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7일)부터 국회 차원의 국정원 해킹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가 시작된다. 국회 정보위원회에서는 사망한 국정원 직원 임 모씨가 삭제했던 자료를 복구한 결과가 보고될 전망이다. 청문회가 아닌 상황에서 △해킹 프로그램 구매의 현행법 위반 여부, △민간인 불법 사찰 여부, △SNS·카카오톡/삼성 갤럭시폰 해킹 기술 문의 등에 대한 의혹이 얼마나 풀릴지 관심을 모은다. 하지만 이미 국정원이 ‘셀프 복구’하고 ‘자료 미제출’이 확인된 상황에서 회의적인 전망이 높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말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는 태풍 ‘할롤라’ 이동경로에 온 신경을 집중한 모습이었다. 이병호 국정원장이 직접 삭제된 파일을 복구한 결과를 갖고 국회를 찾기로 했음에도 지상파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는 모습이었다. 상식적 눈높이에서 보면 당연히 하루 앞으로 다가온 국회 상황에 대한 전망과 예고를 하는게 언론의 책무라고 할 수 있을 테지만, 언젠가부터 이 같은 관행은 방송뉴스에서 사라졌다. 특히, 정부에 불리한 사건의 경우 더더욱 그렇다. 국정원 해킹 의혹 사건을 주말 뉴스들은 ‘단신’처리(KBS)하거나 국정원의 ‘해명’에 강조를 두어(MBC)보도했다.

KBS, “태풍 할롤라가 우리나라엔 큰 영향 없이 지나갈 것”…국정원은 ‘단신’

KBS의 탑 뉴스는 태풍이었다. <태풍 ‘할롤라’ 동쪽으로 비껴가…직접 영향 없을 듯> 리포트를 통해 “12호 태풍 할롤라가 우리나라엔 큰 영향 없이 지나갈 걸로 보인다”며 “예상 진로보다 일본 쪽으로 더 치우쳐, 오늘 저녁 일본 규슈에 상륙했다. 태풍이 한반도에서 멀어짐에 따라 육상에 내려졌던 태풍 예비특보는 모두 해제됐다”고 전했다. KBS는 “어제까지 강한 태풍이었던 할롤라는 수온이 27도 정도로 낮은 오키나와 부근 해상을 지나면서 세력을 잃고 약한 소형 태풍으로 작아졌다”며 “진로도 지난주 예측 보다 동쪽으로 치우쳐 내일 새벽 대한해협 동쪽을 통과한 뒤 아침엔 동해로 빠져나가겠다. 제주와 부산 등 내륙 지역은 강풍 반경에서 벗어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 7월 26일 KBS '뉴스9' 리포트

KBS는 이어 “이에 따라 제주와 부산 등 육상의 태풍예비특보는 모두 해제됐고, 남해 동부 먼바다에만 태풍주의보가 발효 중”이라며 “기상청은 다만 제주와 영남 해안 지역에는 너울이 방파제를 넘는 곳도 있겠다고 예보하고 주의를 당부했다”고 덧붙였다. <서울 주택가 축대 붕괴…강원 영서서 낙석 잇따라> 리포트를 함께 배치했다.

KBS <뉴스9>에서 국정원 관련 리포트는 뉴스 후반부 ‘간추린단신’을 통해 “국회 정보위원회는 내일 이병호 국정원장 등이 출석한 가운데 ‘해킹 의혹’에 대한 현안보고를 진행하고 삭제됐던 파일에 대한 복구 내용 등을 보고받는다. 또 국회 미방위도 내일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을 출석시켜 국정원 해킹 프로그램의 위법 여부 등을 살펴본다”며 15초로 갈음했다.

MBC의 첫번째 보도 역시 태풍이었다. <태풍 ‘할롤라’ 한국 비껴갈 듯… 경남 해안 내일까지 ‘강풍’>와 함께 <잠기고 무너지고… 중부지방 나흘째 폭우로 피해 잇따라>, <태풍이 몰고 온 폭염… 남부는 연일 '찜통' 오늘 밤 열대야> 리포트 등을 연달아 배치했다.

