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만들어낸 법률 중 단말기유통법(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만큼 꾸준히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은 없다. 이 법으로 정보를 빠르게 유통하고 입수하는 이용자는 ‘기습혜택’을 받았다. 법의 취지는 지원금을 골고루 나눠주자는 것인데, 일정 부분 효과도 낸 것으로 보인다.

이동통신시장에 관한 한 가장 정확한 정보를 수시로 보고받을 미래창조과학부 최양희 장관과 방송통신위원회 최성준 위원장은 단말기유통법이 이용자 차별을 없애는 데 기여했고, 가계통신비 인하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긍정적인 면이 없다면 이처럼 대대적으로 홍보하지도 않고, 언론의 비판보도에 정면으로 반박하지도 않을 터다.

방통위의 총평을 보자. 방통위는 “이통 3사의 마케팅비는 전반적인 추세에서 크게 감소하지 않은 상황으로 이는 고가 단말기․고가요금제 가입자에게 집중된 지원금이 대다수의 소비자에게 지급되었음을 의미한다”며 “따라서, 법 시행 이전 고액의 지원금을 지급받은 소수의 이용자들은 지원금이 줄어들어 단말기 가격이 비싸졌다고 할 수 있지만, 대다수 이용자들의 단말기 가격 부담은 낮아졌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정부가 제시하는 몇 가지 숫자는 단말기유통법의 성과를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방통위에 따르면 기기변경 가입자는 하루 26.1%(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평균) 수준에서 50.6%(2015년 6월)까지 증가했다. 이를 두고 방통위는 “기존 혜택을 포기하고 번호이동을 선택할 유인이 없어진데 따른 소비자들의 선택이 반영된 결과로 단말기 비용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 (사진=미디어스)

물론 같은 숫자를 두고도 달리 해석할 여지는 있다. 방통위 설명대로 70만원 이상의 고가 스마트폰 판매량은 단말기 유통법 시행 이후 5% 정도 감소했으나 전체 단말기 판매 및 개통건수는 2011년 2598만대 이후 2012년 2359만대, 2013년 2095만대, 2014년 1823만대로 감소 추세다. 고가의 스마트폰 탓에 통신비 부담이 커진 이용자들이 자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고 풀이하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중저가 요금제 가입비율이 전체 절반을 넘기는 것 또한 ‘자발적 아나바다’로 이해할 수 있다.

“단통법 효과 있다” “정책 효과 아니다”라는 식의 논쟁이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단말기유통법에 대한 해석은 도입 첫날부터 10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 부딪힌다. 그래서 두 가지 해석을 두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것은 단말기유통법 설계 내용과 사업자 반응, 이후 행보를 복기하는 것이다.

자발적 아나바다와 함께 매출 인하를 유도하는 이 문제적 법안을 사업자들은 왜 수용했을까. 단말기유통법은 차별의 근거를 ‘시간’에 두고 있고 사업자의 자율성을 크게 침해하지 않는다. 단말기유통법 시행 이후 이동통신사들이 ‘데이터 중심 요금제’를 경쟁적으로 내놓으며 요금 인하 경쟁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는 중장기적으로 가입자당 매출(ARPU) 상승에 기여할뿐더러 데이터를 활용한 ‘부가서비스’ 매출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사업자에게 이득이라는 분석이다.

단말기 제조사도 마찬가지다. 애초 단말기유통법의 핵심은 분리공시제였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반대로 빠졌다. 제조사는 정부 눈치를 보지 않고 장려금을 조절할 수 있게 됐다. 고가 스마트폰 판매량이 5% 줄었다고는 하나, 이는 장려금 조절로 충분히 메울 수 있는 수준이다. 특히 삼성, LG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가였던 ‘팬텍’이 위기에 빠지면서 삼성 LG가 중저가를 주도해도 될 만한 분위기마저 조성됐다. 윤종록 전 미래부 차관은 삼성전자가 휘두르는 이동통신 이용자들의 처지를 ‘실험실의 마루타’에 비유한 바 있다.

결국 단말기유통법은 철저히 사업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설계된 셈이다. 사용하면 할수록 늘어나는 위약금 결합상품을 사업자들은 공짜 결합상품으로 마케팅하며 단말기유통법을 무력화하고 있다. 그런데 규제기관은 열 명 미만의 실무자와 폰파라치 같은 신고제도에 의존하며 서울 시내 한복판에 나붙은 불법 과장광고도 잡아내지 못한다. 이동통신사에서 휴가비를 지원받지 못한 이용자는 날마다 더 호갱님이 된다. 이런 단말기유통법을 그대로 두고, 정부는 요금규제를 더 완화하겠다고 나섰다. 단말기유통법 이후, 모로 가도 결국 서울을 가는 삼성과 독과점 이동통신사의 득세는 오늘도 계속된다.

▲ (사진=미디어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