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전기를 더 쓰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정부가 민간사업자를 통제하지 못하면서 이들에게 겨울철 난방과 온수의 영역을 넘겨주면서 이 같은 추세는 더 가속화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수요관리 정책이 부재하고 설비예비율을 더 높이는 계획을 내놨다.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정부는 친환경 에너지를 확대할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제6차 계획 등 기존 정부 계획과 비교할 때 들어맞지 않는다. 때문에 정부가 과잉설비를 은폐하기 위해 자료를 누락하고 숫자를 짜맞췄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회공공연구원 송유나 연구위원은 최근 <은폐와 숫자 조작,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문제점>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고 이 같은 숫자 조작은 민간사업자와 핵발전에 휘둘린 결과라며 정부가 축소하거나 누락한 설비를 종합해 다시 분석한 결과 2029년 설비예비율은 정부 전망치인 21.6%가 아니라 무려 46.7%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윤상직)가 지난 8일 국회에 제출한 기본계획안부터 보자. 18일 공청회를 진행했고, 애초 이달 중 국회를 거쳐 최종안을 확정하겠다던 산업부 계획은 국회 일정 중단으로 멈춰섰지만 이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 산업부는 “①안정적인 전력수급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②수요전망의 정밀성과 객관성 확보, ③에너지신산업을 적극 활용한 수요관리목표 확대, ④POST 2020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저탄소 전원믹스 강화, ⑤분산형 전원기반 구축에 역점을 두어 수립했다”고 설명했다.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핵심은 석탄비중을 최소화하고, 원전 2기를 충당한다는 것이다. 온실가스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정부는 신재생에너지의 설비용량을 5배, 발전량을 4배로 확대해 신재생에너지를 석탄과 LNG 복합화력 수준으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민간사업자’를 규제하기 위해 미착공 발전사업에 대한 허가취소 근거를 마련하고, 대주주 변경시 정부인가제를 실시하며, 건설의향평가제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2029년까지 계획기간 내 경제성장률 평균치를 하향조정해(3.48%→3.06%) 계획을 수립했다. 이에 따라 전력소비량과 최대전략도 감축했다. 산업부는 제6차 기본계획에 비해 전력소비량 14.3%, 최대전력 12%를 감축하는 것으로 목표수요를 잡았다. 산업부는 “그 결과 목표수요는 2029년 전력소비량과 최대전력은 각각 656,883GWh, 1억1193만kW로 전망되었고, 연평균 증가율은 2.2% 수준”이라고 전했다.

전원구성을 보면, 2029년 기준 정격용량 기준 석탄(26.7%), 원전(23.7%), LNG(20.5%), 신재생(20.0%) 순이다. 피크기여도 기준으로는 석탄(32.2%), 원전(28.5%), LNG(24.7%) 순이 된다. 산업부는 “6차 수급계획과 비교해서는 석탄 비중이 2.5%p 감소하지만, 원전 비중은 1.1%p, LNG비중은 0.4%p, 신재생 비중은 0.1%p 증가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 카페와 식당에서 콘센트부터 찾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는 수급안정성을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지금 거꾸로 가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송유나 연구위원은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MB 정부의 녹색성장전략과 마찬가지로 원자력을 저탄소 에너지원으로 설정하고 있고 △정부의 수요관리 정책이 부재하며 △2029년까지 원자력 2기 총 3,000MW 설비만이 필요한 만큼 현재 발전설비 전반은 공급 과잉 상황이고 △정부의 설비예비율 22% 등 향후 15년 전력공급 계획은 경쟁체제로 돌입한 발전시장의 불안정성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의 기본계획은 본말이 전도됐다. 정부에 따르면 2029년 한국의 원자력 설비는 3만8916MW가 된다. 2015년 기준 2만716MW(총 발전설비는 9만5681MW)인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15년 뒤 원자력 발전은 설비는 2배로 늘어나게 된다. 정부가 7차 계획에서 화력을 줄인 것은 탄소배출 논란도 있지만 원자력 설비 확대로 인한 과잉설비가 예상되기 때문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핵발전을 친환경 발전으로 둔갑하려는 목적이다.