MBC는 16번째가 되어서야 <“삭제자료 복구” 국정원 ‘사찰 의혹’ 내일부터 진상조사> 리포트를 배치했다. MBC는 “국정원 해킹 의혹에 대한 국회 차원의 진상 조사가 내일부터 시작된다”며 “숨진 국정원 직원이 삭제한 자료는 거의 다 복구된 걸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이어, “내일 국회 정보위원회에는 국정원장과 1, 2, 3 차장 등 국정원 간부들이 출석한다”며 “국정원은 숨진 직원 임모씨의 삭제 자료를 거의 복구했으며, 정보위에서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관계자는 임씨가 유서에 언급했던 것처럼 삭제자료에서도 ‘내국인 사찰은 없었다는 점을 확인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MBC는 또한 “여야는 정보위 현안보고 내용을 놓고도 어디까지 공개할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며 “새정치민주연합은 로그파일 등 웬만한 것은 모두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새누리당은 로그파일 외부유출은 현행법 위반이며 국정원 보고내용은 국가기밀인 만큼 국가안보와 국익이 훼손되지 않는 수준으로 공개돼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KBS와 달리 하나의 리포트를 배치한 점은 의미가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셀프복구’ 등 한계점에 대한 지적은 없었다. 현안보고 자체를 '신경전'으로만 다뤘다.

MBC, “삭제된 자료 거의 다 복구된 걸로”…SBS, “100% 복구했다는 게 국정원 입장이지만”

SBS도 태풍이었다. <힘 빠진 태풍 ‘할롤라’…한반도 비껴 日 상륙> 보도와 함께 <폭염 피해 바다로 ‘풍덩’…경남 함양 35.8도>, <폭우에 6m 축대 ‘와르르’…장맛비 피해 속출> 리포트를 배치했다. 약속이나 한 듯 지상파 3사의 뉴스 구성이 엇비슷했다.

SBS는 18번째에 <국정원 “삭제 자료 100% 복구”…내일 국회 보고> 리포트를 배치하고 “국가정보원이 삭제된 해킹 관련 자료를 복구해 내일(27일) 국회에 보고할 예정”이라며 “100% 복구했다는 게 국정원 입장이지만 야당이 수용할 지, 국정원 보고를 어디까지 공개할 지, 상황이 복잡해 보인다”라고 전했다. “숨진 국정원 직원이 삭제한 자료는 거의 다 복구된 걸로 알려졌다”고 강조한 MBC와는 약간 온도차가 있는 설명이었다.

SBS는 “국회 정보위원회는 숨진 국정원 직원 임 모 씨가 삭제한 해킹 관련 파일을 복구한 뒤 이병호 국정원장이 그 내용을 직접 보고하는 자리”라면서 “일단 국정원은 삭제된 파일을 100% 복구했다고 보고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은 국정원이 복구한 자료가 임 씨가 삭제한 자료와 같은 것인지 입증하려면, 원본과 비교 분석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이어, “논란이 됐던 민간인 사찰 여부에 대해서도 국정원과 새누리당은 내국인 사찰은 없었다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SBS는 “특히, 내일 국정원 보고내용을 어디까지 공개할 것인지를 놓고도 제한적 공개가 불가피하다는 여당과 웬만한 건 다 공개하자는 야당이 충돌하면서 또 다른 쟁점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 7월 26일 JTBC '뉴스룸' 리포트

같은 날 JTBC는 헤드라인으로 <내일부터 '감청 의혹' 조사…국정원 자료 제출 '0건'> 리포트와 <국정원 "자료 공개 절대불가" 야당 요청 33건 미제출>를 연이어 배치했다.

JTBC는 “국정원은 현재까지 야당이 요구한 자료를 1건도 제출하지 않고 있어서 ‘맹탕 조사’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며 “하지만 국정원법을 근거로 자료 제출을 계속 거부할 경우 국회 상임위원회 차원에서는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정원은 이미 20명분의 감청 기록만 제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며 “특히 야당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로그기록은 보안상 이유로 공개를 거부했다. 감청 대상과 내용을 모두 볼 수 있는 로그기록이 없으면 사실상 조사 자체가 무의미해진다”고 덧붙였다. JTBC가 공영방송답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근거는 주말뉴스에서도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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