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내정됐다. 김현웅 현 서울고검장이 그 주인공이다. 청와대는 21일 브리핑을 통해 이와 같은 사실을 밝히면서 “법무부와 검찰 내 주요보직을 두루 역임해 법무행정과 검찰 업무에 뛰어난 전문성과 식견을 갖추고 합리적인 리더십을 겸비했다”, “사회 전반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법질서를 확립하는데 적임자라고 판단했다”는 등의 설명을 덧붙였다.

청와대의 공식 설명은 신임 법무부 장관 후보자 내정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언론이 언급하고 있는 김현웅 법무부 장관 후보자 내정의 포인트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그가 호남 출신이라는 것이며 둘째는 검찰총장보다 소위 말하는 ‘기수’가 낮다는 것이며 셋째는 그의 아버지가 박정희 대통령 시절 공화당 소속으로 정치를 했다는 것이다. 김현웅 후보자의 내정에서 볼 수 있는 이와 같은 특징들은 박근혜 정권이 오늘날 처해있는 처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김현웅 후보자는 전남 고흥 출신으로 광주일고를 나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흔히 말하는 전형적인 호남 출신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물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호남 출신 인사로 장관이 된 사례는 방하남 전 고용노동부 장관, 김관진 국방부 장관,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 있다. 김관진 장관의 경우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유임됐다는 점을 참작할 필요가 있고 고용노동부 장관의 경우 한 사람은 학자 출신이고 또 한 사람은 공무원 출신이라 상대적으로 무게감이 덜하다. 말하자면 호남 출신 인사가 검찰에 개입할 수 있는 자리에 내정됐다는 것은 이 정부에서는 나름대로 놀랄만한 일이라는 얘기다.

이에 대해 언론이 언급하고 있는 키워드는 ‘사회통합’과 ‘호남 배려’이다. 박근혜 정부의 요직은 대개 대구경북 지역이나 부산경남 지역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았으므로 지역안배 차원에서 중요한 자리를 배려하였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설명이다. 그런데 달리 볼 부분도 있다. 인사청문회 문제다. 박근혜 정권에서의 공직 후보자들은 유난히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총리 후보자들의 경우 ‘수난사’라고 할 정도다. 법무부 장관은 앞서도 언급했듯 사정기관에 개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다. 여기에 이번 인사가 현직 법무부 장관이었던 황교안 총리를 ‘차출’한 결과라는 점을 고려하면 청와대 입장에서 ‘낙마’는 상상하고 싶지 않은 시나리오일 것이다.

결국 호남 출신 인사를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는 ‘파격’은 야당의 존재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올 수밖에 없다. 새정치민주연합 유은혜 대변인은 21일 서면브리핑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통합형 총리를 바란 국민의 요구와는 동떨어진 공안검사 출신 총리를 강행한 바 있다. 이번 법무부장관 내정이 그 연장선상에 있는 인사가 아니길 바란다”면서 “김 내정자는 황교안 총리가 법무장관이던 시절 차관을 지낸 바 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직무수행의 독립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우려’에 방점을 찍은 이와는 달리 이언주 원내대변인은 “청와대가 호남 출신 김 후보자를 신임 법무부 장관으로 내정한 것은 출신 지역을 고심한 인사로 보여진다”면서 “법무부와 검찰 내 주요 보직을 역임한 전문성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합리적 리더십을 갖고 법질서를 확립할 적임자인지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철저히 검증하겠다”면서 상대적으로 우호적 입장을 드러냈다. ‘낙마 트라우마’까지 갖게 된 청와대의 입장에서는 야당의 반응이 이 정도로만 나와도 일단은 성공이다.

▲ 신임 법무부장관으로 내정된 김현웅 서울고검장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대회의실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김현웅 후보자가 사법연수원 16기여서 14기인 김진태 검찰총장보다 후배가 된다는 점에도 간단치 않은 사정이 숨어있다. 검찰조직의 통상 논리상 직책의 위아래를 사법연수원 기수가 역행할 수 없다. 다만 법무부 장관의 경우 검찰총장보다 기수가 낮은 인사가 임명된 사례가 있어 문제가 다르다는 시각도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사법연수원 12기인 이귀남 장관과 11기인 김준규 검찰총장의 예가 대표적이다. 참여정부 때도 강금실 장관과 천정배 장관의 예가 있긴 하나 두 사람이 검찰조직 출신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의 결은 또 다르다. 어쨌든 언론보도에 따르면 청와대는 김현웅 후보자를 내정한 것이 김진태 검찰총장의 ‘퇴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임기를 보장해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청와대가 다소 어색한 인사를 이런 설명까지 붙여서 강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전관예우’ 논란 때문이다. 검찰 출신 인사들이 퇴직 이후 법무법인 등에서 고액의 수임료를 챙기는 것이 관례가 된 상황에서 이 논란을 피해가는 방법은 현직을 차출하는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검찰조직에서는 언제나 검찰총장이 가장 윗 기수이기 때문에 현직을 법무부 장관으로 차출하면 필연적으로 ‘기수 역전’이 일어난다. 전관예우 논란은 안대희 전 국무총리 후보자를 낙마하게 만들고 황교안 총리를 청문회에서 고전하게 만든 검찰 출신 인사들의 ‘아킬레스 건’이다. 박근혜 정부는 퇴직한 누구를 검증하더라도 이 문제를 못 피해간다고 본 것이다.

김현웅 후보자의 부친은 판사 출신으로 1979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남 보성·고흥 지역구에 무소속 당선된 후 박정희 대통령이 이끌던 공화당에 입당한 김수 전 의원이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대를 이어 충성’으로 요약할 수 있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려면 애초 법무부 장관으로 고려된 다른 인사가 있었다는 점을 함께 봐야 한다.

황교안 총리가 후보자로 내정된 지난 5월 조선일보 등은 후임 법무부 장관 후보로 소병철 전 법무연수원장이 유력하다는 보도를 했다. 그러나 그 이튿날부터 바로 신문 지상에 다른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소병철 전 법무연수원장이 김대중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에 파견돼 대구경북 인맥을 정리하는데 관여한 의혹이 있다는 이유로 여당 일각에서 제동을 걸었다는 뒷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본인은 이러한 의혹을 부인했다고도 하고 법무부 장관 인사는 신임 장관의 제청을 받아야 한다는 청와대의 방침이 있었다고도 하지만, 어쨌든 이러한 사실이 김현웅 후보자의 내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측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결국 못 믿을 인사에서 믿을 수 있는 인사로 내정의 방향을 바꾼 셈이 되는 것이다.

결국 김현웅 후보자의 내정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평가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에서 장관 인사는 이제 더 이상 어떤 과제를 수행하기에 적합한 사람을 대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느냐 만이 기준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부적절한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 기준을 맞추는 것조차 어렵다. 또, 그 기준을 맞추는 와중에도 정치적으로 믿을만한 인사인지는 반드시 따져야 한다. 결국 정권이 자신감을 상실한 상황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능력이 없다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2년 반 동안 반복되어 확인됐으며, 애초에 이루고 싶었던 것 또한 없었다는 것도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자신도 없고 능력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다. 대통령이 되어도 평범한 일상을 사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루저’의 처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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