더구나 에너지 재벌 기업의 석탄발전은 계속 추진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송유나 연구위원은 “과잉설비 상황에서 일단 원자력은 최대한 짓고, 이미 허용한 LNG 발전은 모두 건설에 돌입했고, 신규 석탄에 에너지 재벌 기업은 충분히 진출했기 때문에 애꿎은 공기업 석탄만이 제거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친환경 에너지 정책을 편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대기업의 석탄발전에는 손대지 않는다는 해괴한 논리다.

심각한 문제는 설비예비율 목표치가 지나치게 높다는 데 있다. 정부는 설비예비율 22% 중 15%는 고장정지, 예방정지, 원전 안전대책 강화 등을 고려했고 나머지 7%는 예측오차, 수요관리, 공급지연 불확실성에 대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송유나 연구위원 분석에 따르면, 설비예비율 목표치인 22%를 맞추기 위해 2029년까지 13만6097MW의 설비가 필요하다. 2015년 5월 현재(9만5681MW)보다 4만MW 이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수상한 대목은 바로 여기 있다. 원자력발전소 4기는 2025년에야 생산이 가능하고, 2024년까지 전력설비 또한 과잉인데 정부는 설비예비율을 지나치게 높게 설정했다. 2022년의 경우 설비예비율은 무려 27.7%로 잡혀 있다. “전력 다소비를 예상한 목표인지, 전력의 과잉공급에 따라 다소비 즉 전력판매를 유도하겠다는 목표인지 분명치 않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가 민간사업자에게 에너지 시장을 개방한 결과, 현재 ‘공급과잉’을 맞고 있는데도 정부는 적어도 2025년까지 이들의 수익을 보장하겠다는 입장이다.

▲ 지금 정부와 수요계획 없이 전기를 흥청망청 만들어내고 있다. 이득은 재벌이 취하고, 전기요금에 취하는 건 시민들이다. (사진=미디어스)

정부 계획이 꼼수인 결정적인 이유는 설비예비율 등 ‘숫자’가 다르다는 점이다. 송유나 연구위원은 제6차, 7차 계획에 나와 있는 발전소 증설, 폐지 계획 등을 바탕으로 2029년 총 설비용량을 산출했는데 그 결과는 16만4202MW다. 정부 계획인 13만6097MW보다 2만8105MW 많다. 이에 따라 설비예비율도 46.7%로 껑충 뛴다. 송유나 연구위원은 정부가 신재생에너지를 제외한 발전원별 설비용량을 밝히지 않으며 일부 숫자를 은폐, 축소한 이유는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부각하면서 과잉설비 문제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민간발전회사의 이익, 원자력 확대에 대한 정책 의지만을 관철시키고자 높은 설비예비율, 과잉설비라는 최악의 길”을 선택한 셈이다. 송유나 연구위원은 “일종의 ‘포토샵’ 전략 또는 고도의 메이크업 효과가 바로 제7차전력수급기본계획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간 절전을 위해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해 온 정부, 국제유가 하락에도 꿈쩍하지 않던 정부가 최근 전기요금 인하를 단행한 배경의 하나가 전력설비 과잉일 수 있다”며 “앞으로 전기를 마구 쓰는 것이 애국인 시절이 올지도 모른다”고 꼬집었다.

송유나 연구위원은 “전력의 설비 과잉이 분명한 상황에서 정부의 수요관리 정책 의지만 존재한다면, 현재와 전혀 다른 에너지 전환 정책을 충분히 구사할 수 있다”며 “발전사업자들이 공급불안정성을 높여왔다면, 설비예비율을 높게 책정할 것이 아니라 공급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또한 과잉설비 국면에서 가장 최적화된 공급시스템인 신재생의 2029년 피크기여도는 4.5~6%에 불과하다”며 “정부는 발전량 전망이 11% 넘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이보다 적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어, “태양광 및 풍력 등 재생가능에너지는 단속성으로 인해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공급 시스템을 을 마련하여 전력생산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이것이 선결과제이자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건설의향평가제를 폐지한 것에 대해서도 ‘산업부의 독자적 권한만을 확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유나 연구위원은 “2011년 공급부족이었다가 단지 4년 만에 공급과잉 시대로 돌입하여 전기요금까지 인하한다는 ‘말할 수 없는 비밀’ 전력공급 시스템, 산업부는 언제든 공급부족을 들어 발전소 신규 허용을 결정할 수 있게 권한까지 확보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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