는 명목의 가사로 화제를 모았던 가수 브로에게도 ‘여성혐오’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주어졌다.

▲ 가수 '브로'의 인터뷰

이렇듯 여성혐오의 주체인 ‘남성’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나왔지만, 혐오의 대상인 ‘여성’의 이야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미러링(받은 대로 돌려주는 것)으로 여성혐오에 맞서는 메르스 갤러리 유저 몇 명과 여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높아져 남녀공학에 아이를 보내기 부담스럽다는 일부 학부모, 소개팅 상황극에 등장한 여성들이 짧게 등장할 뿐이었다.

여성혐오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입장은 다소 과격하게 그려지기도 했다.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신상이 공개되기도 하고 실질적인 위협을 받기도 한다는 메르스 갤러리 이용자들의 고통이 소개되는 건 잠깐이었다. ‘여자들은 이게 멍청해서 안 돼, 머리가’ 등 여성혐오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옹달샘(장동민·유세윤·유상무) 멤버들에 대해 발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욕을 먹은 평론가 허지웅 씨나 ‘여성은 축복받은 존재’라고 한 샤이니 종현의 사례를 들어 “이런 것까지 여성혐오라고 해서 비판받았다”고 말하는 데에서는 여성혐오 반대 세력의 ‘유난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한 편집이 아닌지 고개를 갸웃하게 될 정도였다.

또한 <PD수첩>은 여성을 위해 많은 희생을 스스로 감수하는, 배려심 깊은 남성들의 ‘선의’를 반복적으로 보여주었다. 제작진이 주선한 소개팅 상황에서는 미리 밥 먹을 곳을 알아보고 끊임없이 말을 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고 계산까지 마치는 남성의 모습과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여성의 모습을 대비시켜 보여주고는 “20대 남자와 여자가 만날 때 성 역할이 어떻게 나뉘게 되는지를 관찰하겠다”고 말했다. 최명기 정신과 전문의와 김대호 아나운서는 소개팅 자리에서 상대 여성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시종일관 애쓰는 남성의 행동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그의 ‘고군분투’를 격려했다.

후반부로 갈수록 방송은 더욱 더 훈훈해져만 갔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훌쩍 한 세대를 건너왔는데 아버지 세대 남자들의 삶을 고스란히 닮아가고 있는 우리 시대 남자들”은 “적어도 (배우자를) 내가 먹여 살려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여자보단 남자가 희생하는 게 좀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좋아하는 여사 고생시키면서까지 홀가분해지고 싶지 않다”, “여자가 (생계를) 책임져야 된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했다”면서 ‘남성’이라는 이유로 부여된 의무를 담담하게 지고 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가부장제는 소멸되는 과정에 있지만 의식은 남아 있고, (가부장제로 인한) 편익은 거의 소멸됐는데 불편익은 남아” 괴로운 남성들을 바라보는 <PD수첩>의 시각은 온정에 가까웠다. 한국의 경제적 격차가 심화되고 젊은 층에게는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희망이 굉장히 축소됐는데 그 원인이 ‘여성’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 군 복무 문제를 여성에게 책임지우기보다 제도 개선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나 ‘김치녀’로 대표되는 여성혐오 사상이 마치 ‘국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처럼 담론이 형성되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은 곁가지처럼 스칠 따름이었다.

강자가 아닌 소수자나 약자에게 행해지는 공개적이고 폭력적인 ‘혐오’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지금의 여성혐오는 왜 위험한지를 충분히 설명하지도 못했고,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해 아쉬웠다. <PD수첩>은 과연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 4일 방송된 MBC PD수첩. 3만명의 구독자를 확보한 페이스북 페이지 '김치녀' 관리자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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