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의 사용종속관계 하에서 근로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 등을 받아 생활하는 사람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하고, 노동조합법상의 근로자성이 인정되는 한, 그러한 근로자가 외국인인지 여부나 취업자격의 유무에 따라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의 범위에 포함되지 아니한다고 볼 수는 없다… 같은 취지에서 원심은 취업자격 없는 외국인도 노동조합 결성 및 가입이 허용되는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보고, 피고가 이와 다른 전제에서 단지 외국인근로자의 취업자격 유무만을 확인할 목적으로 조합원 명부의 제출을 요구하고 이에 대하여 원고가 그 보완 요구를 거절하였다는 이유로 원고의 설립신고서를 반려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하였다.”

6월24일 대법원은 서울경기인천 이주노조에 대해 이같이 판단했다. 이른바 ‘이주노조 합법화’는 8년 동안 법원에서 계류된 시점에서 나온 소식이었다. 노조는 물론 언론도 이 소식을 반겼다. 이주노조는 곧장 노조 임원 명단과 규약을 제출하고 ‘설립필증’이 나오길 기다렸다. 이에 서울지방노동청은 이주노조 규약 중 일부가 노동조합법에 맞지 않는다며 규약을 일부 수정‧보완하라고 요구했고, 이주노조는 일부 규약을 수정 제출했다. 그런데 노동부는 또 강짜를 부리며 퇴짜를 놨다. 노동부는 이주노조가 규약에 “이주노동자 합법화” 같은 내용을 담고 있고, 이는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정치운동’이니 이를 수정하라고 했다. 그리고 조합원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하거나 정부가 열람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했다.

정부 정책에 반대한다고 노조를 인정할 수 없고, 조합원이 불법이주민인지 아닌지 확인하겠다는 황당한 논리는 무슨 심보에서 나온 걸까. 이런 잣대라면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목표로 하는 웬만한 민주노조는 전부 ‘불법’이 된다. “정부 정책을 반대하는 노동조합을 용납할 수 없다”는 으름장을 놓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노동부가 대법원 판결에 반하면서까지 이런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쉽사리 이해할 수 없다. 다만 하나 추정할 수 있는 이유는 있다. 노동부가 이주노조를 정치적으로 민감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주노조는 5~10년이면 이주 2세로 확대될 수 있다. 이 노조를 ‘정치노조’를 낙인찍어 소수 조직으로 만드는 것은 중요한 통치전략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이주노조는 한국사회의 가장 밑바닥을 드러내는 집단이다. 이런 까닭에 한국이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을 인정한다는 것은 ‘감춰진 착취’를 교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이주노동자들은 “산업연수제 폐지” “고용허가제 도입 반대” “단속추방 반대” “노동비자 쟁취” 같은 요구를 하며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법원이 판단을 미룬 지난 십여 년 동안 ‘고용허가제’ 같은 반노동 정책가 자리를 잡았다. 정부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값싼 노동력’을 수급하고, 한국의 사용자는 합법적으로 이주노동자를 다스릴 수 있게 됐다. “말 듣지 않으면 쫓아낸다”는 말이 갖는 폭력성은 과거에 비해 심해졌다.

정부는 이주민을 원하는 기업의 요구와 이주민을 혐오하는 정주민의 여론을 동시에 고려해 이주노동자의 ‘숫자’를 조절해왔다. 고용허가제 기간은 늘어났지만, 이주민에 대한 통제권은 강해졌다. 이주노동자가 노동권의 사각지대로 밀려나 ‘사적 통제’의 대상이 돼버렸다. 그래서 이주노조와 이주노동자는 ‘퇴출’을 각오하고 자신이 당한 폭력과 착취를 증언해 왔다. 실제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표적단속으로 추방당했다. 그래서 이주노조가 백여명 수준이나마 조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조합원 백명의 이주노조가 27일 농성을 재개한다. ‘설립필증 촉구 농성 투쟁단’이다. 장소는 서울 중구 장교동에 있는 서울지방노동청 앞이다. 수요일 저녁에는 문화제도 연다. 2003년 이주노동자들은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성당 안에는 진입도 못한 채 오랜 시간 농성을 했다.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싸우는 장소만 바뀌었다. 십여 년 동안 살아남아 노동조합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됐는데, 노동부는 이제 다시 표적단속을 시작했다. 노동부의 ‘이주노조 단속추방’을 반대하는 언론과 여론이 절실한 때다. 합법적으로, 가장 완벽하게 착취당하는 집단이 합법적으로, 가장 완벽하게 드러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합법 이주노조가 필요한 이유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